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책] 갑골문자

category 리뷰/책 2024. 1. 21. 21:12
 
갑골문자
고대세계 갑골문자부터 톈안먼의 혁명 정신까지- 역사 이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온 아시아의 초강대국 중국. 이곳을 찾은 미국인 저널리스트 피터 헤슬러는 마을과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의 인간적 측면을 생각한다. 고대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우아하게 오가는 이 책은 우리 눈앞에서 중대한 변혁을 겪고 있는 거대 제국의 영혼을 펼쳐 보인다.
저자
피터 헤슬러
출판
글항아리
출판일
2023.11.30

따스한 봄밤이었다. 날씨는 아직 덥지 않았지만 나무가 무성해져 잎이 가로 위로 늘어졌다. 난징에는 옛 성벽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이따금 저 멀리 어두운 윤곽이 보일락 말락 했다. 도처에 사람들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공안은 네거리에 서서 일정한 운율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는 시위대를 지켜보았다. 리더의 구호, 짧은 정적, 따라 고함치는 군중 소리. 구호, 정적, 궁중 소리. 우리는 걷다가 갑자기 빨리 뒤고 또 다시 걸었다. - P35

때는 1999년 5월 8일, 중국 도처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문화 대혁명 이래 가장 격렬했던 항의 행동이었다. 군중이 분노한 이유는 알바니아 종족의 역경이 빌미가 되어 발생한 나토의 폭격 행동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세 구호가 반복되어 나왔다. “미제를 타도하자, 나토를 타도하자. 켄터키를 먹지 말자.” 
한국도 5.18 이후 미국의 이중적인 행태가 드러나자 대학생들의 시위가 줄곧 이어졌다. 이는 1987년 민주 항쟁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군의 장갑차로 여중생들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고 미국산 소고기 문제도 있었다. ‘미제’라는 단어는 지금 들으면 거부감이 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당시 한국에서도 미국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미소의 냉전기 때도, 탈냉전 때도 미국은 패권을 놓으려고 한 적이 없다. 
알바니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국가로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1991년이 되어서야 수교한 국가다.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 집권 후 코소보가 세르비아인의 성지라는 이유로 자치권을 박탈한다. 이에 알바니아 계 코소보인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유고슬라비아 vs 코소보 해방군 세력 간에 전쟁이 발발한다. 코소보 전쟁에 나토와 미군이 참전하면서 사태는 악화 일로를 겪었다. 

이 책은 1999~2004년 사이 집필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종결 지점까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중국의 신장 지구, 타이완 등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시간 순으로 배치하여 중미 관계, 북중 관계 등 당시 사회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에 보도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 경험을 쏟아낸다. ‘폴라트’를 제외하고는 등장 인물이 모두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마치 사건을 지금 만나듯 박진감 있게 느낄 수 있다.

나는 크게 세 개의 사건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이미 언급했고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의 군용기 충돌 사건, 세 번째는 9.11 테러 사건이다.

2001년 4월 1일 아침 두 대의 군용기가 남중국해 해상의 국제 영공에서 서로 충돌했다. 한 대는 미국, 다른 한대는 중국의 것이다. 중국 군용기는 전투기로 심하게 부서졌다. 미국 정찰기는 부딪치자 곧바로 2.4킬로미터 추락했다가 통제를 회복한 뒤 중국의 하이난섬에 긴급 착륙할 것을 요청했다. 비행장 관제탑에서는 회신을 주지 않았으나, 미 군용기는 착륙했다. 비행기의 남녀 승무원 스물네 명은 즉각 인민해방군에 의해 구금되었다.
이 사건 중 어느 것도 독자적이고 비군사적인 관찰자에게 목격되지 않았다. - P476

당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미국과 중국 모두 입장을 발표했으나 서로 다른 말을 한다. 4월 9일, 당시 미 대통령인 부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반드시 중국에 사과하고, 아울러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국의 언론은 완전히 다른 논리로 이 사건을 계속하여 이끌고 갔다. 중국은 미국 비행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비행기끼리 충돌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중국의 소형 비행기가 먼저 도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미국은 그 전부터 중국 비행기가 그들의 정찰기에 접근했기 때문에 도발할 의도가 있다 말한 것이다. 
추후 주중 미국 대사는 서한에서 “우리가 구두 허가를 거치지 않고 중국 영공에 들어가 착륙한 대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승무원의 안전한 착륙에 대해 매우 위안을 느낍니다. …”라고 표현했으나 콜린 파월은 발표 후 기자에게 말하길 “사과할 만한 것은 없다. 우리가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튿날 베이징신보 1면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끝내 사과하다’
1999년 중국의 나토&미국 항의 시위 이후 이것이 두 번째 외교 최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중국도, 미국도 서로 다르긴 해도 결국 자국의 기호에 맞게 해석하는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뉴스를 보고 미국을 욕했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미국의 뉴스를 보고 중국을 욕할 것 아닌가. 언론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준다. 뉴스코퍼레이션은 똑같은 화면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애국주의를 판매한다. 두 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사들인다. 

