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책] 진순신 이야기중국사 3

category 리뷰/책 2023. 6. 7. 13:14
2권의 중심 이야기가 초한전쟁의 결과에 따른 한의 역사였다면 3권은 수많은 왕조가 교체되어 어느 하나 특징지어 사건을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진나라가 짧은 시일 만에 무너지고 한나라가 들어섰으나 무제 사후에는 외척이었던 왕망이 왕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로 교체된다.
왕망은 복고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과거 주나라 때로 되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상만을 앞세우고 현실을 보지 못한 탓에 권력을 붙잡고 있었던 호족들은 반기를 들고 일어선다. 게다가 백성들은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니 비적이 된다. 왕망은 이 상황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왕망이 물러나고 후한 시기에 접어들었으나 광무제 이후에는 사실상 황제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외척과 환관 세력이 주도권을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무려 7왕조가 바뀐다(화제-상제-안제-순제-충제-질제-환제).
 
순제는 환관들의 도움을 구해 황제에 오른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양씨가 황후에 오른 뒤 그 일족은 권력을 믿고 횡포를 부렸다. 그 중심에는 황후의 오빠인 양기가 있었고 이후 즉위한 환제는 양씨 일족을 견제하기 위해 환관을 끌어들인다. 이 무렵 환관이 양자를 들여 권력 계승이 가능해지고 사람을 추천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본래는 가장 넓은 층인 사인 계층에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했을텐데 그들은 외척과 환관들 사이에 끼어 주요 무대로 진출하기 힘들어졌다.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나타내듯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여 지방은 어지러워지고 조정은 십상시가 난을 일으키니 중앙마저 초토화된다. 이 무렵 지방의 군벌들이 하나 둘 등장하는 것이 삼국지 배경의 시작이다.
 
삼국지는 초반부터 동탁, 조조, 원소 등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압도한다. 초한지는 유방과 항우를 중심으로 놓고 양강구도로 가기 때문에 전투 중심으로 보게 되어 단순한 구조인 반면 삼국지는 전투들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그 구조가 복잡하나 인물들이 많아서 캐릭터를 분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주목하는 인물들이 달라지는 경험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자신의 상황과 이전의 경험에 맞춰서 그 인물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처음 읽었을 때는 유비,관우,장비 삼형제 중 유비의 현덕함에 끌렸었는데 다음에는 관우, 그 다음에는 제갈량, 조조 이런 식으로 매번 바뀌었었다. 아마도 인물별로 개성이 워낙 뚜렷해서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 싶다.
 
어쨌든 이런 여러 군웅들 중 삼국(위/촉/오)로 결국 압축되었다. 이 시기 황제의 권위는 유명무실했고 헌제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에게 권위를 선양(220년)하면서 후한 시기는 끝이 난다. 황실의 일원이었던 유비가 익주에서 촉한을 건국하였으나 40 여년밖에 유지하지 못한 채  한나라는 멸망하였다.
 
분열의 삼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급속히 무너진 서진이 화북에서 힘을 잃고 강남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화북에서는 여러 민족들이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오호 십육국 시대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5호는 흉노, 선비, 갈, 강, 저 등의 다섯 민족을 뜻한다(갈은 흉노의 한 갈래이고, 저와 강은 티베트계 민족). 16국은 이들과 한족을 포함해서 화북 지방에 세운 수많은 나라들 중 주요 16국을 뜻한다. 16국 중 전량, 서량, 북연은 한족 왕조에 속하며 나머지 13국이 이들 다섯 이민족이 세운 국가다. '16국'은 화북 지방에 있던 '북조'의 수많은 국가들을 묶은 것이고 강남 지방의 '남조'는 한족 왕조인 동진이 있었다.
'호(胡)'란 한족에서 보면 이민족을 뜻하는 말인데 그것이 멸시하는 칭호였으므로 이 시대에는 사용을 금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시대를 '동진십육국'으로 표현하는 일이 많다. 남쪽은 동진이고 북쪽은 여러 나라의 십육국이므로 전국적인 명칭이 된다. 화북 상태만 가리키는 오호십육국보다는 시대 명칭으로서 적당하지만, 이 시대 말기에 남쪽은 이미 동진이 아니라 송(宋)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 점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는 명칭이다. - P370
 
