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빈자'란 누구인가. '빈자'라는 개념 정의는 누구를 포함시키고 제외시킬 것이냐, 범위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마저도 그 기준이 모호하다 느꼈다. 기초법 제도 하에 있는 사람 아니면 그 언저리에 걸쳐 있는 사람, 그도 아니면 아예 법의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집이 없는데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각자가 생각하는 부의 기준이 달라서 자신이 중산층이고 고소득자임에도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를 꽤나 많이 보았다.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동종 업계의 교수로 이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힌다. "우리가 어떤 빈곤을 어떤 방식으로 쟁점화하거나 외면했는지 톺아보면서'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를 부단히 질문하려했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인류학자가 생각하는 빈곤의 개념 정의와 범주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을 눈여겨보며 읽어내려갔다.
나는 1부 중 3, 4장을 먼저 읽고 다음 1, 2장을 읽은 후 나머지 2부, 3부를 마저 읽었다. 1, 2장은 이론적인 설명을 다루고 3, 4장은 구체성을 띤 사례를 들고 있어서다.
3장은 우리가 하는 '노동'을 어떤 것으로 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임금 노동, 비공식 경제 활동, 가사 돌봄노동, 자원 확보를 위한 분배 노동 등 노동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받고 하는 노동만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밖의 노동은 도외시하며 가볍게 본다. 내가 당장 노동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누가 나를 돌보는 사람도 없고 가진 돈도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빈곤해지지 않기 위해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장은 홈리스, 이주자, 난민들에게 '집'이란 무엇을 뜻하며 '자격'을 증명하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자격을 의심 받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과정은 자아를 분리 및 박탈시키며 사회에서 개인을 고립시키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섬뜩했다. 이주자(난민), 기초법 대상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서류를 제출하고 증명해내는 일 말이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금융의 일상화로 투자가 주업이 된 사람들이 허다하고, 기술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임금노동의 비중은 계속 줄고 있지만, 빈곤 통치에서 임금노동이 갖는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노동이라는 기준이야말로 근대 빈곤 통치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강제노역에서 근로연계복지에 이르기까지, 빈곤 통치의 역사는 인간에게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일련의 지식과 제도를 구축해온 과정이다. 여기엔 멀쩡한 노동자라면 수급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빈곤 통치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운동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급은 물적 관계이지만 ‘노동자‘는 수많은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탈구된 지 오래이다 보니(신현우2022: 71) 이상적인 노동자의 ‘자격‘에 대한 암묵지를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 P105
인류학자들은 집home 을 건조물이나 자산에 국한하지 않고 일종의 희망이자 미래로, 세계에서 자기 자리place를 확보하려는 지속적 노력과 꿈의 표현으로 봤다. 사람들은 집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물질성, 감정, 사회적 관계, 거주 실천의 교차 속에서 부단히 만들고, 이 실천 속에서 소속, 안전, 가치의 감각을 조율한다.(Samananiand Lenhard 2019 7) 이는 홈리스, 이주자, 난민에게 분명 더 위태롭고 고된 노동이다. - P151
1부는 가난을 우리는 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가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기초법(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1999년 9월 공포되고 2000년 10월 시행되어 지금까지 사회 공공부조의 대표적인 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법이 빈자를 다 품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혜택이 충분한가도 의문이 든다. 게다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기초법 대상자가 되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서부터 스스로 박탈감을 느끼는 과정인데다 대상자가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 등(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으로도 타인을 차별하고 괄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2부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사회에 '의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해보게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한 이후에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일명 '각자도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와 너의 일은 무관하며 나의 일만 신경쓸 뿐이라는 이런 사회에서 자립은 당연한 숙제가 되었지 않나. 사회에서 도태되어 빈자가 되면 부정적 인간으로 낙인 찍는 상황에 복지 혜택에 대한 논의가 순수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 것 같다. 보편적 복지를 하기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는가의 문제가 있고, 선별적 복지라고 하면 혜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를 않을테니 말이다.