뉴스 보도에서 두 단어, 즉 ‘스모크’와 ‘펜타곤’을 알아들었다. 조선족이 폴라트에게 테러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들은 함께 스시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무너지는 빌딩, 화재에 휩싸인 펜타곤. 뉴스 보도에서 공격은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의 행위이고, 더 많은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국의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했다. - P499~500
웨칭의 비디오 가게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의 해적판 영상을 팔았다. 가게 주인은 최초의 해적판 영상이 공격한 지 3일 만에 나왔다고 말해줬다. 9.11 비디오는 저가의 진열대에 들어본 적도 없는 미국 영화와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인류에게 크나큰 재난을 가져다준 미세 곤충” 그 뒤에 9.11 비디오가 있었다. 모든 9.11 비디오는 할리우드 영화와 유사한 모양으로 포장되었다. 세기의 대참사란 이름의 DVD는 겉면에 오사마 빈라덴과 조지 W. 부시 사진이 붙었고, 배경은 불타는 쌍둥이빌딩이었으며, 밑에는 폭력성과 불건전성의 정도에 따라 ‘R’ 등급이 매겨졌다고 표시한 작은 아이콘이 있었다. - P504

9.11 테러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과 무슬림인에 대한 공포로 확산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견고한 무기 체제(핵무기 등)로 방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유효한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녹화 영상이 해적판 비디오로 길거리에서 팔렸다니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건물이 파괴되는 사고였는데… 수요가 있을 거라 여기고 급히 만들었을거란 짐작 뿐이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해적판 비디오 하니 과거에는 한국에도 해적판 비디오가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보지 않았거나 봤다고 해도 인상적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산업화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이 겪었던 것을 비슷하게 경험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전 등 경제 특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많은 인구들이 유입된 것, 텔레비전 리모컨을 두고 가족 간에 기싸움을 벌이는 일, 세대 갈등,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 미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떠난 이민자들, 영어 의무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로 바뀌었어도 사회주의 국가임은 마찬가지였고 중국의 정치는 오히려 내부 단결의 기치로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 탄압과 이용(특히 신장 지역), 타이완의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외교군사적 마찰, 위구르족을 탄압하기 위한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 등이 진행되었다.

이 책이 독특한 지점은 기자의 시선에 따른 논픽션 이야기들 사이에 중국 유물들을 설명하고 파헤치는 코너다. 문자의 세계부터 성벽, 청동 두상, 책, 뼈, 글자, 말 등을 싣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간자체가 만들어진 과정이 나온다. 중국의 말 문화는 세월을 거듭하여 달라졌어도 글말은 계속 하나로 고수되었기 때문에 한자는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물론 제국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글말의 유지는 중요했다. 그러나 중국은 서양에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 지식인들 내부에 교육 혁신과 언어 현대화의 요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에 문언문을 폐지하고 각지의 방언에 한자를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중국 간자체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문화 대혁명 때 번체를 옹호하며 소신 발언을 한 이는 우파로 몰려 자살을 하고 정권에 아부한 이는 이후 하상주단 대공정(중국의 고대 역사를 앞당기는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간자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

“물론 공산당은 1940년대부터 라틴화한 자모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변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권력을 장악하자, 더 신중해졌습니다. 그들에게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개혁이 지체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다른 요소는 1949년 마오쩌둥의 첫 소련 방문입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스탈린을 전 세계 공산주의의 영수로 존중했으며, 그는 중국이 문자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며 스탈린의 조언을 구했답니다. 스탈린은 그에게 ‘당신들은 대국이므로 자신의 중문 서사 방식을 가져야 하며 라틴 자모 계통을 단순히 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지요. 그것이 바로 마오쩌둥이 전국적으로 통일한 자모 계통을 바랐던 이유입니다.” -P673

스탈린이 문자 개혁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주었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중국어 간자체와 번자체가 나누어짐으로 인해 공부하기 더욱 복잡해진 면이 있다. 성조도 어려운데 한자가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한자(번자체)와 달라서 이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간략한 한자’라고 해서 만든 간자체가 오히려 국민들을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신장의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장의 역사를 공부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리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0) 2024.01.31
[책] 빈곤 과정  (2) 2024.01.31
[책]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0) 2024.01.17
[책]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1) 2024.01.15
[책]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