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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류본사

category 리뷰/책 2022. 8. 8. 09:51

인류 최초의 문명의 역사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반도이다. 동서양의 교차점이었던 아나톨리아 반도는 동서양이 만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였다.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19세기 이후 유럽 지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문명을 바라보면서 타 문화는 야만과 미개로 치부했다. 저자는 1983년 이스탄불에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며 동서양을 양분하는 인식론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괴베클리 테베-차탈회위크-아카드-바빌로니아-트로이-히타이트-페니키아-프리기아-헤브라이-아시리아-우라르투-신바빌로니아-리디아-메디아-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가 7세기 중엽까지 이어졌고, 이후에는 이슬람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마이야-압바스-셀주크-호라즘샤-티무르-나스르-사파비-말리와 송가이-오스만-무굴 제국에 이르는 역사가 이어졌다. 이 기나긴 역사를 650 여페이지에 압축시키기 어려웠을 듯하다.
  
먼저 책의 장점부터 기술해보겠다. 각 단락의 서두에 한 제국의 일대기를 담은 도표와 설명이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다.(시간이 지나서 재독 시 이 부분만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또 영토의 분화 과정을 담은 지도, 문화재 같은 경우 사진이나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 좋았다. 그리고 저자가 문화 유적을 직접 답사한 여행기는 독자의 간접적인 여행 체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코로나가 여전한 상황인데다 답사 지역이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문명과 관련하여 한반도의 역사와 연관성을 가지는 다양한 예시를 흥미롭게 설명해주어 저자에게 감사했다(이것은 국내 작가가 아니라면 경험해보기 어려운 것이다.).

단점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질문이었는데 다양성을 존중한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 곳이 왜 현대에 와서는 분쟁이 끊임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는지였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핵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서 짧게만 언급되는 정도라 아쉬웠다.(이 부분은 다른 책을 통해서 공부를 이어가야할 것 같다.  - cf: 현대 중동의 탄생) 
이건 책의 단점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고 비슷한 듯한 인명, 지명들의 복잡도가 가져오는 피로도가 있다. 이건 어느 역사도 마찬가지이므로 감안하고 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집중해서 읽는수밖에 없다. 

1994년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은 괴베클리 테페를 20 년간 집중탐사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곳은 인류 최초의 신전 유적으로 기원전 1만 2천년경 건설되었다. 수렵 채집시대에도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져 고고학계에 일대 사건이었다고 한다.
차탈회위크는 9,500년 전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로 선사시대 거주지가 남아 있으며 도시문명의 기원인 장소이다. 특히 이곳은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차별이 거의 없었던 공동체 사회여서 주목하게 된다. 이는 차탈회위크의 가옥이나 테라코타 모신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2350년경 아카드 왕국은 바빌로니아 북부에서 시작하여 최초로 오리엔트 전역을 통합했다가 구티인에 의해서 멸망당한 후 기원전 1895년경 바빌로니아 왕국이 오리엔트를 재통일한다. 바빌로니아는 아카드를 기반으로 수메르 문명과 오리엔트 신앙을 받아들였다. 함무라비 왕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기원전 1595년경 히타이트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히타이트는 아나톨리아에서 인류 최초로 철기문명을 일으킨 500년 제국이다. 히타이트법은 함무라비법을 발전시키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이전에 비해 신장시키는 등 제국을 떠받치는 근간이 되었다. 히타이트는 영토 팽창을 가속화하면서 이집트 람세스 2세와의 정면 충돌하면서 카데시 전투(B.C. 1274)가 벌어졌다. 전투는 이집트의 판정패였지만 람세스 2세가 승리를 선전했고 이집트는 이후에도 살아남으면서 히타이트의 승리는 묻히고 말았다.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천재지변, 기후변화, 전쟁, 화재 등을 꼽지만 가설일 뿐 밝혀진 것은 없다. 

