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가 멸망한 후 중국은 청 제국의 강역을 계승했고 만주족은 중국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사의 영역은 중국 내지China proper를 넘어 청 제국이 지배한 광활한 공간을 포괄한다. 중국은 만주 지역을 동베이東北라고 부르며 중국사가 포괄하는 공간으로 편입시켰다. 반면 한국에서 만주 지역은 한국 고대사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두 나라는 만주 지역에서 태어난 국가를 각자 ‘국사’의 일부에 배치했고, 역사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자의 역사 공간은 충돌한다. 양자의 사이에서 만주족과 그들의 조상이 영유했던 그들만의 역사와 그들만의 공간은 실종되어 갔다. 이 글은 만주족이 살았던 이야기를 그들의 시각으로 서술했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는 데 이 글이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청의 역사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만주족의 역사를 자연스레 훓게 된다. 근대 중국의 마지막 국가가 청이었기도 하지만 중국 땅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와 붙어 있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던 위치에 있었다. 다만 서로의 이해도가 달라 지금까지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책과 자료를 통해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명과 인명 등을 원어인 만주어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독자는 낯선 용어로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기존에 우리는 관련하여 한어적 명칭과 발음이 자연스러운 탓이다. 현대 만주족의 규모가 거의 줄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역사를 다루는데 만주어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한자만을 사용한다면 반쪽짜리 이해일지 모른다. 게다가 중국은 다양한 민족을 구성원으로 하므로 특정 시각에 입각하여 서술된 역사는 몰이해를 불러올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여 만주어를 사용하여 책을 기술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읽다보니 괜찮아졌다.
1599년 누르하치는 여진 통일의 장정을 시작했다. 그해 건주여진은 하다를 공격했고, 하다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먼저 멸망했다. 하다의 마지막 버일러인 멍거불루는 생포되어 건주여진의 수도인 퍼알라에 끌려와 있다가, 누르하치의 비첩婢妾과 사통하고 대신인 가가이G’ag’ai, ?盖(?~1600)와 밀통하여 찬탈을 도모했다는 죄로 죽임을 당했다. 1607년에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약했던 호이파가 멸망당했다. 호이파의 바인다리 버일러는 방어를 위해 도성을 삼중으로 축성한 보람도 없이 누르하치의 공격을 맞아 패배했고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울라는 호이파가 멸망한 후에 6년을 더 버티다가 멸망했다. 해서여진 후기의 맹주였던 여허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오래까지 버티다가 1619년에 멸망했다. 몇 년간이나마 건주여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방파제가 되어 여허의 멸망을 막아 준 것은 명이었다. 명은 1619년 1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몇 년 전부터 아이신 구룬金國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던 건주여진을 공격했다. 그러나 명의 공격이 완전히 실패하자 여허는 후원자를 상실했다. 명은 여허를 후원하고 지켜 주기는커녕 신흥 금나라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해 가을 누르하치는 여허를 공격했고, 동성의 버일러 긴타이시와 서성의 버일러 부양구는 피살되었다. 해서여진의 마지막 국가가 멸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만주족의 구성원은 어떤 방식으로 분화했을까. 우선 1644년 청이 중국 땅에 들어와 만주족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구성원이 다양해졌다. 1635년까지만 해도 청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있었던 것은 여진족과 소수의 한족, 조선족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는 강희제 시기 만주 동북부에 있던 퉁구스계 민족과 소수의 러시아 계열의 민족이 유입되고 건륭기에는 동투르키스탄에 있던 소수의 투르크계 사람들이 팔기군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만주족’이 가진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만주족은 성이자 씨족 집단인 ‘할라’, 2개 이상의 씨족 집단이 모인 ‘무쿤’, 하나의 할라가 여러 마을에 들어가서 각 마을에 서로 다른 할라가 섞이는 ‘가샨’ 등을 가진다. 만주족이 성을 잘 쓰지 않는 것은 국가를 세우기 전에 할라인 씨족 집단으로 생활했던 시기의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누르하치는 여진 통일 과정에서 대부분 집단 고유의 조직을 니루에 배속시켰기 때문에 그들이 팔기에 편제된 후에도 큰 혼란이 없을 수 있었다.
