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 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연 현상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의 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 P33
서양 철학이 시작된 지중해 세계를 다룬 세계철학사 1권에 이어, 2권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다룬다. 동양 철학이 아닌, 아시아 세계의 철학이라는 말이 어색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를 동양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중국과 인도의 철학이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는가). 동양은 서양이 부여한 용어가 아니냐 등…
세계 철학의 주요 흐름은 서구 세계의 인물과 사상을 배경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고중세 시기 동안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발전해왔던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이 근대 세계에 와서 서양의 세계관이 힘을 압도하며 역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구 세계 철학은 그리스 자연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세계의 철학은 자연 현상을 해석하는 역학이 시작점이 되었다.
이처럼 아시아 철학의 기본은 ‘역’의 개념이다. ‘역’이란 무엇인가.
성인이 ‘괘‘를 긋고 ‘상‘을 관찰해 ‘사‘를 걺으로써 길함과 흉함을 밝히려 했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밀어 (剛柔相推) 변화가 생겨나니, 그로써 길함과 흉함은 얻고 잃음의 상이요, 후회와 부끄러움(悔)은 안타까움과 짓눌림 (憂)의 상이요, 변함과 화함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함과 유함은 낮과 밤의 상이다. 6효의 변화가 하늘·땅· 사람의 길(三極之道)을 세운다. 하여 군자는 ‘역‘의 배열에 입각해 편안히 안거할 수 있으며, 효사를 읽음으로써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군자가 거할 때는 ‘상‘을 보고 ‘사‘를 즐기지만 동할 때에는 ‘변‘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 한 것이다.(「사전 상」, 2장) - P128
중국 철학은 분열을 거듭하던 난세의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묵가 철학, 노자-장자를 바탕으로 한 도교 철학, 법가 철학 등이 난립을 거듭했다.
그러다 동북아 세계에서 ‘공자’가 나타나며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의 사상 철학 체계에서 ‘공자’의 위상은 특별하다. 공자는 인간에게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형이상학을 펼쳤다.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이 후대에 전수하며 유교적 윤리 세계를 동아시아에 구축하며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동아시아에 공자가 있었다면 서양 세계에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둘은 사는 곳도, 사상적으로도 달랐지만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전수했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았다. 물론 서구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사유를 넘어 유대-기독교적 흐름을 받아들이며 다른 형태로 진화했지만 공자의 가르침은 여전히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도 철학은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대표적으로 힌두교와 불교가 있다. 이는 우파니샤드와 붓다의 가르침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구체적으로는 ’욕망’과 ‘업’을 을 극복하고 ‘고(고통)’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힌두교는 브라만적 우주관을 다시 세우고 ‘범아일여‘의 사유를 다시 다듬었다. 세계는 주기적 해체와 재창조를 계속한다. 해체는 브라흐만이 세 현현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이고, 재창조는 다시 세 현현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 P524
붓다의 가르침은 ‘사제(四)‘라 불린다. 처음에 붓다 사유의 출발점은 모든 것이 ‘고‘라는 ‘고제(苦諦)‘였다 일체개고. 그리고 삶의 고뇌가 어떤 이치로부터 생겨나는가를 12연기설을 통해 통찰하는 것은 ‘집제(集諦)‘이다 제행무상. 그리고 고뇌로부터의 벗어남을 12연기를 거꾸로 생각해봄으로써 이해하는 것은 ‘멸제(滅)‘이다-제법무아. 마지막으로 멸제를 이룰 수 있는 길로서 제시된 8정도가 열반적정 (涅槃寂靜)으로 ‘도제(道)‘를 이룬다. - P541
