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김기태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꽤나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전 첫 소설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읽은 책은 <세상 모든 바다>이다. 부모님이 자이니치인 제일교포3세인 하쿠와 한국인 백영록의 묘한 만남이다. BTS 이후 가장 성공했다는 케이팝 그룹인 세모바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바다는 ‘ALL THE SEAS OF THE WORLD’로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미로 보였다. 세모바는 인권,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평소 그런 가사와 메시지를 꾸준히 펼쳐왔다. 팬들도 이에 원전 건설 예정인 곳에 반대 메시지를 내며 ’SAVE MY BADA’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로나, 우리의 별>에서는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고 성공하는 오로나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기타 하나에 의지해 목소리로 승부하는 가수로 시작해 여러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기부를 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펼치게 된다. 스스로 길을 닦아 개척해나가겠다 말할 때는 결연한 기개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세모바와 오로나를 보면서 엔터테이너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바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출난 장기, 스타성을 원하면서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면 ‘적당히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게다가 도덕성까지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참 요즘 스타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보편교양>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곽은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고전교양’이라는 수업을 개설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엎드려서 잠을 자고 5명 정도만이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 5명의 아이들 중 은재가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입시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학교 수업도 모자라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 및 과외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쓸데없거나 사치라고 느껴질 수 있을테니까.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 아니냔 말이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코 등을 떠올리며…… 어떤 지도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은재 아버지는 학교를 통해 수업에 대한 항의를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히는 게 유해하지 않는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입시 과목 선생님이 아버지께 자본론은 문제 되는 저작이 아니라고 해명한 뒤 그제서야 곽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한다. 은재는 졸업식 때 곽에게 3학년 때 배웠던 과목 중 고전교양 수업이 가장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기뻐한다. 곽은 입시 과목에서 벗어나 보편 교양을 지향하려 했으나 학생의 이야기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면 학생이 입시, 점수에 목을 매는 것처럼 자신도 평가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교육자에 대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롤링 선더 러브>는 공포와 동경 사이를 저울질하며 마음의 길을 잃은 주인공 독신녀 맹희가 나온다. 그는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짝짓기 프로그램에 큰 마음을 먹고 나간다. ‘완두’가 된 맹희는 출연자가 아닌 인터뷰 때마다 만난 ‘우엉’ 피디에게 호감을 갖는다. 방송이 나간 후 맹희는 생각한다.
저게 나인가. 아니지. 저것도 나인가. 그건 맞지. 완두는 맹희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이긴 했다. 나 생각보다 관종이었을지도. 맹희는 갖가지 조합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시청자들의 반응을 찾아 읽었다. 각오는 했지만 어떤 말들은 너무 부당했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맹희 자신도, 감자도 토마토도 양파도 그들이 비난하는 만큼 잘못한 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남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무엇을 속이거나 팔아넘기겠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을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를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기대서만 채워지는 충족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만이 다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자연에서도 충분히 애정을 쏟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9편의 소설 중 좋았던 작품 두 개만 뽑으라면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무겁고 높은>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단순한 문장일 수도 있는데 그냥 좋았다. 니콜라이와 진주는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마트 직원으로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그렇기 않기에 서로를 향해 내민 손이 위로가 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차라리 이것은…… 딩동. 음식 도착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 선수인 송희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나라 스포츠는 일부 종목만 인기 있을 뿐 비인기 종목은 대중들조차 관심이 없다. 인기 종목도 프로 선수로 데뷔하고 성공하기 힘든데 비인기 종목은 그보다 더할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기록을 깨어 나간다는 것이 고독함을 불러오지 않을까.
송희는 마지막 대회에서 94kg의 바벨을 들었으나 100kg의 바벨을 드는 것에는 실패하고 경기장을 내려온다.
정확한 궤적으로 떠오르는 바벨. 무수히 상상했던 깨끗한 움직임. 꽂힌 원판을 세어보니 이미 100킬로그램이었다. 3차 시기를 위해 복도를 걸으며 송희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오늘 역도대에 오른 건 이십여 명. 그중 십수 명은 역도화를 벗게 될 것이다. 송희는 자기가 그 십수 명 중 하나라는 걸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다만 바벨을 떨어뜨리고 끝내고 싶진 않았을 뿐.
이 대목을 읽는데 뭉클했다. 자신과의 승부에서 송희는 적어도 지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송희는 쉽게 날려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만두더라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그는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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