흉노의 대수장이인 유연은 308년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 한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정권을 수립한다. 흉노는 더는 유목국가가 아니고 중원국가임을 선언한 것이다. 선비족도 단석괴라는 걸출한 인물이 출현하면서 국력을 키웠다. 위진(魏晉) 시기에 선비족은 모용, 우문, 걸복, 탁발, 단 이렇게 다섯 부로 나뉘어 있었다. 유연이 세운 한이 무너지고 흉노의 여러 부도 세력이 갈리어 화북은 동으로는 선비족, 서쪽으로는 저와 강 같은 티베트 계통의 민족이 병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선비 모용부 왕조는 국호를 연(燕)이라 칭했다. 오호십육국 시대를 매듭지은 것은 이 가운데 탁발부였다. 갈족의 지도자는 석륵(石勒)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가난하고 문맹이었으나 정치는 훌륭했다고 한다.
 
보통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움직였다. 물론 중원에서 남하해 온 사람들의 이동이다.
보통 새롭게 찾아온 사람들은 토착민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이 시대의 새내기들은 중원의 높은 문화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었다. 토착민들보다 훨씬 고도의 지식을 가진 계층이 적지 않았다. 새로 온 사람들이 오히려 토착민을 멸시하는 분위기였다. 토착민이 그것에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418
화북 지방에 있던 사람들이 대규모로 남쪽에 정착하면서 혼란이 찾아왔다. 내가 사는 땅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안 그래도 먹고 사는 일이 어려운데 토착 세력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 같다.
오, 동진, 송, 제, 양, 진. 삼국 이래 강남땅에 이 여섯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다. 오나라의 손권이 황제를 칭한 229년부터 진나라가 멸망한 589년까지 360년 동안을 '육조 시대'라고 부른다.
 
육조 시대를 귀족사회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귀족사회라고 하면서도 중요한 때 세상을 움직인 사람은 실력을 갖춘 군인들이었던 것이 육조 시대의 참모습이었다. - P421
 
삼국 이후 중원이 어지러워지자 중국 정권의 힘은 서역에 미치기 어려웠다.
 
화북 땅을 거의 통일한 전진의 부견은 비수전투에 패하여 남정에 실패하면서 정권이 붕괴되었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면 언제나 이렇게 위험하다. 북위의 선비 탁발부는 부견을 거울 삼아 장기정권 유지에 힘을 쏟았다. 부, 낙, 족의 유력자를 가능한 그 조직에서 떼어 놓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해 행정을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북위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군대를 보내 화북을 통일하였고 화남의 송왕조와 천하를 양분하는 세력이 되었다. 이 때 북위가 서방으로 진출하면서 불교가 유입된다. 낙양 천도 후 북위는 한화에 힘을 쏟았다. 선비족 언어와 성씨, 풍습을 금지하고 한족의 문화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북방의 고유 문화는 한화에 밀렸고 중국은 중화사상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어느 역사나 복잡한 시기가 있지만 거의 500 여년의 세월 동안 이렇게 복잡한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다니 놀라웠다. 자고 일어나면 왕조가 바뀐다고 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삼국지 시대는 나관중이 소설을 써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읽히는 등 자료가 남아 있지만 특히 위진남북조 시기의 역사는 자료도 빈약하고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듯해서인 것 같다. 어릴 적 세계사 수업을 받을 때도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가 있었다.' 간략하게만 말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났다. 너무 소략해서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도 궁금증이 더 커졌고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민중사의 지평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본다  (0) 2023.06.07
[책]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0) 2023.06.07
[책] 한자의 풍경  (0) 2023.05.30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0) 2023.05.23
[책] 소년이 온다  (0) 2023.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