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져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근대문학 작가들 중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조금 읽었음에도
유독 이상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을 탈피할 기회가 찾아왔다.
민음사에서 장석주 시인님과 함께하는 아카데미를 통해서이다.
이번 주 이상의 문학과 이상의 삶에 대한 강연이 있는만큼
그 전에 이상의 작품 하나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겠나는 무의식이 작용했다.
컨디션은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도서관에 가서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근대문학단편선을 꺼내 들었다.
이상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작품 『날개』이다.
주인공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무료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그야말로 딱 백수가 아니던가.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요.
돈도 없어서 아내(!)에게 돈을 빌려야 어디라도 나갈 수 있는 처지이니...
이야기를 보아하니 결말은 참 뻔했지만
어렸을 적 별 생각 없이 읽었을 때와 조금 더 달랐던 느낌이었다.
근대의 지식인들, 노동자들, 농민들...
시대의 아픔 속에서 무엇을 해볼 용기조차 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참 많았겠다 싶다.
그저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던 사람들 말이다.
마지막 주인공이 날개를 젖히며 날아가고자 했던 상황은
주인공의 마음이, 희망이 전해져서 마음이 참 씁쓸했었다.
따스한 가을볕의 도서관 창과는 달리
주인공의 답답함과 그 속에서 빠져나와 이상향을 찾아가려던 그 마음이 느껴져서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 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나는 거기 아무데서나 주저앉아서 스물여섯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가도 없다가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있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닥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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