기원후 3~6세기가 되면 북방의 여러 세력들이 사분오열되어 중국을 포함한 남방으로 밀려들고, 기존의 중원 문화를 이어간 남방으로 나뉘며 다원화된 질서가 이어진다. 유교 지식인들의 정체성은 후한 정부에서 형성된 청류, 명사, 일민 등에뿌리를 두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은 혼란의 시대인 위촉오 시대에 오히려 꽃을 피웠으며, 예전보다는 퇴락된 형태이긴 했지만 서진·동진 시대에까지도 이어지고 6조 내내 강남의 귀족제 사회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단지 유교 지식인들 내면의 정체성 유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은아니다. 오히려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 구품중정제가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었던 데에 있다. 이렇게 ‘기득권‘과 지식인들 자신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노력‘이 선순환을 이루면서 6조의귀족사회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무에 대한 문의 우위‘도 계속 유지되었다. 무관들도 이 귀족사회에 끼지 못하고서는 출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P622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방식은 북조의 경우와 남조의 경우가 달랐다. 북조의 경우 핵심적인 것은 왕들과 승려들의 관계였다. 왕들은 사분오열된 군사봉건제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 불교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호의적이었고, 승려들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안전하게 또광범위하게 포교하기 위해 왕들의 후원이 필요했다. - P652
왕권이 약한 귀족제 사회인 6조에서 승려들은, 남조 귀족들의 문화와 어떻게 어울릴까를 고민했다. 남조의 도가적 유교 지식인들과 서역에서 건너온 또는 중국에서 불교로 개종한 인물들을 이어주는 끈은 ‘청담‘이었다. - P654
남방 지역은 이처럼 ‘문’을 우선시하는 문사-관료들이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인도에서 흘러든 불교를 받아들이며 문명과 문화를 이끈다.
만약 아시아 세계에 서구처럼 격렬한 종교 전쟁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삼교가 각자의 역할을 지킨 채 적정선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교는 정치 철학으로, 도교와 불교는 아시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중국은 남송 시대에 가서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에 의해 성리학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성리학은 이후 중국 내 원-명-청 왕조에서 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려-조선, 일본에까지 넓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한반도는 조선 시기 들어오면 리(理)/기(氣)의 이론을 해석을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주자학 이론의 실전 세계가 된다.
주자학이 새로운 왕조가 건설될 때 특히 큰 매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우주와 인간을 잇는 웅혼한 규모의 사유, 지식인들의 영혼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인성론, 그리고 봉건사회를 정초해준 위계적 정치철학으로 구성된 높은 경지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측면이 새로운 왕조의 구축자들에게는 최상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던 것이다. 명을 세운 주원장의 경우 외관상 농민반란의 형태를 띠었지만, 그 주도 세력은 지주 계층이었고 주원장 자신이 건국 이후 철저히 유교적 이념에 따라 신왕조를 구축했다. 조선의 경우 고려를 무너뜨리고 신왕조를 세운 주축 세력이 정도전을 비롯해 모두 신진 사대부 계층이었다. 에도 막부의 경우에도 역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정권을 정비했다. 이처럼 주자학은 사대부(사무라이) 계층의 정신세계와 정치철학을 확고하게 지배한 철학 체계로서 동북아 전체에 걸쳐 일반 문법을 형성했다. 주자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자학 자체의 철학적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한 사대부 지식인들의 권력의지 또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 P741
양명학과 성리학 간의 사상 대결도 무척 흥미로웠다.
1권에서도 느꼈지만 2권에 와서 더욱 느낀 점은 서구 세계 사상가의 철학과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비교하며 사상의 이해를 쉽게 돕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매 페이지, 어려운 개념이나 문장에 대한 각주는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든다. 3권의 내용은 근대 세계의 사상 철학을 다루고 있다.
동북아의 세계는 ‘작(作)‘의 세계가 아니라 ‘생(生)‘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기에 구현되는 선험적 질서로서의 이데아 개념 또한 없다. 다만 기 안에 잠재해 있고 기가 특정한 물(物)로서 개별화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내재적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기의 세계는 코라의 세계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경우 코라의 의미는 현저하게 바뀐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물질성, 생명성, 정신성을 내함(含)하고 있는 유일의 실체이다. -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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