수급이 빈곤네트워크의 의무통과점이 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까닭은, 정부 정책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서사,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모두 수급(기초법)을 경유해 그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공공부조의 수급자로 구획되면서 가난은 특정한 양식과 문법 안에 고이고 말았다. 빈곤을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핵심 의제로 삼는 일은 그렇게 점차 요원해졌다. 빈곤이 ‘우리의 삶‘에서 ‘저들의 문제‘로 고립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빈곤을 끝장내자는 결의를 압도해버렸다. - P28~29
의존성 논의가 복지 영역에서 특히 만연한 것은 사회복지야말로 후술할 사회적 빈곤 의제와 조응하여 등장한 지식과 기술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 복지학 발전의 주요 참조국인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전해온 사회공학과 개척 서사를 중심에 둔 선별적 역사 서술이 결합하면서 자율적 개인과 독립을 이상으로 삼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자립‘을 숭배하고 ‘복지 의존welfare dependency‘을 경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시선을 부과하는 담론 권력으로 자리 잡고, 이들의 사회 안전망을 최소화하는 정치 전략으로 작동해왔다.(O‘Connor 2001; Fineman 2004) 이러한 흐름에 맞서, 진보적 사회복지학자들은 의존의 보편성을 환기하며 복지 의존에 씌우는 혐의를 거둘 것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복지 의존을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증진할 수 있는 기초"로 재정의하는 움직임(김병인 2017 88)이나 돌봄 윤리의 선언만으로 의존이 문제가 된 현실에 균열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복지가 직업화·제도화·산업화를 거치며 ‘성장한 역사란 뒤집어보자면 사회복지 체제 구축에 관여해온 종사자들이 가난한 사람들한테 ‘의존해온 역사다. - P66~67
2부는 빈곤 현장에 현장 실습, 자원봉사 등을 떠난 청년들의 실태와 빈곤의 취약성에 따른 전염과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빈곤 레짐은 일관된 구조를 갖는다기보다 지역적·상황적 실천과 개입에 열려 있다. 한국이 이 레짐과 접속하는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원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의 위상을 널리 알리겠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팽배하다는점, 그리고 정부·대학·기업이 긴밀한 공조하에 (특히 대학생) 청년을 해외 자원봉사의 주요 주체로 구성해내면서 실업의 ‘위기‘를로벌 리더 창출이라는 ‘호기‘로 바꿔치기했다는 점이다. 저성장 시대에도 경쟁력만 부르짖는 환경에서 실존의 결핍을 호소해온 청년들이 열정 노동과 창의 노동을 불태우며 글로벌 빈곤 퇴치를 위해싸우는 가장 역설적인 전사가 된 것이다. - P211~212
이렇게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닥뜨린 개인으로서의 실존은 빈곤을 보듬는 치유 기제가 되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에피소드를 찾아 나서는 활동은 일시적으로 기쁨(만족)을 줄 뿐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에피소드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런 과정은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나락에 빠지는 다름 아니다.
빈곤은 특정 세대나 집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하다 중요한 것 같다. 빈곤은 안전한 집이어도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연결이 급증한 시대, 나락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빈곤 감각을 증폭시키는 시대에 빈곤·복지·노동 담론이 서로 맞물리면서 ‘빈민‘을 조립했던 문화 정치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주자, 난민 등) 정치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놓인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겨냥하는 낙인, 열악한 사람들이 서로를 구별 짓는 표식을 전방위적으로 확산해낸다. 정상과 비정상은 특정 개인의 상태가 아닌 관점에 불과하지만(Goffman 1963: 137), 빈곤 전염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점을 인격화하는 데 몰입한다. - P294~295
프레카리아트는 Proletariat (프롤레타리아트)에 불안정한 위태로운‘이라는 뜻의 형용사 precarious가 결합된 단어다. 이 단어는 신자유주의적 모델에 기반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조합과 사회보장 시스템의 보호 바깥에서 떠돌게 된 불안정 노동자들을 주로 지칭하지만, 여성, 청년, 노인, 소수 종족, 장애인, 범죄자, 이주민 복지 수급자 등 삶의 불안과 노동의 불안을 동시에 떠안은 다양한 집단도 포괄한다. 과거의 안정된 노동계급과 달리 "사회적 기억"이 부재하고, 소외, 아노미, 불안, 분노 등에 휩싸이기 쉽다는 점에서 가이 스탠딩(2014 58-59)은 이들을 형성 중인) "새로운 위험한 계급으로 명명했다. - P310
프레카리아트는 위계적인 질서 하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불안정한 이들은 더 불안정해지기 쉬우며, 위험에 빠지기 쉽고, 망가지거나 전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3부는 인류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해야 할 자세와 태도는 무엇인지 나눈다.
우리는 흔히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을 한다. 이 개념은 파울 크리천이 제시한 것으로 현재의 지구가 인류의 생태-존재론적 위급 상황을 맞이한 것에 대한 핵심 표지로서의 설명이다. 현재가 인류세인지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지구의 환경이 오염 및 파괴되고 전쟁으로 난민이 생겨나며 빈자들이 새롭게 생성되는 상황은 앞으로 갈수록 늘어날 것은 확실해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도생하자라고 결론을 낼 수는 없다. 난민, 빈자, 이주자, 소수자 등은 기본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가 어느 날 사업이 망해서,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절망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개별 인간에게만 맡겨서는 지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비단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공통의 인식과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데 뻔한 구호기는 하지만 사실 결국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기는 누구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구체적인 해결은 사회적 제도, 교육, 운동 등으로 메워나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발전의 꿈이 아무리 집요하고 중독성 강하다 한들 누구도 삶의 취약성과 유한성을 피해갈 수 없다면,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취약성과 유한성을 개별 인간의 불행으로 남겨두기보다 지구생활자의 공통 인식과 감각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제도, 교육, 운동일 것이다. 기후변화와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위기를 논하는 공론장은 전례 없이 많아졌지만, 각자 알아서 방공호를 구축하던 사람들이 더 거대한 위기를 감지한다고 해서 곧바로 연결되는것은 아니다. - P386~387
이 책은 학술서 성격이라 다양한 이론의 인용 및 사례(논문 등)가 등장한다. 대중들이 읽기에는 약간 어려운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책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현장의 목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등 낯선 용어와 이론 등은 사례를 통해서 이해했다. 2022년 말 발간된 책으로 당시에도 눈여겨보았던 책이었지만 바로 읽지는 못하다가 작년 말 신문사에서 뽑은 2023년 올해의 책 중 한 권이길래 읽게 되었다. 앞으로도 사회에 환기를 주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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