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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category 리뷰/책 2023. 6. 7. 14:27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는 모든 사회는 과거에는 야만 상태였다"고 레이날은 주장하였다. 그러나 진화를 자명한 것으로 보는 주장이 문명 상태를 그대로 국가의 문명으로 마음대로 연결시켜 후자를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도착 지점으로 상정하는 학설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직도 원시인들을 야만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235
 
클라스트르의 대표작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읽었다. 이 책을 출간하고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하다니 작가의 이력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만일 불의의 사고가 없었다면 진행중인 '원시사회의 전쟁론'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비롯해서 더 많은 지적 결과물이 생산되었을텐데 말이다.
 
현실은 도대체 어떠한가? 자연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이는 우리 세계와, 우리 세계의 데카르트적인 어리석은 시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이 시도가 생태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이제 겨우 측정되기 시작하였다)가 아니라 주위의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술 전체를 놓고 볼 때 더 이상 원시 사회가 기술적으로 낙후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시 사회 역시 공업화된 기술 사회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자면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폭력을 제외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 공간에 형성된 사회는 전혀 없었다. - P237
 
몇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다. '발전 지향', '진화', '국가', '자연 지배', 서로 모두 연관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고 문명은 야만에 앞서야 하며 진화라는 논리에 의거해 판단하고 인종적으로 더 나은 것이 있다 착각해왔다. 그 정점에 결국 국가가 있다는 생각이다.
진화 주의는 과학적인가. 그렇다면 고대 사회가 진화적으로 뒤쳐져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가. 원시 사회는 국가가 없는 사회이고, 문자가 없으며, 역사가 없는 사회이고, 시장 경제가 없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를 결여된 사회로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원시 사회의 인간에게 있어서 생산 활동은 정확히 필요의 충족에 의해 측정되며 제한된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란 기본적으로 에너지의 필요이며, 생산은 소비된 에너지의 양을 원래 수준으로 채우는 것으로 한정된다. 다른 말로 하면ㅡ축제 때의 사회적 소비를 위한 재화의 생산에 있어서 -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의 양을 확립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연으로서의 생명이다. 즉 일단 에너지의 필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나면 원시 사회가 그 이상의 것을 생산하도록, 달리 말하면 어떤 목적도 없는 노동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거나 소외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그 시간을 게으름을 피우거나 놀이나 전쟁 또는 축제를 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P244
 
베네수엘라 아마존 유역에 사는 야노마미 인디언들과 여러 해 동안 살아온 리조는 그 사회의 성인이 하루 노동하는 시간은 모든 활동을 포함하여 3시간을 약간 넘는 정도라는 것을 조사를 통해 밝혔다. 사냥과 채집은 대개 아침 6~11시 사이에 이루어지고 그것도 매일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시사회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나 식량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동물적인 상태에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만 일하고서도 생존-아니 그 이상-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을 거부하면서 필요를 충족하는 생산활동을 전개해왔던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원시 사회가 잉여를 생산하지 않고 최소한의 경제 활동으로 굴러가므로 최대의 효율을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최소한의 지배력을 행사하며(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무리한 자연의 개발로 지구상에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나. 기후 위기가 아닌가. 개발이 최고라 자부한 지구 경제와 사회에 일침을 날리는 메시지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지구상의 흐름을 가속화시킨 두 가지의 혁명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신석기 혁명으로 인한 이동 사회에서 정착 사회로의 전환, 그리고 나머지는 산업 혁명이다. 신석기 혁명으로 모두 정착 사회가 되었는가. 신석기 혁명으로 일부 사회가 정착 생활로 도시와 국가가 형성되었지만 여기에는 농업으로 인한 정주 생활만을 전제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농경 생활을 하지 않고서도 정주 생활이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얼마든지 많다.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능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되며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다수 사회의 수렵에서 농업으로의 이행과 몇몇 사회의 농업에서 수렵으로의 반대되는 이행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것은 이러한 변동이 사회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도 이루어진다는 것, 사회의 물질적 생활 조건이 완전히 변화하는 경우에도 사회 자체는 변화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신석기 혁명이 당시의 인간 집단의 물질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계적으로 사회 질서의 전복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원시 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주의자들이 경제적 하부 구조로 명명한 수준에서의 변화는 정치적 상부 구조에 "반영되어" 그것을 규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후자는 물질적 기초로부터 독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 P249~250
 
국가는 사유 재산을 소유하는 사람의 대표자이자 보호자라고 한다면 이런 재산을 거부하는 원시 사회 내부는 어떻게 사회가 굴러갈 수 있었을까. 정치는 경제와 별개이다. 국가의 기원을 경제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원시 사회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해서,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더 낫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지나친 풍요로움을 향한 욕망을 경계하며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시의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연대기 작가들은 부족 연합의 대추장에게 "지방의 왕"이나 "소왕"이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였다. 투피-과라니 사회의 이 심오한 변화 과정은 유럽인의 도래로 돌연 중단되었다. 그것은 만일 신세계의 발견이 예컨대 1세기 늦어졌다면 브라질 해안 지역의 인디언 부족에서 국가 형성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어떤 것으로도 반증할 수 없는 가설적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그렇지만 이 투피-과라니족의 사례에 한해서 우리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즉 투피 - 과라니 사회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국가의 출현을 막은 것은 서구인의 도래가 아니라 원시사회로서의 사회 자체의 자각이었다. - P265
 
그렇다면 원시 사회는 부족 사회인데 그들의 구심점이 되 주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추장이라는 지위가 존재하는데 그는 수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추장은 전쟁시 필요한 지도자 자격을 제외하고 평시에는 자신의 말로 사람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추장은 자신의 설득이 그 사회에 통하지 않으면 추장으로서의 수행 능력이 없어 위신을 지닐 수 없게 됨을 인지하고 있다. 추장의 능력은 기술적 능력, 말솜씨와 사냥 실력, 군사 행동 조직 능력으로 판단된다. 추장은 이런 기술적 범위를 넘어서서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추장은 사회 봉사직인 셈이다.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것과 똑같은 정도의진리로서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