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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토지 17

category 리뷰/책 2023. 6. 13. 11:38
토지 17권은 1941년 무렵 즈음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1880년 후반부터 시작했던 시기가 어느덧 40 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조선이 식민지가 된 지도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1941년 무렵은 일본은 장개석의 원조 루트를 방해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중이었고 오랜 전쟁으로 전쟁 물자도 고갈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단계에 와 있었기에 미국이 참전하느냐 마느냐 사람들은 기대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40년 안에 큰 전쟁이 두 차례가 벌어지고 국가 간 전쟁은 부지기수인 상태였다. 전쟁에 끝이란 있는 것인지 공포를 넘어선 권태가 몰려오던 시기가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조선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국내에는 창씨 제도가 시행되었고 주요 신문이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폐간되었으며 반전운동단체라는 빌미를 구실로 기독교도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이어졌다. 국민총력연맹(國民總力聯盟)이 만들어지면서 농촌은 군량이 끊임없이 반출되었고 도시의 노동자들은 군수품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 무엇보다 사상범 보호관찰령의 강화로 조금이라도 건수를 잡으면 잡아가는 현실이 되어 버린다.
 
"파괴란 새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휴머니즘을 결여한 새 질서란 허구이며 허구에서 시작되는 파괴란, 남 뿐만 아니라 자신도 무너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지. (...) "
평소 환국이답지 않게 그의 어투는 매우 신랄했다.
"나는 그 의견에 반대다. 민족성에다가 못 박는 것은 반대다.
체제에 따라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보편성 아닌가."
"민족성에 못을 박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말한거야. 인간의 보편성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일본의 역사는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변해왔다. 그렇게 본다. 나는 민족성에 근거를 두고 말한 것은 아니다. 길들여진 상태를 말했을 뿐, 그러니까 그들 스스로도 피해자인 셈이지."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해서는 안 될 것이 변했다. 그게 뭔데?"
"우라시마 타로의 다마테바코처럼 속이 텅텅 비어 있는 신도(神道), 혹은 신국사상과 현신이라 부제가 붙은 만세일계世一系)는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고 변해서는 안 되는 진리와 진실, 또는 사실은 그들 형편 따라 변화무상이지. 결국 그것들은 일맥(一脈)으로써 변하건 변치 않는 것이건 허구다 그 얘기야." - P22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파괴가 필요하지만 거기에 휴머니즘(인간애)이 없다면 자신과 타인을 모두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질서가 보편성을 띤 가치인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자국만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아니면 내가 세계의 주인이 되겠다는 자부심이라면? 이를 위해 타인을 짓밟고 전진하는 행위는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17권에서 세 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다.
 
송관수가 죽고 길상은 모임을 해체하기로 결심한다. 길상은 독립 자금 강탈 사건을 기획했으나 이는 명백히 실패했다(이 때문에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니). 확보한 자금은 국외로 나가기는 했으나 비중 있게 쓰이지도 못했다. 평사리에 우가(家)가 미꾸라지처럼 활개를 치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다가(자식 하나는 군대에 나가고, 다른 하나는 면서기에 진출. 그러니 안하무인이지!) 최참판 가(家)도 무한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수감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며 무의미한 침체 상태에서 조직의 멍에를 벗겨주는 편이 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체념하고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하는 자조감이었달까.
길상은 최참판 가(家)의 일원이 되면서 어쩌면 스스로의 입지를 넓힐 수 없는 처지임을 한탄하기도 했을 것 같다.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서희, 환국이, 윤국이 등이 위험해지니까.
 
홍이의 아내 보현이는 아파서 국내에 들어갔다가 금을 구입해 들어온다. 그런데 이 사건이 경찰에 발각되어 홍이 내외는 곤욕을 치른다. 홍이는 처가와 썩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 산소를 보러 오거나 할 때 아니면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이 때문에 국내에 압송되고 처가집과 직면해야 했다(아마도 불편했겠지).
홍이는 40이 다 된 나이이지만 공적인 외부 활동(독립 운동) 이외에는 대처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현이와 아이들에게도 밖에서 보면 잘하는 남편이자 아빠이지만 서로 간에 끈끈한 정은 없다. 아내는 장이와의 일 이후에 늘 전전긍긍해했는데 홍이가 좀 더 세심하게 대처했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 것 같다. 딸인 상희와의 대화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상희가 아는 언니가 간호부가 되겠다고 하는데 나도 하고 싶다고 말하니 발끈한다. 왜 발끈하는지 설명이라도 하던가. 차라리 김두수가 여자들을 팔아 넘기는 일을 한다고 말하는 누나의 직설적인 말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물론 상희는 당황하지만). 감정이 앞서서 욱하다가 (누적되어)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되니까.
 
