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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버드 중국사 남북조

category 리뷰/책 2023. 6. 7. 14:28
며칠 전 중국의 이 시기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안되고 어째 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약 4~5세기 동안 너무나 많은 왕조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삼국지를 읽으며 ';왜 이리 복잡해!' 했는데 '이건 약과였구나' 싶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과연 이 때의 역사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슬며시 일었다.
 
후한 말 중국은 혼란기에 접어든다. 황건적의 반란을 시작으로 위, 촉, 오 삼국이 분열했다가 서진으로 통합되었으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은 오호십육국 시기가 (북위가 북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1세기 가까이 이어진다. 남쪽은 두 세기 동안 유송, 제, 양, 진의 남조가 이어졌다.
 
하버드 중국사 2권은 흔히 우리가 '위진남북조'라고 부르는 시기를 '남북조'로 통칭한다. 중국인 역사학자들은 왕조별로 시대를 구분하는 전통에 따라 이 시대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라고 부르는 반면 서구 학자들은 ‘분열의 시대(the Age of Disunion)‘ 혹은 ‘초기 중세(the Early Medieval period)‘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분열의 시대'는 어디 갖다 써도 분열의 시기에 통칭하는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위진남북조'라고 하기에는 중국이 어느 한 왕조로 통일되었다는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라 불편하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 정치세계가 황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양자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양분되어 있었음을 반영하여 '남북조'라고 통칭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북조'라고만 하기에도 충분한 설명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전한대에는 황하 상류 황토 고원과 황하 하류 범람원 사이의 지리적 구분이 아주 중요하였다. 한대 역사 전체가 이 두 지역 사이 균형의 변화라는 시각에서 서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자발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점차 많은 중국인이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이에 따라 황하 유역 내 구분보다 다른 구분, 즉 황하 유역과 양자강 유역 사이의 구분이 중요해졌다. - P29
이전까지만 해도 양자강 이남 지역은 중국에서 주변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민족의 침략과 잦은 홍수로 후한 시대를 시작으로 4세기 초까지 북중국에 있던 많은 인구가 남방으로 이주한다. 이들(한족)은 강남 지방을 농업에 적합한 자연 환경으로 만들고 토착민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 나거나 한족에 흡수되었다.
 
한반도의 역사에도 시기 별로 지배층의 명칭이 다른데 중국의 이 시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귀족의 시대'라는 명칭으로 정리되는데 저자는 '귀족'을 쓰지 않고 '유력 가문'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 특이하다. 내 생각에 너무 일반적인 용어를 쓴 것 같기는 하지만(유력 가문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단어인 것 같아서) 일부 가문의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쓴 듯하다.
귀족의 시대라는 표현이 전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 동안 황제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덕분에 일부 가문이 조정과 지방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 중 어떤 가문도 몇 세대 이상 조정을 지배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 가문은 수세기 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였고 사회 지배층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가문이 중국에서의 높은 지위에 대한 개념을 바꾸었고, 그리하여 사회 지배층과 조정 간의 관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 P69
 
이 시기 유력 가문은 여러 문화 및 문학 활동을 추구(시 짓기, 서예, 글쓰기, 사상)하며 이전의 지배층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활동이 새로운 관료 선발 방법에 녹아들며 국가의 중앙 집단을 재구성했다. 또 가족 묘지를 만들고 한식(청명절)에 가계의 구성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으며 족보를 작성하면서 가문을 친족 집단으로 규정 짓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의식하는 친족 집단이 점차로 확대된 현상은 가훈과 족보라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구두로 남기거나 혹은 짧게 글로 적어 남긴 유훈은 이전 시기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고, 한대의 문헌 일부는 가계를 언급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면 자신의 가문을 차별화하며 가문의 번영에 요체가 되는 행동 방식을 명기하고 후손에게 주지시키는 장편의 글 중 현존하는 최초의 사례가 등장한다. - P342
 
한나라는 징병제를 폐지한 이후 비한족 기병과 죄수, 지원자로 군대를 꾸려 나갔다. 후한 말에는 소작인, 유목 군대, 투항한 반란 세력들로 군사를 충원했다. 이후에는 소작인과 비한족 기병으로 그 대상을 충당하였기 때문에 지주와 친족 집단의 군사 역량은 위축되었다(소작인들이 차출되니). 5세기 이후에는 군사력의 중심이 지배층 중심에서 다시 조정 기반으로 되면서 황제의 권력도 강화된다.
 
중국에 중앙아시아 및 인도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불교가 전래되었다(불교는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된다). 도교는 기존의 전통 신앙과 맞물리면서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터였다. 불교가 흥기하고 도교가 상호작용하면서 중국의 종교세계는 여러모로 변화하였다.
첫째로 한대인들의 모호한 사후 세계는 천국과 지옥의 각 층위가 겹겹이 쌓여 생생한 모습의 지리적 관념을 갖춘 사후세계로 대체되었다. 또한 아귀를 비롯해 새로운 귀신의 존재를 도입하면서 불교는 중국의 사후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불교는 영혼의 세계를 윤리적인 성격의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한대인들이 저승에서의 보상과 처벌을 믿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가장 보편적 원리는 올바르게 매장되면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도 이승의 지위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생전의 행위가 아니라 매장 의례가 사후 운명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와 그 이후 중국의 사후세계 관념을 지배하게 된 것은 생전의 행위에 따라 보다 좋거나 나쁜 존재로의 환생, 혹은 천당이나 지옥으로의 전생이 결정된다는 식의 단순화된 업의 교리였다. 세 번째 변화도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중국의 상장 의례와 망자를 구원하기 위한 명절에서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불교 의례는 조상을 지옥에서 구원하여 불교의 낙원인 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부처와 승려의 영적인 힘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 P412~413
 
위진남북조 시대의 글쓰기와 문학은 같은 시대의 중국 문화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자율적 영역의 개창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를 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장소가 생겨나고, 아울러 교단 종교, 도시 내 사원과 원림, 산지에 자리한 별장과 은자의 동굴 등이 등장한 것과 더불어 문인들은 고전, 철학, 역사가 제시하는 윤리적 틀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 보다 자율적인 미적 영역을 만들어내었다." 글쓰기와 문학적 관념의 이러한 새로운 영역은 ‘현학玄學’의 등장으로 지적인 토대를 얻게 되었다. - P427
 
하버드 중국사의 특징은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리, 제도, 가족(및 친족) 구조, 종교, 문화와 예술 등 주제 별로 사안을 다룬다. 시간 순의 역사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읽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이 책으로 이 시기를 특징 지은 후에 세부적인 흐름의 역사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이 시기 북방 유목민들이 중국에 세운 왕조는 이후 수, 당 시기에 많은 유산을 남긴다. 그리고 이 지역은 한반도의 고대 국가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고구려는 중국의 북방 지역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어서 더욱 그렇다. 중국의 북방이 분열되었던 이 시기는 그래서 고구려에게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4세기에 걸친 분열기를 지나 수가 589년에 중국을 재통일하고 뒤이어 당(618~906)이 들어서면서, 한의 멸망 이래 변모해왔던 중국 사회에 다시 단일한 황제 지배가 행해졌다. 한 제국의 계승 혹은 부활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 수당 왕조는 5~6세기에 북중국을 지배했던 이전의 ‘오랑캐‘ 왕조 북위, 북주, 북제에서 발전한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하였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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