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원고무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끗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야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 P26~27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돌을 묶은 채 기와 지붕 위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주룡. 그는 평양의 평원고무에서 일하던 여성 근로자로 죽음을 불사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그곳을 오른다. 그의 연설은 동아일보에 실리면서 을밀대 연설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후 민족주의 잡지에서 인터뷰까지 할 정도였다고. 노동자가 파업이나 시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급이 밀리는 것이 기본일 테지만 받아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여겼을 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 퇴로가 없다 생각했을 때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하는 행동이 아닐까. 그야말로 절박함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마지막 노동자로 쌍용노조의 김진숙을 언급하는데 작가의 선택이 탁월하다 여겼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의 모습이 분명히 떠오른다. 높은 곳에 올라가 몇 백일간 자리를 지키며 권리를 주장하던 모습을 말이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계속된 식민 지배와 반식민 저항운동의 역사는 계급과 젠더 정치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행방 후 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 진행된 남한의 민족국가 건설 과정은 계급과 젠더 관계를 둘러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협상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이 같은 격동하는 정치 지형에서 노동자와 여성을 사회 경제적으로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는 20세기 내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중대한 문제였다. - P13
한국 여성 노동의 역사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했을 때 한국전쟁 이후 즈음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이렇게 그 시기가 한참 앞서 있으며 노동자의 선두주자로 근대 일제 시기 강주룡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이전에 강주룡의 역사를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한 장의 강렬한 사진으로, 또 몇 년전 문재인 대통령께서 언급하시기도 한 분이라 이름은 낯설지가 않았다.
강주룡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사업이 망하여 조선을 강제로 떠나야 했고, 일찍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사망한 뒤로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1927년 무렵 평양으로 이주한 뒤 시내 고무공장에 취업했다고 한다. 강주룡을 포섭한 것은 지하 공산주의 그룹의 일원인 정달헌이었다. 그는 함경남도를 적색 노조 조직 운동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적색 노조 조직원 중 고무노동자들을 영입한 조영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강주룡은 평원고무에서 책임자가 되었다.
이처럼 1930년대 무렵은 조선 내 사회주의 사상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전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 있어 많은 노동 쟁의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평양에서는 10건의 파업이 일어났고, 서울과 부산에서도 각각 4건, 3건의 고무 파업이 있었다. 1931년 평원고무 파업은 이렇게 앞서 있었던 노동운동의 성장에 기반해 있었다.
1946년 해방 이후 좌파 세력인 전평 중심으로 산업 노조 활동이 시작되었다. 일본 적색 자산을 인수 받은 공장 노동자들은 이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권리를 주장하였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 선거 발언 이후 전평 하에 있던 조방 분회는 총파업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우익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전평 운동은 궤멸되었다. 조방 사장인 강일매는 조방 쟁의 기간 동안 이승만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노동자를 탄압했다고 한다.
1952년에는 부산 임시 국회 건물에서 조방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부산 시가에서의 시위는 조방 쟁의로 민란을 방불케 한 분규였다고 한다. 현재 노사 관계를 규정 짓는 기본법인 노동법이 최초 통과(1953)되는데 기여한 핵심 쟁의였기에 의의가 크다.
급속한 도시화, 농촌인구의 대도시 유입과 함께 신흥 중산층 가정의 등장과 소비사회의 도래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낳았다. 1960년대 중반에는 ‘중산층’이나 ‘대중’ 같은 새로운 개념에 대한 논쟁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다. 보수적인 젠더 관념이 지속되는 가운데 개발 국가의 경제정책과 성장 제일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돈벌이와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약속이 계층 상승을 지향하는 중산층의 상당 부분에서 현실화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 평등을 지향하는 ‘균‘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었던 하층민에 대한 동정적 인식은 물질적 부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신분의식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계급 차별 문화는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육체노동자들의 열망과 충돌하며 갈등을 낳기 시작했다. - P251
1970년대에는 섬유와 전자 산업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때 현재의 연공 서열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는 체계가 정착되었으며, 가정을 책임지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보다 더 많은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생활급(?)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생활급이라는 개념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그럼 그 가정이 굴러가게 만드는 일은 누가 하는지 곱씹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순이'라는 단어도 이 때 등장하였다. '여공'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나는 '공순이'라는 말 자체가 멸칭이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말을 나도 대학 때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붙이는 '순이'라는 말이 불쾌하기는 했다. 현재도 공과에 다니는 여학생을 이런 식으로 부르는지는 궁금하다(아니길 바란다).
노동자 분신 사건하면 전태일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보다 한참 앞선 1962년, 광주에 있던 전남방직의 김양이 자살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개신교의 산선, 가톨릭의 Joc를 비롯한 기독교 연합의 여성 노동자들이 합심하여 목소리를 내어 호소력을 발휘하겠다는 일념 하에 1976년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를 조직하기도 한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는 학출을 택해 노동 지역 현장에 투신하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1985년 노학연대를 기반한 구로공단 동맹 파업이 있기도 했다.
1987년은 대한민국의 전 국민에게 특별한 해였으나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자 대투쟁 같은 굵직한 사건이 있었으니 특별한 한해였을 것이다. 물론 여성 노동자에서 남성 노동자로 노조 운동 지도부가 변화하였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IMF 이후가 되면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고 비정규직이라는 또 하나의 체계가 자리를 잡는다.
현재도 여전히 노동자의 위치는 위태롭다. 대기업에 다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위계가 갈리는 것은 기본, 같은 연차라도 남성과 여성 노동급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의 생태계도 추가되었다. 고객과의 사투, 나아가 갑질과의 사투로 노동자는 여전히 피로한 위치에 있다.
이 책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만을 다룬 책은 많지만 여성 산업 노동자에 초점을 맞추어 쓰여진 책이라 가치가 있다.
내용은 대중서와 학술서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진다. 대중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쓰여 있는 편이다. 한국 여성의 노동사를 정제하여 읽을 만한 분량으로 묶었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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