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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학술용어와 근대어의 탄생

category 일상다반사/책 이야기 2023. 8. 21. 11:35
 
학술의 분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기거나 사라지면서 변화해왔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러한 분류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즉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당연한 것으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당연한 것‘이 있으면 ‘왜 그렇게되었는가‘라는 내력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내력을 알지 못하면 그 필연성도 잃게 됩니다. - P21
 
오늘날 대학은 취업문을 위한 길로 전락해버린지 오래다. 학과는 문과와 이과로 분리되어 있어 서로 간 교류가 자유롭지 않다. 학생은 전공에 따른 전문화된 공부만 한다. 교양 수업이 있기는 하지만 학점을 따기 위해서 선택해서 듣는 그런 가벼운 수업인 경우가 많다.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고질적인 대학의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걸까. 더 배우기 위한 학생을 받는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대학이 취업문이 되어서는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전공만 배운다면 잘하면 취업은 하겠지만 향후 자신이 더 배우고 싶다고 해도 다시 배워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일본이 서양 문화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한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학술 영역과 학술을 위한 말도 이입∙번역되었습니다. 대학의 학부 학과와 그 분류 등의 기초가 모색되고 정착된 때도 이 시기입니다(P457). 다른 언어와 모어를 대응시키는 사전이 주변에 없다면, 다른 말로 쓰인 책을 앞에 놓고서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메이지 시대에 걸쳐 서양 문화와 조우하여 이를 소화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그런 도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학술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니시 아마네는 서양 학술을 문자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존의 한문 고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그러나 그에만 머무르지 않는 지식과 발상에 대해 새로운 일본어를 창조하고, 때로는 이를 다듬고 수정하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말의 기초를 구축했습니다. ⌜백학연환⌟의, 특히 ⌜총론⌟은 그러한 행위의 정수가 담긴 매우 드문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458).
 
 

 

일본 근대 시기 빼놓을 수 없는 학자 하면 후쿠자와 유키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서양사정⌟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과 유럽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수집한 자료들을 가져와 직접 번역하여 책을 펴냈다. 'right'의 번역어를 '통어'로 정하는 등 당시 일본인들에게 생소했던 서양 문명의 이론과 실제에 대응하는 개념을 다양하게 소개했었다. 그를 비롯하여 다양한 일본 근대 학자들이 서양 문명을 배우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재배치하여 자국민들에게 내놓았다. 
 
⌜백학연환⌟이라는 문서는 메이지 3년경에 쓰였습니다. 서기로 말하자면 1870~1871년경,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전입니다. 니시 아마네는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약한 인물입니다. 에도 막부와 메이지 신정부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기존의 일본의 지를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당시에는 아직 아무도 당연한 것으로 알지 못했던 서양의 지를 이해하고 흡수하여 번역, 강연, 저술을 통해 공공에 알리는 활동을 계속했습니다(P18). 원래 ⌜백학연환⌟은 니시 아마네가 사숙에서 했던 강의를 기록한 글인데, 강의를 들었던 나가미가 필기한 것입니다. 왜 150년도 더 된 강의록을 굳이 지금 읽으려고 할까요? '학술' 때문입니다. 학술의 전체상을 어떻게 파악할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는 큰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P20). ⌜백학연환⌟은 니시 아마네 전집 제4권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도서관 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덧붙이자면 제4권은 중고책도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석 없이 술술 읽을 수는 없는 책입니다. 가능하다면 이 글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하면서 오늘날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P462).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학술 관련 용어 번역은 대부분 근대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니시 아마네는 당시 그런 학술 용어의 번역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늘 사전을 사용한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순우리말은 번역어보다 오히려 덜 사용하고 어색한 단어가 아닐까. 이름에는 예쁘라고 순우리말을 사용할 뿐 대부분은 번역어인데 그 기원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Politics 가 왜 '정치'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을까.
니시 아마네는 ⌜백학연환⌟이라는 문서에서 학술의 전체상을 파악하며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백학연환은 총론과 본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론에는 학문의 경계, 학술, 학술의 방략, 신치지학, 진리의 총 6항목으로 본문에 들어가기 전 개요를 담고 있다. 본편 제1편은 보통학을, 제2편은 개별학, 즉 심리, 물리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앞 표지에 보이는 학술 영어 단어 중 특히 Science, Theory, System, 영어와 한문,번역어를 비교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릴 법하다. '왜 서로 안 맞는 것 같지?'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Science는 과학이고 Theory는 이론이고 System은 체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설명을 해보면 System은 우리가 생각하는 체계가 맞다. 단지 규모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크기의 규모가 아니고 짜임새나 구조, 기획이나 구상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체계가 맞는 것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아래 단어들을 비롯한 학문 체계와 방법론에 관련된 용어의 기원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Practice 實際 실제
Science 學 학
Arts 術 술
Theory 觀察 관찰
System 規模 규모
Induction 歸納法 귀납법
Liberal Art 藝術 예술
Literature 文學 문학
Deduction 演繹法 연역법
Mechanical Art 技術 기술
 