둘째, 수렵과 군사 훈련이다. 만주족은 국가를 수립하고 나서도 수렵을 생산 활동의 일부로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군사 훈련의 과정으로 이용했다.
셋째, 황실에서 지낸 샤머니즘 제사인 탕서와 곤녕궁 제사다. 누르하치는 경쟁 여진 부족을 물리친 뒤 씨족 수호 신령을 모신 사당인 당서를 파괴함으로써 누르하치의 탕서가 다른 모든 씨족의 탕서를 대체하게 하면서 복속된 여진인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홍 타이지는 탕서 제사를 황실이 독점하게 하고 굿을 금지시켰다. 곤녕궁 제사는 탕서 제사와 유사하지만 하늘신, 조상신 뿐 아니라 석가모니, 관음신 등 외부에서 가져온 신도 섬기는 것이 특징이다.
넷째, 조선 시대 말을 끄는 하인인 ‘거덜’이 있었던 것처럼 만주족은 ‘쿠툴러’가 있었다. 쿠툴러도 말을 관리하는 하인이지만 기병 위주의 전쟁을 하는 만주족에게 말을 관리하는 그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다섯째, 오락, 전투 훈련으로 빙상 경기를 했다. 건륭제는 자금성 북해에서 빙상 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1925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북해는 겨울에 북경 시민이 스케이팅을 즐기는 장소로 기능했다고 한다. 여섯 째, ‘가추하’라는 놀이다. 가추하는 포유류의 발목관절뼈를 지칭하는 만주어로 뼈(주로 양이나 돼지의 뼈를 이용)를 던지며 노는 것이다. 가추하는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즐기는 대중 놀이였다.
일곱째, 만주어다. 홍타이지는 특히 한어의 유입으로 만주어가 상실될 위협에 놓인 것을 경계하여 한어, 몽고어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주족은 점차 한족의 문화에 익숙해졌고 한자 사용이 많아지면서 소멸되어갔다.
청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조치는 다양했다. 귀족층 자제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당근을 주는 대신 귀족층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황제가 몽고 왕공을 자주 접견하고 장성 밖에 사찰을 지어 타 민족을 고려하는 모습을 비춰주기도 했다. 동전에 만주어와 한어를 함께 새기면서 백성들에게 통합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도 있었다. 신강을 정복한 이후에는 전쟁기념관인 자광각을 세워 군사적 메시지를 주었다. 한인이 숭배하던 관우 신앙을 만주족 지배자들은 계속 존숭했다. 관우 신앙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청의 변경은 제국의 역사 동안 끊임없이 변경되는 과정을 거쳤다. 1644년 청은 입관 후 수십 년간에 걸쳐 중국을 정복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한 상황에서 다수의 병력을 원거리의 동북방 흑룡강 유역으로 파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침입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청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아 소규모 병력을 동원하고 현지의 부족민을 병력으로 활용하며 때로는 조선군을 동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청은 순치기에만 1652년부터 1660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수백 명 내지 1,000여 명의 소규모 병력을 파병하여 흑룡강 유역 곳곳에서 러시아인을 공격했고 부족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다섯 차례의 전투 가운데 조선군은 1654년과 1658년 두 번 참전했다. 조선의 신유 장군이 참여하여 알려진 ‘나선 정벌’이 이 중 하나다.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후 만주 지역의 북방은 안정된 상황으로 진입했지만 청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부족민을 팔기로 편제하는 정책을 계속 진행시켰다. 시버족은 이 때 만주에서 신강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책은 만주족의 역사도 다루지만 특히 ‘만주족’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여겨졌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원하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적합했고 역사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무얼 하며 살았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하기 때문에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주족에 대해서 세밀하게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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