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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바그너 오페라인 파르지팔을 초연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예매를 올해 초에 한 것 같은데...

그때문에 이후 스케줄 조정에 난관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보고 왔다^^


장장 5시간 35분짜리 공연인데 관객을 고려해서

인터미션을 두 차례 두었다.

그래도 공연 러닝타임만 4시간이다.

오페라 공연을 본 것은 한국에서 처음이지 싶다.

외국에 나갔을 때 오텔로 공연을 본 뒤로 처음이었으니^^;

바그너 최후의 작품이자 꽤나 난해하다고 불리는 작품을 본다 했을때

행여나 지루해서 졸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제 클래식 음악에 맛을 들여가고 있는 초보자인 내가

과연 이 긴 시간을 앉아서 소화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다행히 걱정은 지나친 것이었다.

작품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힘겨웠을 뿐이지

나머지는 볼만했다.

그저 음악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무대 연출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구르네만츠 역을 연기한 연광철은 2008년에 이어 올해에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작품을 연기한 배우로 그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

체구가 작아 보였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뱃고동 같은 울림은 보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쿤드리 역을 연기한 이본 네프도 호연을 펼쳤다.

폭발적인 고음의 가창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2막에서 파르지팔을 유혹하며 부르던 아리아들이 정말 좋았다.

파르지팔 역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아름다운 미성의 음색이 돋보였다. 확인해보니 그는 바그너 전문 가수로 세계 무대에서 많이 섰다고 한다^^


3층이기는 했지만 정중앙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망은 괜찮았다.

무대 기술들이 잘 보여서 좋았는데 특히 거울반사효과는 개인적으로 일품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 오케스트라도 보일 때가 있어서 분리되지 않은 느낌을 줄 때가 있어서 별로라는 평을 봤는데

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효과 때문에 무대의 연출이 훨씬 더 나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무대 소품 등은 사실 별볼일 없었고 조악했기 때문에 이런 효과 마저 없었으면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군데 군데 빈 게 보이기는 했지만

로타 차그로섹의 열정적인 지휘 덕분에 빈틈을 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시간 30분 정도 계속 연주를 소화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무대 뒤에서 울려퍼지던 합창단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몇 번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예전 내가 합창을 하던 시절의 추억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시 노래를 불러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보면서 2011년 독일 여행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제나흐에 갔을 때 방문했던 바그너 박물관, 관장님의 모습, 정원 등등...

여러 것들이 떠올랐다.

그때 바이로이트에도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지만...

언젠가 남부를 여행할 기회가 또 있을 거라 믿으니까 괜찮다.



공연 사진을 보더니 지인이 묻는다. 

"표정이 얼음이네!"

그러고 보니 생뚱맞은 표정이다.

혼자 가는 사람은 셀카 찍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셀카가 익숙치가 않아서인지 그냥 사물만 찍고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한테 부탁해서라도 저 장면을 찍고 싶었다.

모르는 이한테 "저기, 사진 좀 찍어주세요!" 민망하기는 했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아닌 걸 뭐.

그 순간만 창피할 뿐이다^^;

이렇게 사진이 남으니 말이다.

실내인데다 아이폰4의 화질은 영 구리다보니...ㅡㅡ

그래도 이렇게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 기쁘다.


3층 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