인실과 오가타가 드디어 만난다. 지난 번에 하얼빈에서 인실이 탄 마차를 발견하고 오가타가 얼마나 미친 듯 쫓아갔던가. 결국 잡지 못했지만 인실은 그가 자신을 보았음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만남에서 오가타는 인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다는 것과 조찬하가 아이를 길러왔음을 알게 되곤 혼란스러워한다. 오가타는 세월이 흘렀지만 예전과 별반 다름이 없다.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고 나쁘게 하면 현실감이 부족한? 인실은 진실을 말하고 오가타에 대한 애정의 말을 던진다. 오가타는 분노의 말을 토로하고 헤어지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인실은 오가타를 잊지 못했구나... 해방이 되어 둘은 해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국적이라는 장벽은 너무나 크다. 조선이 해방한다면 일본은 패망이니까 말이다.
 
"일본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는 오가타상이나 망하기를 고대하는 조선인, 따지고 보면 같은 차원이오. 일본을 비판하고 압박 민족에 깊이 동정하는 오가타상도 조국이 망하는 꼴은 못 본다, 그와 같이 어쩌다 친일파로 몰린 사람들 심중에 회한이 없겠소? 종속을 그 누가 원하겠소. 민족에 대한 존엄은 변할 수 없는 보편적 윤리 아니오? 게다가 그것은 짙은 감정이니까."
"우문이었소."
"악질 친일분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자는 제 나라가 융성하면 애국자가 되고 충성을 하고, 항상 강자 지향의 노예들이지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같은 노예근성, 나같이우유부단의 방관자는 있게 마련, 사실은 조선인들의 경우 그대부분이 친일하게 하는 잔혹성 밑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친일하는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실상 아닐까?"
"우리는 평행선, 적입니까? 영원히."
"그렇지는 않지. 그 해답은 당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내가요?"
"세계가 하나 될 때, 그게 당신의 주의였고 이상 아니었소? 그리고 또 이웃으로서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때 적이 될 이유가 없지 않아요? 당신의 반전 사상은 그거 아니었소?"
"그건 그래요."
"하면은 우리가 어찌 적이겠소. 친구지." - P198
 
오가타와 조찬하가 적이 아니고 친구라고 말하는데 나는 희망을 찾고 싶으면서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인실과 오가타도 마찬가지의 복잡한 감정을 느꼈듯이 말이다.
 
마지막 5부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등장 인물들은 과거를 자주 회상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일명 "옛날이 좋았대이." 다.
내가 생각에 조선이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조선인은 식민지민이 되었기에 위치성에서 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식민지 정책의 변화, 외부 상황에 따라(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그 비애가 더 커졌을 뿐이다.
물론 조선이 식민지가 되어서 이득을 본 많은 이들은 상실이 아니라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 속에는 일말의 비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난 권에서 송관수가 호열자로 타국에서 쓸쓸하게 죽고 이번 권에서는 봉기 노인이 죽는다. 같은 사망이라도 반응은 달랐다. 한 사람은 타국에서 쓸쓸히, 다른 한 사람은 고향에서. 한 사람은 호열자로, 다른 한 사람은 자연사로. 한 사람은 동학, 형평사를 비롯 독립 운동에 노력했던 인물,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이 땅에서 먹고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만큼 둘을 놓고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송관수는 너무 이르게 갔음을 한탄하고 봉기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는 식이다(물론 그만큼 오래 살기도 했다). 송관수는 출신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펼친 행동들은 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기에 존경을 받았다. 반면 봉기 노인은 주변 사람들을 시기하고 괴롭힌 적이 많았으므로 호평을 받지 못한다.
두 사람의 살아온 궤적을 보면서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 주어진 조건과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당시 상황에서 반기를 든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일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송관수의 죽음은 안타까웠으나 그의 삶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내 강산을 범하지 않았던들. 처음에는 의병이었고 형평사운동에서 사회주의 문턱까지… 그리고 송관수는 만주벌에서 삶을 끝마감했고, 권속을 끌고 서희 일행을 따라갔던 용의 풍상, 항일의 기운이 팽배해 있던 간도 땅에서 홍이는 감수성이 가장 첨예했던 소년시절을 보냈다. 한복은 아비와 그리고 애국 지사를 악마같이 엮어간 형 거복의 죄업을 보속하기 위하여 만난을 무릅쓰고, 형의 지위까지 암암리에 이용하면서 조선과 만주를 오가며 전령 노릇을 하고 자금을 운반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인도하기도 했다.제국주의 일본의 동물적 탐욕은 그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들의 운명을 바꾸어왔는가. 두메 산골, 골짝골짝마다 핏줄같이 시내 흐르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민이 되어 떠도는 이 그 얼마인가. 만주로 가고 중국으로 가고 연해주로 가고 하와이 일본으로, 피 값도 안 되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건만 도시에는 여전히 거지들이 떼지어 다니고 지게 하나에 목숨을 건 사대육부 멀쩡한 사내들이 정거장마다 부둣가마다 허기진 눈빛으로 짐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 바로 이들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방 안에 앉은 사내들 부모들이었다.정면돌파를 했든 측면지원을 했든지 간에 그들의 유대는 동지로서 깊고 강한 것이었다. 그들의 열정은 투명하고 깨끗했다. -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