프리기아 왕국은 기원전 1200년경 수립되었으나 기원전 8세기 미다스 왕 때 아나톨리아 중서부를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프리기아는 그리스와 오랫동안 교류하여 그리스적 색채가 강한 문화를 띠었다. 미다스 왕이 사망한 후 기원전 620년이 되면 리디아가 프리기아를 빼앗고 기원전 540년에 페르시아군이 리디아를 빼앗으면서 결국 페르시아가 지역의 주인이 된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역사로 여러 문헌이나 영화를 통해서 익숙한 탓이다. 페르시아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었고  이후 페르시아 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라고 칭한다. 페르시아는 관용정책을 표방하며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유일신 기반인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수도 페르세폴리스가 세계유산으로 남아 있다.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침략으로 멸망하고 이후 파르티아가 이곳을 통일한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에 맞선 나라로 지금의 이란을 중심으로 500년을 이은 제국이다. 부끄럽지만 파르티아 제국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듯하다. 로마 제국의 위용이 있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얼마나 서양 중심의 인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했는지 절감하는 대목이다. 파르티아는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터키 일대를 포함하는 핵심 지역으로 로마와 중국, 동아시아 간 중개무역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고 한다. 한반도 문명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224년 건국되어 로마와 동로마 제국과 이웃하여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651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번영을 누린 이란계 제국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으로 이란 민족에서 아랍 민족으로 지배 세력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압바스 제국은 610년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후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등 글로벌 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제국의 수도인 바그다드에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종합 아카데미 '바이트 알히크마'가 있었다. 이 때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필사본이 작성되는 등 동시애 각지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0세기 이후 지방의 총독들의 힘이 커지면서 북아프리카 서부에는 파티마 왕조가 세워지고, 이베리아 반도에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칼리프를 자칭하게 도어 3인 칼리프 체제가 만들어진다. 10세기 중반이 되면 시아파의 부와이 왕조가 수도를 점령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되어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에만 의존하게 되는 신세가 된다. 11세기 중반 셀주크 튀르크가 바그다드를 통합하지만 몽골이 1258년 바그다드에 침입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를, 문화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하는 독특한 체계를 가진 제국이었다. 티무르는 이슬람 문화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에 기반하여 14세기 중앙사이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티무르는 정복지의 기술자와 장인을 수도에 데려와 학문의 발전에 밑받침하는 전략을 취하며 발전된 문화의 기반을 이끌었다. 티무르 사후 제국이 분열되고 16세기 초가 되면 우즈베크인의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멸망하였다(이 때 권력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가 1526년 인도를 정복하면서 무굴 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베리아반도에도 이슬람 문화가 번성한 시기가 있었다. 시리아의 우마이야 왕조가 750년 멸망하고 살아남은 왕족 일부가 이베리아반도로 넘어가 왕조를 세우는데, 그것이 후우마이야 왕조가 된다.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영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1031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해체되고 나서 여러 이슬람 공국들이 난립하다 나스르 왕조가 1492년 에스파냐에 의해 통합되기까지 이어진다. 나스르 왕조의 역사적 건축물은 현재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으로 남아 있다. 나스르 왕조는 수도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으나 가톨릭교도에 의한 레콩키스타로 인해 국토가 축소되다 무함마드 12세가 모로코로 망명하면서 1492년 멸망한다. 

사파비 왕조는 오늘날 이란의 중심도시인 이스파한을 수도로 오스만, 인도의 무굴 제국과 맞섰던 제국이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 기존의 순니파 이슬람 왕조 통치자들이 사용하던 '칼리프', '술탄', '아미르' 대신 '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압바스 1세 전성기에 군제를 영국식으로 개혁하고 오스만의 영향을 받았다. 이스파한은 실크로드 중심도시로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성장한다. 현재 이스파한에 남아 있는 유적 대부분이 사파비 왕조 때 것이라 이란인들이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소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으로 불렸고 20세기까지 존속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불린다. 1299년 수립되어 1922년 제국이 종말을 맞을 때까지 장장 623년의 역사를 영위하였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오스만의 문명은 터키로 이어지게 되었다. 소수집단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인재를 다양하게 등용하였고, 예니체리를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스탄불은 동서양, 이슬람과 기독교,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문명의 접점인 곳이어서 발전에 유리하기도 했으나 매너리즘이 만연하고 내부 권력의 다툼, 산업혁명 이후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18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1922년 마지막 술탄 메흐메드 6세의 폐위로 제국은 종말을 맞이한다.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슬람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이었다. 공존과 다양성은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반대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자국의 문화만을 강조하게 되면 문명은 쇠퇴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보여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종교, 민족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과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바뀔 수 없는건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외면해온 문명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세계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거시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계는 동양과 서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유럽인들이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중간문명이 존재한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에서 유래한 오리엔트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아나톨리아, 레반트, 중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인류 최초로 문명이 발아하고 성숙해 간 인류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고대 오리엔트나 중세 이후 중동의 역사는 동양사와 서양사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보잘것없는 지역사에 불과하다. - P15

인류문명의 시원과 역사발전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왜 세계 4대 문명 중 세 곳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중해를 통해 인류의 찬연한 역사와 문명이 꽃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신선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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