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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이브

category 리뷰/책 2022. 8. 8. 09:50
이곳은 2057년의 대한민국이다.
 
책의 표지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기후위기를 떠올렸다. 생태계가 파괴된 지구,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2042년 대한민국의 대부분은 물 속에 잠긴다. 나처럼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죽겠구나 생각했다. 물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환경 속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적응은 놀랍기만 하다. 변화한 생태계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 높이가 한참을 높아졌다고. 그래서 한국 주변에 댐을 세우게 되었다고.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서 댐이 무너지고 서울도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그게 벌써 십오 년 전의 이야기라고. - P25
 
수호는 서울을, 서울에 살던 사람들을, 그리고 인간 양육키트의 주인을 상상했다. 일흔살 먹은 할아버지도, 자라나는 아이들도, 작고 부드러운 살덩어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그 누군가를. 만약 그런 게 실제로 있다면, 이 나라의 반절이 물에 잠긴 것도 그 때문이라면, 세상의 모든 고통은 원래부터 이토록 초라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믿어야마음이 편했다.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댐이 무너지면서 도시를 휩쓰는 장면을 눈앞에 그리기보다는.
뉴스로만 보았던 화제들이 머리 뒤편에서부터 빠르게 풀려 나왔다. 세종시로 옮겨 가는 정부 청사와 뚝뚝 떨어지는 서울 집값은 물론이고 세 번째 세계 대전마저 사소하게만 느껴지더니 그러면 자신의 평생은 또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2042년의 지구에는 육십칠억 명의 인간이 있었으므로 불행도 그만큼 있을 터였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십오 년에 비하면 자신이 잠들어 있던 시간은 오히려 행운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 P135
 
이 세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했다. 내가 속한 세계는 달라야 한다는 것. '우리는 당신들과 달라요.'
 
멀쩡한 데가 하나 있긴 하다. 나도 듣기만 했는데, 강원도는 산이 높아서 바닷물이 안 넘어갔다는 거야. 예전에는 거기에서 우릴 구하러 오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못 오게 막는대. 같이 살기 싫다고. - P30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물이 주는 이미지란 2014년 이후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원래도 물에 대한 공포가 강했으나 나는 이 사고 이후 세월호의 침몰과 바다 속에 수장된 사람들. 아픈 기억이 떠올라 몇 년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사고는 예전에 났어도 사람 마음은 속에서 끝이 안 난다니까." - P131
 
이후 이야기의 주제는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는데 이는 죽음과 영생, 기억이었다.
 
현재, 죽은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구현하는 기술이 있다. 내가 죽은 후 이런 기술에 맡길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열두 살부터 병원에서 누워만 지냈어. 방사선 치료니, 척추 주사니, 온갖 치료는 다 받으면서. 나아지지도, 아예 끝나지도 않는 상태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는없다고 생각했지."
열심히 살 필요.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 선율은 세 음절을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단번에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병원은 흔적으로만 보았어도 병에 걸리는게 어떤 일인지는 잘 알았다.  - P43
 
아이가 아프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것이 고통일 것이다. 그럴 때 그 기술에 의존하려 시도하지 않을까? 근데 과연 아이에게 그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컴퓨터와 기계가 얼마든지 추억을 저장하고 편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다른 형태로 살리려 했던 부모의 선택은 한 아이에게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었다.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찾아 헤매곤 한다.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가지도 말라 죽듯이, 그것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믿음때문이다.  - P169
 
어머니는, 예전이었으면 그냥 죽었을 텐데 기술이 쓸데없이 좋아져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이나 죽어야 할 사람이나 나는 그게 쓸데없이도 아니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여전히 그래. - P180
 
연명 치료에 대해서 현재도 많은 논란이 있다. 100세 시대가 되었으나 아프지 않고 온전히 사는 기간 사이에는 20여 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20년의 시간을 아프면서 보내야 하는데 과연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나의 고통보다는 주변인들이 나를 보는 고통이 커서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얇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그래서 좋았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인간은 그 안에서 적응할테지만 지금의 기후 위기를 되도록 천천히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간의 의식과 기억이 기술의 발전으로 어떤 형태로 바뀌게 될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뾰족뾰족한 기억 위에 시간을 덧붙여서, 아픔마저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지우는 게아니라, 잊는 게 아니라,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마주보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다시, 다른 시간의 발판이 된다는 것.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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