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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 교환의 세계

category 리뷰/책 2024. 7. 25. 14:33

브로델은 마르크 블로크가 제안한 ‘장기 지속’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15~18세기에 걸쳐 다양한 공간을 배경에서 일어난 경제 활동을 역사적으로 비교한다. 거기에서 그는 하위에 존재한 일상의 교환 경제와 상위의 고차원의 경제가 구분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대립이 존재한다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두 층에는 각기 다른 사람과 경제 활동가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상위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하위에는 일상 생활에 존재하는 경제 활동(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물질생활’, 非경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 간의 비율은 물질생활이 훨씬 더 크게 자리하는 구조이다. 



다만 ‘자본주의’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책을 쓴 이후, 그러니까 20세기 이후나 되어야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15’~18세기에 진정한 시장 경제의 영역과 반대의 내용을 가진 이 영역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말로 거부하기 힘든 말이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논쟁이 있음에도 일부러 피할 필요가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궁금증을 가지면서 이 권을 읽기 시작했다.



1권이 아래 층인 ‘물질문명’과 일상 생활의 소비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2권은 상위 층인 자본주의 활동에 대해서 다룬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 교환 활동이 존재한다. 교환 활동은 시장 경제의 초기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장 경제는 늘 균형을 고집하고 어쩌다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지만, 동시에 변화와 혁신의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유통권이라고 지칭했는데, 나는 이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P23).



18세기가 되면 상점이 유럽의 도시를 비롯하여 시골 구석까지 생겨난다. 어느 곳에서나 상품 분배가 크게 늘어났고, 상점과 정기시(상설 시장)를 통해 교환이 가속화되었으며, 서비스업이 증가했다. 어느 한 곳에 상점 수가 늘다가 거리를 장악하여 포화되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행상 같은 떠돌이 상인이 아니라 고정된 가게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인구가 증가하였다. 게다가 물건만이 아니라 연극 등 볼 거리가 덧붙여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또한 상점들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신용 거래(외상)를 기꺼이 감수했다. 상인은 그에게 빚진 사람들과 그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 것이다. 물론 잘못되면 파산으로 가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주식 투자가 등장했다. 이 때도 일부 사람들은 거래소를 “바람장사”로 부르거나 ‘투기’ 등으로 비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물) 화폐는 교환 기능을 모두 처리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은 상품-화폐-다른 모든 상품이 반영되며 측정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상의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표시-화폐를 의미한다. 유럽의 대도시는 13세기부터 환어음(lettre de change)이 등장했고 공채나 은행 증권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래소는 지폐와 금속화폐 간에 전환 등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자리했다.



이제 생산 영역에 대해서 다루려면 자본과 자본가, 자본주의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세 개념은 거의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자본은 12-13세기경 등장했는데 이 때는 자금, 상품 스톡, 많은 금액의 돈, 혹은 이자를 가져오는 돈이라는 뜻이었다가 점차 회사나 상인의 화폐 자본을 뜻하게 된다. 이 중 자금(빌려준 돈 중 자본은 포기하고 이자만을 받는 상태에 이른 것)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한다. 18세기가 되면 자본이라는 단어가 점차 다른 단어를 압도하게 된다. 포르보네는 이미 “생산자본”이라는 말을 썼고 케네는 “모든 자본은 생산수단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언어에서도 이 말이 비유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있었다. 예컨대 볼테르가 죽기 몇 달 전인 1778년 2월에 트롱생 박사가 정확히 진단한 것처럼 “볼테르 씨는 파리에 온 이래 그의 재능이라는 자본을 소진시키면서 살고 있었으며” 친구들은 “그가 그 자본의 소득만으로 살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식이다. 20년 뒤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에서 전쟁 중일 때 한 러시아 영사는 혁명 프랑스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프랑스는 ‘자기 자본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지만’ 적국들은 단지 ‘그들의 수입만 가지고’ 전쟁을 한다!” 이 명철한 판단 속에서 자본의 뜻은 한 국가의 재산이나 부를 바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P323). 

자본가라는 말은 17세기 중반에 시작된 것으로 “공채”, 동산, 또는 투자할 돈을 가진 사람 등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다 대체로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여 더욱 많은 돈을 벌려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늬앙스를 가진 말로 좁혀졌다. 

