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치 문서와 해방정국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시민의 한국사
오랑캐의 역사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시리즈 1, 7, 8권
이토록 평범한 미래
코펜하겐 삼부작
올해 내가 뽑은 책들은 대부분이 역사 분야의 책이고 문학은 단 2권이다.
하지만 그동안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방 후부터 한국 전쟁 이전까지 한국과 관련된 역사 책들을 계속 읽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의 역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하며 늘 관심을 갖게 된다. 원래는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더 많았으나 이제는 이 시기 책에 더 흥미를 갖게 되는데 뒤이은 역사가 탈식민과 이념 전쟁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치 문서와 해방정국>는 또 하나의 해방 후 정국의 키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버치 중위는 미군정기 하지 사령관에 의해 발탁되어 조선에 들어와 좌우합작위원회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그가 작성한 자료들과 시간 순으로 배치된 기록, 인물에 대한 평가들이 담겨 있다.
강용흘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확이 있었고(그도 미군정청에서 일했다) 1946년 쌀 추수 파동에 대한 실감나는 기록, 여운형과 김규식에 대한 평가 등이 흥미로웠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11월에 읽었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7권이었던 <남양과 식민주의>와 궤를 같이 할 것 같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양반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전시 상황에 일본군이 되어 연합군 포로 감시를 위해 남방을 향한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손자였던 작가가 조부의 행적을 영웅시하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전범이 받았던 피해, 고통의 측면에 주목했었던 것 같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제대로 된 소감을 정리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 책이었다.(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민족주의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없고 앞 세대의 희생자의 경험과 기억은 세습될 때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다. 작가의 모든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으나 지나친 민족주의 신봉과 숭배 의식은 곱씹어볼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남양과 식민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의 전시의 장이 된 남쪽 태평양의 섬들과 도서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일제가 펼친 남진 정책과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일제가 남진 정책을 생각보다 일찍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과 내외부의 상황의 추이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확인해볼 수 있다.
통사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데 읽을 시점이 됐을 무렵 마침 <시민의 한국사>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지배층의 관점이 아닌 '아래의 힘'에 주목하여 쓴 역사다. 미국에도 민중사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늦었지만 이런 통사가 나와주어 참 반갑고 감사하다. 지배층의 학정을 엎고 들고 일어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은 한반도의 역사는 어쩌면 민중이 이끌고 간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지 모르겠다.
1, 2권으로 나누어 1권은 전근대편으로 조선 후기 개항 이전까지의 시기를 담고 있고 2권은 근현대편으로 최근 정권까지 범위를 다루었다.
통사의 특성 답게 정치사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파트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그동안 통사를 읽을 때 정치와 경제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 책의 경제 파트는 핵심을 쉽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정치,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시리즈의 꽃은 역시 2권이다. 보수/수구 정권의 눈치에 은폐되거나 축소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시리즈는 하반기 읽기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까지의 세계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또 한 시리즈의 책이라고 생각한다(600년 이전의 역사도 출간되었으면!).
특히 1750년 이후의 세계사를 지역사를 모으고 단순하게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별로 특징을 뽑아내어 잘 정리했다고 느껴진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엿보였고 가려져 있던 인종 차별, 노예, 여성, 이주민들의 역사를 다양한 사례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상반기에 읽었던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을 읽으면서 미리 예열을 했는지 이 시리즈를 읽을 때 버겁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부족한 역사 공부의 시기와 장소가 무엇인지 체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오랑캐의 역사>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해왔던 책 읽기가 헛된 것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 만주족의 역사, 타이완사, 중국의 철학, 일본의 근세 이후의 역사, 합스부르크 제국사, 오스만 제국 등 중동의 역사를 읽었던 것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결코 이것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다 연결되어 있음을, 역사는 통합되는 것임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책들을 과거에 읽지 않았다면 <오랑캐의 역사>를 소화하기 어려웠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작가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을 때만 해도 좀 어렵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번에 읽게 되었을 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내부의 역사를 외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진행되어온 결과물과 최근 역사계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내놓은 결과물들을 결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노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었고 그만큼 확장된 시야를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동남아시아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느꼈는데 앞으로 보충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가 앞으로도 좋은 책을 부디 꾸준히 내주면 좋겠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총 8권으로 학술연구서로 대중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모든 시리즈의 책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앞서 7권은 이야기했고 1권과 8권을 더 꼽아보았다.(두 권은 저자가 같고 이야기도 이어진다)
일본 역사는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사'라는 개념이 없었고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근대 시기 나카 미치요의 주장으로 '동양사', '일본사', '서양사'로 구분되는 계기가 된다.(이 때 조선사는 '일본사'에 포함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본 근대론의 시작은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수록'이란 책을 남겼고 자신의 생각을 전파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침략주의를 후대에 전파하였다.
