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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2

category 리뷰/책 2024. 1. 31. 09:27

1편에 이어 2편을 읽었다. 이번 편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수도가 상당수 포함된 것이 눈에 띄었다.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프놈펜, 비엔티안, 이렇게 다섯 곳이다. 수도는 국가의 대표성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발전을 위해 인력과 기술을 집중 투입한다. 그래서 그만큼 개발이 이루어지고 인구가 집중되어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는 화려함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수도는 근대에 들어와 제국주의에 의하여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으나 그 이전부터 왕국의 수도로 역할을 한 도시도 있다.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마닐라가 근대에 이르러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프놈펜과 비엔티안의 수도 역사는 그 시기를 꽤나 거슬러 올라간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은 크메르 제국이 멸망할 무렵인 1434년에 크메르의 수도가 되었으나 그 이후 캄보디아의 역사는 쇠락에 쇠락을 거듭해서 수도라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버려지고 잠시 수복되었다가 다시 버려지고, 나라가 힘이 없어지니 왕도 예전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는 1975년 크메르 루주군이 권력을 장악한 뒤 벌어진 폭압의 상처가 깊게 패어 있는 곳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론 놀 정권의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은 처음에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를 환영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민족주의 정신으로 남베트남과 미국을 적대시하고 인민을 해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자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없애고,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대학살에 나섰다. 크메르 루주는 당시 프놈펜에 살고 있던 모든 주민을 강제로 시골에 이주시켜 이 지역은 사실상 페허가 되어 있었다. - P16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81년 자진 해체했으나 이 때 새 정부에 도움을 준 베트남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물러나면서 1993년이 되어서야 캄보디아 왕국으로 국명이 바뀌고 시아누크가 왕이 되었다. 다행히 깊은 상흔을 뒤로 하고 현재 프놈펜은 빠르게 거점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 빌딩, 공원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등 이제는 제법 수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1353년 지금의 루앙프라방에 란상 제국이 세워졌다. 1479년 다이비엣 공격으로 수도가 페허가 되면서 1560년 수도가 비엔티안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1828년 비엔티안은 시암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프랑스가 들어오고 나서 1900년이 되어서야 재건되었는데 1940년 시암 공격으로 또 한번 파괴된 뒤 재건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현재 라오스의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라오스하면 ‘루앙프라방‘만 익숙하고 ‘비엔티안‘이란 이름 자체가 낯설었는데 16세기부터 한 왕국의 수도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루앙프라방은 그 이전에 수도였고 당시의 왕궁과 사원이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기에 도시명이 익숙했던 것 같다.
작가가 라오스에 대한 역사와 관련 문물, 문화, 먹거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다.
짧은 일정으로 가는 여행자는 여행지를 아무래도 깊게 들여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곳의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느낀다면 아무래도 그 여행지가 더욱 오래 기억남는 것 같다. 개인의 역사는 역사에서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현재의 사람들에게서 삶의 향기를 느낄 수는 있지 않을까.

바나나 잎으로 살포시 싼 소시지와 파파야샐러드 봉지를 들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많은 박물관과 기념관과 국보로 지정된 사원에서 찾으려고 했던 라오스의 역사는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역사책에서 빠졌을 뿐 그 땅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파탓루앙 회랑을 돌며 기도하던 사람들, 아누웡 왕 공원에서 과일을 팔거나 야식을 팔던 사람들, 빠뚜싸이 공원 분수대 근처에서 산책을 즐기던 가족들, 뚝뚝 택시비를 어떻게 흥정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수줍게 알려주던 호텔 직원. 그들이 없었다면 라오스라는 나라가 어떻게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을까? - P345~346

참! 프놈펜 말고 캄보디아의 도시가 하나 더 소개되었다. 시엠립인데 앙코르와트에 가려면 이곳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에 유명하다. 시엠립은 앙코르 왕조가 있던 곳이고 왕조가 몰락한 후 19세기 후반까지는 태국이 점령했다가 이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860년 초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베르 앙리 무오가 방문한 후 책을 출발해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사회에 앙코르 와트의 존재를 알렸다. 당시 앙리 무오는 약 400년 전에 멸망한 옛 도시 앙코르의 유적을 본 것인데, 당시 그곳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기거하고 있었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인근 태국을 공격하여 캄보디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했고, 1863년 프랑스 보호령으로 삼았다. - P81