 

 

근대에 학문 분류가 세워지기 이전까지는 전공을 배우기 전 기초 학문인 Liberal Arts라는 교육 과정이 있었다. 모티머 애들러는 '평생공부 가이드'라는 책에서 나는 인간 학식의 분야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기예'를 주로 앎의 한 종류, 즉 생산 기술이나 실행 기술('그것'과 '무엇'과 '이유'의 앎과 구별되는 '어떻게'의 앎)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것을 독자들에게 요청한다. 나는 기예를 예술적 기예와 유용한 기예로 나누었다. 예술적 기예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작품을 창작하는 데 쓰이고, 유용한 기예는 기술자와 수공업자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바지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유용한 기예의 영역에서 우리는 두 부류를 살펴봐야 한다. 한 부류는 예로부터 자유기예라 불렀다. 이 기예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쓰고 읽고, 말하고 듣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기예)을 말한다. 요컨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고 형식의 기술을 뜻한다(P178, P179).라고 했다. 여기서의 자유기예가 Liberal Arts이다. 이 책에서는 예술로 표현했다. '평생공부 가이드'는 교양인이라면 갖춰야할 평생학습 지도를 그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아주 유용한 책이다.
 
현재 Encyclopedia(엔사이클로피디아)라고 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백과사전‘이나 ‘백과전서‘라고 번역됩니다. 오늘날의 용법으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 번역어 그대로 중세나 고대에 대입하면 문제가생깁니다. ‘백과사전‘이라는 의미는 좀 더 현대에 가까운 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루는 EyKUKAIOS TALSEL의 EyKUKANOG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둥근 고리를 이룬다‘라기보다 ‘보통‘ ‘일상의‘라는 의미였다고 지적합니다. 즉, Evkukios Talla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의미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반교양‘이랄까요. 이것이 로마 교육에 편입되고 중세를 거쳐 ‘자유학예 (artes liberales)‘라고 불립니다. 영어에서 말하는 Liberal arts 입니다. 자유학예란 의학, 법학, 신학 등 한층 고도의 학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를 쌓는 공부였습니다. - P59
 
학술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는 시대와 문화의 세계관, 학술관이 반영됩니다. 자유학예에는 대략 절반 가량이 말을 배우고, 말을 더 잘 사용하기 위한 학술에 할당되어 있으므로 그 비중이 크다는 사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의미하는Eykuk入Los maidela의 이념이 ‘자유학예‘에 계승되고, 이윽고 오늘날 대학의 ‘일반교양‘에까지 이어집니다. - P60
 
 

 

저자는 니시 아마네가 가져온 원문의 출처를 위해 웹에서의 검색 방법 등 추적을 장시간 하는데 그 부분은 따라가기가 좀 버거웠다. 그러니까 이 출처가 어느 논문 또는 사전, 사전이면 몇 년도 버전인지까지 추적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구글 검색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꽤나 지난한 과정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때 이런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다면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과연 대부분의 독자가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논문을 쓴다던지 어떤 특정 이유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에서 대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학술'에 대한 개념이다. 학과 술은 이렇게 엄밀히 구별되는 개념이라 설명하고 있다.
 