자유민권주의자였다가 황국주의자로 변신한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평전을 쓰고 황실 중심주의 전통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출간한 책으로 일본학을 제창했다. 일본학은 일본 국민이 알아야 할 일본에 관한 일체의 학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대립하는 모든 관계에 입장은 이로써 비일본, 반일본적인 것으로 모는 주장이다.
1권에서 메이지 시기의 일본 근대에 주목했다면 8권은 쇼와 시기의 일본에 중심을 두었다. 동방문화학원과 도쿄대학, 교토대학 내 설립된 연구소에서 연구한 동방학이 일제의 식민주의에 어떻게 뒷받침된 이론들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국도 근대 시기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본 지식계에서도 자국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 뿐 아니라 우리도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예 거부하거나 그대로 믿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비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균형 맞추기로 문학 책을 읽었다.
문학이 내게 어려운 이유는 물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눈에 그릴 수 있어야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모호하고 추상적인 묘사들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전히 문학이 어려우나 그래도 그 중 얻은 수확이 있어 기쁘다.
올해 국내 소설 중 단연코 TOP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 제목부터 내용까지 어디 하나 빈 구석이 없는 책이었다.
3년 간의 코로나를 겪고 나이가 들어가기도 하면서 '평범한 미래'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현재, 그리고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앞의 미래를 열심히 살아나가며 별 탈 없는 매일을 우리는 꿈꾸고 소망하게 되는 것 같다.
8편의 단편 소설 어느 편을 펼쳐도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설의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며 추억에 젖기도 할 것이다.
회의주의자인 내가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정말 마법 같은 책이다.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내밀한 기록을 만날 수 있는 <코펜하겐 삼부작>.
과연 내가 해외 문학 작품을 읽으며 좋다고 느낄 때가 올까 생각했는데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 반영되었으니 에세이라고 해야 맞겠지.
토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자주 맞닥뜨렸던 공포와 불안, 좌절의 기억이 떠올라 어떨 때는 괴롭기도 했다.
불안한 청춘, 어딘가에도 기댈 수 없는 바람처럼 떠도는 유령 같은 자아가 그려졌다. 나도 그랬고 그도 그랬다.
그의 삶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의 글은 그만큼 나를 흔들어놓았던 것 같다.
작년 연말 올해 읽기로 했던 책들을 보니 거의 다 clear한 것 같다(역시 계획은 중요!).
어쨌든 한 해동안 꾸준히 책을 읽고 정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동안은 책을 읽기는 했어도 제대로 정리한 책이 많지 않아 대부분 뇌에서 휘발되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역사에 관련된 책은 1년에 단 몇 권이라도 이전부터 읽어왔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책 선정에 고심하는 편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역사/문화 분야인데 눈여겨보는 출판사에서 신간이 출간되었을 때 받는 알림 중 괜찮은 책을 고르거나 집에 묵혀둔 책 중 '이제 더는 미루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책들 중에서 선정하는 편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비슷하게 갈 것 같지만 그동안 집에 쌓인 책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후자에 좀 더 치중하자고 다짐한다.
테마는 중국사와 동남아시아사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읽어둔 게 너무 없어서 한계를 느꼈기에 이쪽 읽기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일상다반사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 학술용어와 근대어의 탄생 (0) | 2023.08.21 |
---|---|
[책] 좌파의 길 (0) | 2023.03.13 |
생각대로 살지 않으려면 (2) | 2022.08.23 |
읽고 있는 책. 읽고 싶은 책들(2022년 7월 2주) (0) | 2022.07.08 |
서양사정 - 초편 읽기 (0) | 202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