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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국근대사산책 4권

category 리뷰/책 2011. 11. 3. 05:58
한국근대사산책.4러일전쟁에서한국군해산까지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지은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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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부터 정미7조약까지를 다룬 한국근대사산책 4.

 

러일전쟁의 전개를 보며 국제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대한제국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대한제국은 일본과 청의 도움은 당연히 받을 수 없었고 아관파천까지 할 정도로 도움을 받았던 러시아로부터도 외면을 당했고 최초로 화친조약을 맺은 미국에게는 더더욱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부정적인 국가이미지가 외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철저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은 주관적이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타국에서 국내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객관적이기 때문에 돌보어 가꾸지 않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양산해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로 러일전쟁 종군기자들이 조선을 묘사한 모습이 조선에게는 타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국운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러일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였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수용하기에는 가려진 진실이 너무나 큰 것 같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잡은 후로 태프트를 일본으로 보내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도록 한 점이나 밀약이 맺어지고 나서 고종의 부탁으로 찾아간 이승만이 내민 청원서에 청원서는 자기가 직접 받지 않는다며 한국공사관을 통해 제출해달라고 한 점 등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루스벨트가 일본 편에 든 데 상당수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었으니 이는 친구인 조지 케난이었다고. 케난은 잡지사의 편집장이었는데 이 잡지를 루스벨트가 애용했다는 것. 하지만 그 잡지는 친일경향이 강한 잡지였으니 루스벨트가 한국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갖는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사회진화론자였기에 철저한 약육강식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결과론적으로 일본에 편향적이었다는 그의 입장은 대한국민으로서 그저 수용하기에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117] 1905년 1월에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 헤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위해서 일본에 간섭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자신을 위해서도 스스로 하지 못한 일을, 자기 나라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을 위해서 해주겠다고 나설 국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루스벨트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였다. 그는 이미 1900년 8월에 뉴욕 주지사로서 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 “나는 일본이 한국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을 만큼 일찍부터 일본에 편향적이었고, 이 편향성은 이후 내내 유지·강화되었다.


[132] 20097년 8월 한승동은 “우리는 아직도 걸핏하면 ‘동아시아 안정’을 들먹이는 가쓰라, 태프트들이 주도권을 쥔 세계에 살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당시의 망언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가쓰라는 대한제국 정부의 잘못된 행태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다시는 다른 외국과의 전쟁을 일본에 강요하는 조약을 맺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태프트는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이 동아시아 안정에 직접 공헌하는 것이라며 맞장구쳤다.”


  

또한 을사조약에 대한 고종의 처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게 고종은 유약한 군왕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내게 그런 관념이 박힌 건 을사조약의 힘이 컸다. 어쨌든 도장을 찍은 것은 대신들이라 해도 고종의 묵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군왕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건가 결국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몰랐던 사실인데 고종이 이토의 요구를 참아내다가 결국 내각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나중에는 협의하여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지 않았을 이토가 아닐 것이다. 고종은 끝까지 을사조약에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판단되는 역사에서 그것은 안타까운 메아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168] 고종이 반대하고 비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애국적’일지 모르지만 진실은 아니다. 진실이 아닌 것에서 진정한 애국심이 솟을 수는 없다.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 무능한 군주를 감싸는 억지 주장을 펴기 보다는 통렬하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자세가 보다 애국적인 것이 아닐까.


궁금했다. 왜 나는 고종이 도장을 직접 찍지 않았다고만 생각을 했을까. 애국심을 키운다고 납득할 수 없는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데 이도 왜곡된 식민지 사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인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 자기들은 고종을 힘없는 유약한 왕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국민조차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뿌리를 만들었을 테니까.

 

외국인이 쓴 글에서 한국인이 한국의 교육에 힘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담은 것을 보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224] 독일인 애쏜 써드는 1902년에 발표한 글에서 “학교에서까지 자기 나라의 역사나 학문에는 등을 돌린 채 수백 년 동안 중국 학문에만 관심을 두고 열중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중국의 요순시대에 대해서는 꿰뚫고 있지만 자기 선조 나라인 신라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초중고에서 국사라는 것은 밀려난지 오래이다우리나라 국민이 우리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누가 배운다는 말인가반대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으니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다른 나라 역사를 배우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라는 생각이 든다내 나라 역사를 공부하며 충분히 검토하는 작업이 있어야만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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