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은 글쓰기를 위한 방법론으로 융합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융합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융합은 더하기도 아니고 하나로 합치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의 반대말도 아니다. 이는 crossing, 경계넘기다. 그녀는 횡단의 정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융합은 객관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사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을 '트랜스버설(trans/versal)'이라고 하며, 횡단(橫斷)으로 번역한다. 단어 그대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가로지름(crossing)은 수직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고 재생산하고 다른 의미의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다. - P21
서문과 1장을 읽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글쓰기는 어떤 사고방식 때문에 가능했는가." -P10
해당 질문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내가 하는 공부를 정리하고 나누는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었다.
처음 내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았다. 일제 시기,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맞닥뜨렸다. 처음에는 분노였고, 그 다음에는 좌절과 혼란이 찾아왔다. 이후에는 비판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했던 공부는 점점 더 확장 중이다. 다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할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내게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면 '고전'과 만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우선 현재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내게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면 다음에는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 - P53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에 따라 그 사회의 운명이 달라진다. - P16
나는 누군가 도태되고 소외되어 설움받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더 나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생각이다.
'생각의 자유'는 희망, 욕망, 망상 같은 비현실을 연속으로 쌓아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는 일이다. 요즘 세상에는 '소름끼치는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 온라인이 있다. - P29
생각의 자유는 권리가 아니다.(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약자의 자유일 때만 성립하며, 혐오는 사상이 아니다.) - P30
생각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와는 다르다는 것. 본인이 하는 생각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발상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며 위험하다.
백인 남성은 자신이 새, 조물주, 신의 대리자라고 착각하고 비서구의 식민지 남성 지식인은 조감하지 못해 안달이다. 인간은 새가 아니다. 드론으로 건물은 볼 수 있겠지만 인간과 사회 현상은 볼 수 없다. 드론으로 건물을 관찰하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건물의 모습은 각기 다르며, 볼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 P57
내가 보는 인식은 결코 전체일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인식은 부분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작년 11월 정도부터 종이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개의 신문을 구독한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시간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아 한 개의 신문을 구독중이다. 덕분에 아침 시간을 조금 더 앞당기고 훓어읽기를 한다. 다른 면은 몰라도 사설 면과 국제 면은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사설 면은 다양한 필진들의 글을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국제 면은 기사가 항상 적어서 아쉽지만 덕분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매주 시사인을 읽는 것도 있다. 얘도 주간지지만 종이로 받고 있으니까 포함시킨다면 주간지로는 1개, 일간지로는 1개를 읽는 셈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온라인에 올라온 자극적인 이슈 등으로 선택되어진 뉴스를 보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쓰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라는 말에 위안이 되었다. 나는 늘 내 글이 못나 보이고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쓸 글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시간에 쓰는 데 집중하면 될 것을 애써 핑계나 구실을 찾는다. 생각해보니 쓰면서 읽은 것이 정리되고 생각이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가 잘 되지 않을때, 말문이 막힐 때,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곤란은 '작가'의 일상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나의 경우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쓰는 것이 관건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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