자본주의는 20세기 초에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어로 정치적 단어로 등장하였다. 탁월한 역사가인 히튼은 이 용어를 단순히 배제시켜버리려고 했다. “모든 -ism이 붙는 말 중에 가장 소란스러운 것은 자본주의(capitalism)이다. 불행하게도 이 말은, 제국주의(imperialism)라는 말이 그렇듯이, 너무 많은 뜻과 정의가 섞여버린 잡탕이 되어서 이제 존경할 만한 학술용어로서는 배제해야 한다.” 뤼시앙 페브르도 이 말이 너무 남용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그렇다고 이 말을 버리는 것은 아깝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인 총체와 비교하면 상이하고 낯설기까지 한 독립된 세계이다. “자본주의”의 정의는 나중에 발전해나올 새로운 자본주의적인 형태와 비교할 뿐 아니라, 앞에서 말한 사회적, 경제적인 총체와 비교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19세기에 가서야 등장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같은 지난날의 경제의 이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과거 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 경제를 분석하는 데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P329~331). 



자본주의는 일찍부터 유럽의 도시 뿐 아니라 시골을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귀족들은 도시 근처의 땅을 사서 자산을 확보했다. 오늘날 돈이 있으면 토지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의 패턴이 떠오르기도 한다. 땅은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 안전한 투자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농민과 영주가 활동하던 유럽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질서였다. 그것에 성공한 영국의 농촌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였다. 첫째, 토지에 들러붙어 있던 예속성을 털어버리고 국가에 대해서는 농민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보상해주었다. 그리고 봉건적인 자격으로 소유하던 재산을 근대적인 의미의 사유재산으로 요구했다. 둘째, 계약을 통해서 토지를 자본주의적 차지농에게 임대하면 이 차지농이 자신의 책임하에 경영한다. 셋째, 프롤레타리아의 면모를 띠는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넷째, 수직적 분업이 이루어진다. 지주는 땅을 임차해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임차인은 경영자가 된다. 그리고 임금노동자가 이 분업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P390). 그렇지만 이런 대도시 등 몇몇 곳을 빼면 수 세기동안 대부분은 주변 지역이었다 할 수 있다. 주변지역은 영주제적이며 동시에 봉건적 성격으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 전체로 따지면 농업자본주의는 아주 소수를 차지했다. 



산업이라는 단어는 노동, 활동, 숙련 등 이전의 뜻과 혼동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 메뉴팩처, 공장이라는 단어와 오랫동안 경쟁하던 끝에 18세기경에 가서 오늘날 우리가 부여하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에 산업은 점차 대규모 산업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저자는 전(前)산업이라는 용어로 앞선 세기의 활동을 지칭한다. 선구산업이란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에 자본과 이익, 노동력을 자신에게 끌어모으는 산업이며, 원칙적으로 그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주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발전을 이끌어줄 수 있는(가능성만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산업을 말한다. 과거의 경제는 사실 통합성이 부족해서, 오늘날 저개발 국가들에서처럼 흔히 분해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 이웃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전산업화 시기의 세계는 현대 산업처럼 분야 간에 차이가 생기고 또 대단히 앞선 분야가 있는, 기복이 심한 면모를 가지고있지 않았고 또 가질 수도 없었다는 점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전산업은 상대적으로는 중요성을 가진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 전체를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어오지 못했다. 실제로 산업혁명기까지는 전산업이 결코 경제성장을 지배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확실한 성장을 보이는 데다가 고장과 급정거를 겪는 경제 전체가 전산업을 지배했다. 전산업이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고 툭툭 끊어진 곡선을 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 P430



상업의 근대화로 경제 생활이 발달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교환이 증가하면서 분업이 증가했다. 상인들은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고 가능한 빨리 새로운 정보를 모으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특권을 이용하여 국가나 기업과 공모하며 원거리 무역(저자는 1등 복권이라고 표현한다)을 행했고 이는 독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사는 자본주의와 직접 연관을 가지며, 자본주의의 진화를 이끌었다. 대규모 회사(동인도 회사 등)는 자본과 국가에 동시에 관련되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바다가 뚫리며 후추, 향신료, 곡물, 금/은 등을 얻기 위한 무역 경쟁에 뛰어든 유럽은 세계의 계서화에 상층부를 담당하게 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특권층은 언제나 아주 소수였다. 전체 잉여는 증가하더라도 사회 상층의 소수 인구가 증가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이 유래한 자유경쟁을 완전히 배제해버리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의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공존한다. 왜냐하면 15-18세기의 경제-옛날부터 발달해온 몇몇 “중심들”로부터 시장경제와 교환경제의 승리를 통해서 공간을 정복한-역시 레닌이 19세기 말의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수직적인 구분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혹은 법률상의) 독점과 경쟁이 그것이며, 달리 말하자면 내가 정의하는 바의 자본주의와 발전 중인 시장경제가 그 두개의 층이다(P802).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경제발전이 마침내 찾아서 도달하게 된 약속의 땅이며 진보의 최종적인 만개로 보였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그는 자본주의를 결코 취약하거나 일시적인 체제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 죽음, 혹은 적어도 일련의 연속적인 격변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 중이다. 어쨌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최종 단어로 보이지는 않는다. - P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