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참 잘 지었다 생각했다.
김용균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으나 김용균은 그저 단수가 아니다.
김용균이 사고를 당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법은 개정되었으나 기업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현장을 훼손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김용균만의 싸움이 아니고 김용균들, 복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읽는 내내 갑갑함을 밀려오게 하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야말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여전히 기업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렇다면 한 명 한 명의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노동자들을 다치거나 죽게 할 셈인가.
이 책에는 사고를 맨 처음 발견한 동료, 김용균 어머님, 비정규직 노조위원인 세 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고
각 인터뷰 마지막에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실어놓아 도움을 준다.
첫 번째, '석탄화력발전소의 시작'에서는 한전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한전의 민영화와 외주화가 낳은 폐해가 어떻게 이 문제와 연결되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 김용균투쟁 62일 동안의 어머님이 하셨던 발언들을 발췌해 실어놓았다. 읽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문화 활동가들이 김용균 추모제를 위해 참여한 배경과 과정, 소감 등을 실어 놓았다.
인구 씨는 30년을 발전소 정규직으로 일하다 용역업체인 한국발전기술(KEPS)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간 일하다 사고를 만났다. 사고 당일, 인구 씨는 야간 근무조로 보통 주간에는 11시간 근무를 하고 야간은 13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쉼 없이 돌아가는 발전소 업무로 노동자들은 한시도 쉴 수 없었다.
"직원을 정해진 기간에 뽑는 게 아니고 누구 한 명이 퇴직하면 빈자리를 채우는 식으로 공채를 하니까 교육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여유는 한 3일 정도 있는데 하루는 신체검사하고, 하루는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서류 작성하고, 하루만 현장 한 바퀴 돌고 다음 날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거죠." - P22
신입 사원이 3일 만에 현장에 투입된다 한다. 문제는 현장을 도는 것은 하루 뿐이라는 것이다.
발전소는 유기적인 공정이 이루어져야 해서 노동자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때문에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들도 원청사 업무에 맞추어 작업을 하며, 원청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는 전체 구간이 수 킬로미터에 이르며, 60~80미터의 고공에 위치하는데다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어져 위험하다. 발전소 내부는 조명이 있어도 어둡고 분진으로 인해 앞을 보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다. (손전등이 주어지지 않아서 핸드폰 플래시로 작업을 했다.)
한국서부발전은 민간 대기업 수준의 규모가 있는 회사다. 서부발전은 발전소의 재난과 사고를 방지하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 종합방재센터를 세웠다. 하지만 시스템만 존재할 뿐 재난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능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김용균 사고 후 2020년에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에 저희가 손을 쓸 수 있는 사건이라면 조사를 미루거나 변호사나 활동가가 동행해서 보호조치를 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보호 없이 잔인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특히 경찰조사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 주로 진행돼서 손쓸 틈도 없이 목격자 혼자 경찰서에 실려가서 조사받을 때가 많아요."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최진일) - P45
이인구 씨는 현장 감식반과 회사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아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후 경찰과 119 구조대, 고용노동부 조사를 거치면서 힘겨움을 겪었고 이것이 트라우마로 이어졌다.
그는 62일 간의 투쟁이 있어서 본인은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디에서도 잠을 자기 어려웠으나 분향소에서 상주로 지내는 동안에는 괜찮을 수 있었다.
오늘도 일터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일과 관련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 병을 얻게 된 사람들을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라고 한다(1차 피해자: 사망자, 신체적 부상이나 정신적 외상이 있는 생존자). 인구 씨처럼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피해자의 가족들(2차 피해자: 사망 부상 사고 목격자, 1차 피해자의 가족 친구, 사건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응급구조 업무, 의료인력 및 상담가,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인까지(3차 피해자) 포함한다면 산재로 인한 피해 당사자의 범위는 생각보다 폭넓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산재를 경험한 사람들이 사고 이후 어떻게 사는지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만 같다. - P51
김미숙 씨는 사고 현장에 들렀고 회사 대표의 행태에 분노하고 열악한 환경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같은 현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런 곳은 당장 그만두라고 이야기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녀 역시 몇십 년을 비정규직으로만 살아왔으니 아들을 잃고 나서 얼마나 뼈아팠을지 싶었다.
그녀는 아들인 용균 씨가 최소한 자신보다 는 나은 데서 일하길 바라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지은 최신 시설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아버렸다고, 믿어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현장이 어떤지,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말이다. 미숙 씨는 아들이 일하는 그 3개월 동안 자신이 멋모르고 편안하게 삼켰던 밥을 모조리 다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 P98
그녀에게 큰 울림이 되고 힘이 된 건, 그녀를 찾아와 직접 들려준 살아있는 목소리와 손안에 전해진 손수 쓴 편지였다. 그 중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힘을 얻을 수 있었고 김용균 재단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단지 김용균 한 사람을 기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재 피해 유가족을 지원하고, 싸우는 유족 및 노동자, 또 이들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과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다음 유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미숙 씨와 기존의 유족들이 겪었던 일을 다시는 다른 이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싸우면서 죽음의 행렬을 끊어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며,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재단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를 바랐다. - P121
2022년 2월 10일 대전지법은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원청 대표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이전의 상식이라고 통칭되는 것과 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힘의 논리에서 나아가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기업의 변화, 사회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소 비정규직 동료 이태성 씨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 태안사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그는 입사 때 김용균이 하던 현장 운전원의 일을 했다고 한다.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모임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때 김용균도 손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참여하였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진이자 유언이 되고 말았다. 사실 입사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가 손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은 것은 적극적인 행위를 보여준 것이므로 그는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회사가 산재와 죽음을 돈으로 때우는 날치기 행태를 많이 보아왔다. 2018년 12월 14일 시민대책위원회가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을 진행했는데 사고가 난 기기를 포함해 설비 개선을 요구했지만 한국서부발전은 3억 원이 들기에 거부했다는 사실이 거론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수시로 회사에 개선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노조로 참여하여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정 협의 합의안을 이끌어 냈다.
"저에게 합의서에 대해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죠. 나름대로는 부족하지만 성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것은 우리 발전 비정규직들이 책임지고 풀어가야 할 부분이고, 발전 비정규직들이 중심을 잡고 잘 서서 싸워야 할 몫이죠. 그래도 조합원 동료들이 인정하지 않았다면 합의는 없었을 거예요. 조합원들은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될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 P213
그는 그동안 "너희 회사에서 생긴 일도 아닌데 네가 왜 그러고 다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회사의 압박도 심했다고 한다.
"서부발전에서 [제가 일하는] 한전산업개발로 압박이 갔었고, 회사에 저도 한 20년 넘게 있다 보니까 제 동기들 가운데 간부로 올라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전화 와가지고 '안 하면 안 되냐' '왜 우리 회사 자료를 마음대로 이렇게 내보내냐' [말하기도 했죠]."
이후 대통령은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와의 만남을 가졌다. 장례를 치르고 1주일 지난 뒤였다.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활동이 중단되었다. 왜? 모든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개입해 조사 활동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발뺌하고 비싼 변호사 쓸 거라는 것도 예상했지만, 그건 얄미운 거고, 제가 더 화가 나는 건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싸워야 되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주체로 서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 P235
사회가 열악한 일터를 계속 용인한다면 열악한 일터는 어디에나 있을 거다. 그리고 누군가는 거기서 일하게 된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김용균투쟁은 모두의 싸움이었고, 또 다른 김용균들과 앞으로도 해나가야 한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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