시엠립에는 앙코르 유적군인 프놈 바켕 사원, 앙코르와트, 앙코르 톰, 타 프롬 사원이 있고 앙코르 왕조가 성스러운 산으로 부른 프놈쿨렌산과 프놈쿨렌 폭포가 있다. 또 초기 왕코르 유적군인 프레아 코, 바콩, 롤레이 사원이 있으며 거대한 바다 같은 호수인 톤레사프도 있다. 올드 마켓 지역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의 도시들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부는 마젤란이 닿은 곳으로 필리핀에서 가톨릭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라고 한다. 세부는 스페인령 식민지일 때 멕시코 남미 문화가 들어와 대농장과 지금의 다운타운 지역에 석조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이후 미국령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도로나 근대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자카르타는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무역항(바타비아)이자 식민 도시로 개발이 되었다. 1961년 수도가 된 이후 자카르타는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 수 때문에 남쪽으로 도시를 확장하여 지금은 천만 인구가 되었고 규모가 커진 만큼 빈부 격차가 커졌다고 한다.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수도이자 최대 도시, 정치 중심지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로 특히 중국인과 인도인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잘 닦인 도로, 편리한 교통 때문에 관광객들이 관광하기에 좋은 도시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도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후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후에는 베트남 중부 도시로 다낭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 최초, 최후의 통일 왕조였던 응우옌 푹아인이 수도로 삼은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 황성과 사원이 전하는데 안타깝게도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겪은 곳이라 온전하지가 않다.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전역에서 구정 공세를 감행해 100개 이상의 남베트남 도시를 기습했다. 다른 도시는 미군이 수비게 다시 탈환했으나, 후에에서는 예외적으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북베트남에서 대략 5,000명 이상의 병력이 공격을 단행했고, 북베트남 인민군에 의해 후에 대학살이라 불리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미군은 폭격기를 동원해 후에를 휩쓸었고, 이 과정에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 P273

다낭은 프랑스가 들어온 후 식민지 항구로 유명해졌다. 15세기까지는 강력한 해양 국가였던 참파 왕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동서 무역의 요청지로 일찍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는 중부 최대의 상업도시이자 중부 유일의 직할지다. 만약 후에의 유적이 온전했다면 다낭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을까.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정신적 문화 수도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왕불사상(왕=부처)이 잘 구현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승려의 신분적 위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윈난성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중국인의 비율이 50% 이상이라고 한다. 아마도 미얀마의 중국 같은 느낌이 아닐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동남아시아에 일찍부터 전파되었고 동남아시아는 이렇게 인도화되었다. 고대 왕국은 종교와 뗄레야 뗄 수 없는데 이런 불교가 수입되었으니 동남아시아의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도화의 핵심은 바로 왕권의 확립인데, 4~6세기에 동남아시아 각 지역이 받아들인 힌두교와 불교는 왕권의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샤머니즘이나 토템, 애니미즘과 같은 토착 종교에 의존하던 지도자의 권력이 일시적이었다면, 힌두교 및 불교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신과 왕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인도화 이후 왕의 권력은 절대화, 영속화하기 시작한다. 힌두교 세계관의 절대 신인 비슈누나 시바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자신을 신 혹은 부처의 화신으로 자임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충성을 이끌어내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통치 방식이 바로 인도화의 영향이었다. - P185

만약 나중에 인도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가게 된다면 불교와 힌두교(신과 경전 포함)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다양한 경우 글쓰기 스타일에 따라 호불호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은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총 13개의 도시를 소개하는데 나는 그 중 자카르타에 대한 소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도시 내부를 구석구석 소개시켜주는데 시기별로 가상의 인물 세 명을 등장시켜 그들의 일상을 따라 가며 알려준다. 이 방식은 마치 내가 그곳에 가서 그 사람들의 현장을 보는 느낌이어서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대중들이 그 나라의 역사와 도시, 문화를 이해하기에 탁월한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에는 감동이 일었다.

‘완벽한 승리‘ 혹은 ‘승리의 행위‘를 의미하는 자카르타는 대략 400년 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무역항이자 식민 도시로 개발되었다. 17세기 향신료를 운반하던 상선의 선원, 19세기 가난과 차별이 일상이었던 식민지의 소년, 21세기 도시 빈민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400년 동안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자카르타는 항상 최첨단의 문물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때로는 엄청난 환희와 극심한 고통 그리고 좌절감을 안겨준 도시였다. - P279

이 시리즈가 뒤이어 더 나올 수 있을까. 아직도 동남아시아의 도시 중 많은 곳들이 비어 있다. 독자로서 더 만들어져서 많은 곳이 소개되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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