학學자의 성질은 원래 동사動詞다. 도를 배운다, 혹은 글(文)을 배운다 등 모두 동사의 문자로서 명사로서 쓰이는 일은 적다. 실명사實名詞에는 많은 경우 도道 자를 쓴다. 중국(漢) 태고에는 도예라는 두 문자로 나타냈으며, 나중에 이르러 도를 행한다는 행자에서 생겨난 술자를 사용했다. 학과 도란 같은 종류로서 종래 일본에서는 와카和의 학이라고 하지 않고 ‘와카의 도라든가 ‘글짓기(學)"의 도‘라고 해왔다.
(백학연환] 문단 3 문장 1~5) - P98
 
‘학‘과 ‘술‘을 구별하기 위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여기에 한사람의 병자가 있다. 전쟁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고로 의사(醫者)를 불러 치료(療治)를 하는데, 의사가 인체人體의 근육과 뼈, 피부와 살, 오장육부의 구조를 아는 것이 학이요, 총에 맞은 다리를 치료할 때는 이렇게 근육과 뼈의 구조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총탄(丸)을 어떻게 빼낼까를 궁리하여 치료를 하는데, 이것이 곧 ‘술‘이다.(『백학연환」‘을본‘에서) - P160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철학이라는 단어가 본래는 '희철학'이었다는 사실이다. '희'라는 동사가 빠진 것은 역시 행위가 빠진 것이므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희철학'은 주렴계의 '사희현'에서 온 개념이다. '중국철학사 하' 책에서는 '사희현'이라는 명확한 개념은 나와 있지 않은 것 같고 '명철'에 대한 개념이 들어가 있다. 마음이 밝으면 통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의 경지는 배워서 도달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
"요체(핵심적 방법)가 있습니까?"
"하나가 요체이다. 하나란 무욕이다. 사욕이 없으면 고요히 비어 행동이 직각적이다. 고요히 허심하면 밝아지고 밝으면 (사리에) 통철한다. 행동이 직각적이면 공명정대하고 공명정대하면 널리 미친다. 밝고 통철하고 공명정대하고 널리 미치면 아마 성인에 가깝다."
 
니시 아마네가 Philosophy에 대한 '철학'이라는 번역어를 만들 때 참조한 말이 바로 주렴계의 통서에 나오는 '사희현士希賢', 즉 '선비는 현명함을 사랑하고 희구한다'입니다. 여기에서 '현철함을 사랑하고 희구한다', 즉 '희철학希哲學'이라고 번역했고 이윽고 맨앞의 '희'가 떨어져나가고 '철학'이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의미를 보존한다는 점에서 '희'라는 동사적인 말이 떨어진 것은 생각할수록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희'는 원어 philo 즉 '사랑한다' '좋아한다'라는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철학'만으로는 단순히 Sophia, '지知'의 학문이라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는 지를 희구하여 그러한 지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동사가 빠진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 P278~279
 
 
이 책의 장점은 사례가 많다는 사실이다. 원문인 고대 그리스어를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어로 번역한 사전의 내용, 그리고 관련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인용 뿐 아니라 동양 철학자들의 이론까지 소개하고 있어 비교 확인하며 볼 수 있다.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점이 하나 더 있다면 학문을 배우는 데 있어서 교훈적이거나 실용적인 지침이 많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일 수 있는데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어떤 것이든 당연시하지 말고 내력과 상황을 확인하는 것, 이 경계선이 유효한가 묻는 것이 유용했다.
 
