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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엔트로피

category 리뷰/책 2012. 3. 11. 15:03


엔트로피
카테고리 과학 > 물리학
지은이 제레미 리프킨 (세종연구원,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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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은 문명 비평가로 수많은 저작이 있지만 나는 이 책은 처음이었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육식의 종말』, 최근작인『공감의 시대』는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은 그가 가진 사상적 기반의 포문을 제대로 보여준 첫 번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데카르트가 문을 연 근대적 한계를 기본으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무조건 옳다고 생각되었다. 기술과 과학은 신봉되었고 그것이 모두인 줄 알았던 시절이다. 근대와 현대의 문을 연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은 주체성을 찾았지만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었다. 기술과 과학은 이제 와서 한계를 드러냈고 그의 사상적 한계는 드러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를 엔트로피의 개념을 설명하며 저엔트로피의 법칙을 활용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철저한 인식,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자세는 기본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면 국가와 정부를 넘어 전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야기하고 있다.


[p.56]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서, 에너지는 결코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으며,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이다.

[p.57]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여기서 벌금은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p.58]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p.62] 엔트로피 법칙은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느끼기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법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종의 직관이 필요하다.

[p.179] 엔트로피 법칙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사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유용한 물질과 에너지의 일부를 쓰면 그것은 두가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첫째, 개인, 제도, 공동체, 사회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무질서로 인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며, 이 금액은 제품을 사용해서 얻는 가치보다 크다는 것, 둘째, 후대의 생물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동감했던 부분이 대규모 기계식 농업으로 인해 점점 비싸지는 물가로 소비자는 물건 사기가 어려워져 고통을 받고 지나친 군대 예산과 무기 제작으로 불필요한 대규모의 지출을 감행하는 동안 지구촌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p.180] 시장에서는 아무도 후손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남아있는 천연자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가난한 상태에서 삶을 시작해야 한다.

[p.186] 미국 농업에서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됨에 따라,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오염과 토양침식의 형태로 축적된 무질서는 사회와 농업 양쪽에서 비용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렇게 늘어난 비용으로 인해 농업을 관장하는 경제기구는 더욱 비대해지고 중앙집중화된다. 또 거대영농기업이 비대해짐에 따라 현상유지를 위해서만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므로 전체 에너지 흐름에서 점점 더 많은 양이 농업으로 전용되어야 한다. 늘어난 유지비용은 말할 수도 없이 전체 에너지 흐름을 따라 계속 전가된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희생자는 슈퍼마켓 카운터에서 돈을 내려고 줄을 서 있는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올라가는 식품 가격 때문에 계속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p.210] 국방예산을 더 쓰면 쓸수록 세계적인 긴장은 고조된다. 고도의 무기체계란 결국 에너지 집약도가 높고 에너지 흐름이 큰 체계라는 뜻이다. 우리가 전쟁의 역사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에너지 흐름이 집약되면 될수록 전쟁은 더욱 잔혹해지고 비인간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과 소련이 매년 새로운 ‘전쟁기계’를 개발하는 데 쓰는 돈은 200억 달러에 달한다.

[p.214] 국방예산이 늘어날수록 엄청난 비극이 초래된다. 빈곤과 기아처럼 본질적으로 에너지에 관련된 문제들을 악화시킨다. 8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간 200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매년 2,000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국방비 지출은 인류에 대한 모욕이다. 결국 전쟁 준비는 인간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그리고 우리의 태도는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유하는 것이 부의 기준이 되어버린 오늘날 소유에 목숨을 걸고 과소비가 너무나 당연시되어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십년 후면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내가 한 행동이 후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면 그것은 안될 일이 아닐까?


[p.287]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택하고 난 뒤에야 인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과학, 교육, 종교에서 혁명처럼 시작되어야 한다. 각 분야에서 과거의 기계론적 구조는 열역학 제2법칙이 요구하는 대로 새로운 구조로 대치되어야 한다.

[p.334] 결국 우리의 개인적 존재는 생성과정 자체의 집단적 정신 속에 영원히 머문다. 우리에게 남겨진 자원을 최대한 보전하고, 생성과정을 지배하는 자연의 리듬을 최대한 존중하는 길은 우리보다 앞서간 모든 생명과 우리 뒤에 올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 식민화 단계에서 절정 단계로 옮겨가는 첫 발자국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중꾼인 것이다.


 

지구에 한계가 다가왔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말만 하지 정작 이를 바꿔보려는 실천적인 노력이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의 구성원인 우리들이 아닐까. 개개인의 미래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뀌고 이를 위한 작은 노력들이 쌓여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후손들에게 덜 미안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