번역어를 읽을 때 ‘내가 만약 이 말을 번역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언어 사용 훈련이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사전을 펼치면 encyclopedia 항목에는 ‘백과사전‘이라든가 ‘전문사전‘이라는 번역어가 나옵니다. 그러나 누군가 애써서 만들어 놓은 번역어를 그저 빌려 쓰지만 말고, 내 지식의 범위 내에서 이를 번역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 P48
 
여기서 니시 아마네와 동시대 사람이기도 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이 대학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은 지식의 체계화다. 즉, 각각 독립된 부분적인 지식 간의 관계와 이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때까지 다양한 곳에서 얻은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적인 견해를 연결하여 이른바 지식의 모든 영역의 지도를 만든다. (J. S. 밀, 『대학 교육에 대하여 Inaugural address delivered to the University of St.Andrews, Feb. 1st 1867』, 다케우치 잇세이竹內 옮김, 이와나미문고, 2011,p.15/원서 p.8) - P79
 
이미 그어져 있는 경계선을 당연시하지 말고 그렇게 된 내력과 현 상황을 확인할 것. 나아가 그러한 경계선이 타당한가를 검토해볼것. 필요하다면 다시 선을 그을 것. 지금 「백학연환」을 다시 읽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수많은 학문을 보면서 학역간의 차이,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 P90
 
사람은 툭하면 좋은(좋다고 간주되는) 것만을 알고 싶어하며 나쁜(나쁘다고 간주되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만을 알고자 하는 태도는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나쁜 것'과의 대비를 통해서만 비로소 한층 더 '좋은 것'을 판별할 수 있으며, 거꾸로 참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로 '합리적'인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 - P188
 
무언가에 대해 내 생각으로 그것이 선인가 아닌가라고 판단하는 것은 반드시 타당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내가 감각으로 느끼는 것, 경험하는 것에 기초한 지가 있을 것입니다. 니시 아마네가 생각하는 '실재적인 앎'은 실제 경험, 경험과 실중에 기초한 앎이었습니다. - P307
 
'진리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한문에서 예를 가져온다'라는 식으로 문제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때 기억 속에서 '아, 맹자의 그 대목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연상 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임하고 있는 문제와 어울리는 한문을 떠올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 글이 기억에 새겨져 있을 만큼 거듭 읽었고, 자유자재로 떠올려서 언제나 쓸 수 있을 만큼 숙지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에도 시대의 교육 방법을 조사해보면 그렇게 해서 한문을 익히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 P332~333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포기하자는 사고방식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좀 더 정확히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일 것입니다. - P353
 
학문에서 과거의 시행착오를 안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반대편에는 최신 지식만 알아도 충분하고, 잘못임이 판명된 과거의 지식은 의미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산수나 수학이 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학 수업에서 수학의 역사를 가르치는 경우는 드뭅니다. 과연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을 발견했을까, 왜 확률과 미적분이라는 발상이 생겨났을까,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우리가 아는 수학의 모습이 생겨났을까, 그리고 어째서 mathematics가 '수학'으로 번역되었을까(mathematics에는 '수'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데도), '기하'는 어떤 의미인가 등의 역사적 경위는 수학에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수학의 정리나 공식만 외우고 이를 구사한 계산과 증명을 하는 것이 수학 과목에서 받는 인상 같습니다. 즉, 여기에는 '왜 이런 것들을 생각했는가?'라는, 학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한 동기나 질문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질문과 동기를 결여한 채로, 성과만을 알고 활용하려는 일종의 공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수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지 의문입니다. - P380
 
백학을 조망하겠다는 시도는 장기나 체스에서 상대방의 수나 말이 놓인 판을 보는 것,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와의 관계 속에서 살피고자 하는 데 해당합니다. 어떤 학술의 위치나 가치를 알려면 학술 전체의 모습, 다른 학술들과의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 외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P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