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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기열전 1

category 리뷰/책 2023. 4. 24. 13:11
몇 년만에 다시 읽은 사기 열전은 또 읽어도 왜 이리 새롭고 재미날까. 수면 아래 잠자던 나의 지각 세포를 깨우듯 활자를 읽어나가며 그래, 이런 인물이 있었지. 아무리 오래 전에 읽었어도 읽는 순간 새롭지 않다는 경험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처음에 사기 시리즈를 읽을 때는 '열전'부터 읽었었다. 재미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중국 고대사에 대한 얽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서 그냥 이런 인물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헌데 책을 보니 내가 무척 열심히 읽었는지 밑줄까지 벅벅 그어가며 읽은 흔적을 발견했다(물론 기억은 없다).
 
본기는 '항우'를 제외하고는 당연시되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가나 열전과는 다르게 정제되어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가와 열전은 실려 있는 인물들만 봐도 사마천의 입김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또 대화문이 중심인 경우가 많아 역사를 모르고 사건과 인물에만 집중해도 읽기에 수월하여 그런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열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자객 열전'이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무슨 자객의 일화가 역사에 실리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한 자객들로 무려 다섯 명의 활약상이 실려 있다. 이 중 인상적인 이는 역시 '진시황'(이 때는 황제가 아닌 왕자 시절)을 공격한 형가(연나라 출신)다. 형가 뿐 아니라 진시황은 수시로 노리는 자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마천이 자객들의 일화를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죽이려고 했던 대상은 결국 개인적으로 보면 원수다. 그러나 자객의 활동으로 죽을 뻔 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잘못 하고 있구나.'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는 것처럼 이들은 때로 다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이었고 이를 처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객들은 뛰어든 것이다. 사마천도 그저 개인의 원한으로 뛰어든 자객보다 집단의 원한을 갚기 위해 뛰어든 자객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전국 시대 대표 공자들인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의 4명의 열전도 실려 있다. 이 중 신릉군은 '위 공자 열전'으로 실려 있다.
이 네 명의 공자들은 집 안에 식객을 많이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데 유독 맹상군의 식객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사마천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이 후대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 아닐까. 명성과 이익을 쫓았던 인물평이 악수로 작용한 경우다.그렇다고 해도 선비를 집안에 들이려 한 것은 자신의 이득만은 아니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지.
평원군은 다른 사람의 간언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했으며 이웃에도 잘 했기에 명망을 떨쳤으나 때론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춘신군은 초나라 재상을 20년 간 지내면서 합종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진나라에 대항하고 노나라를 접수하면서 초나라를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4명의 공자들 중 위나라 공자인 신릉군 무기는 가장 어질고 능력까지 출중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똑같이 빈객과 선비를 집 안에 초대했어도 초대받은 이들로부터 충성과 존경을 얻고 아니고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또 신릉군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다고 한다. 전쟁과 기아 등으로 혼탁했던 시기에 이 능력은 비범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질이었을 것 같다.
 
전국시대 유명한 군사가였던 악의와 정치가였던 염파, 인상여는 조나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조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은근한 강자였다. 서쪽에 진나라가 있었고 남쪽에 초나라, 북쪽에 연나라가 있었고 또 조나라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조나라가 이 중간에 위치해서인지 외교와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물들이 오가고 탄생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악의는 위나라 출신이었지만 조나라에서 벼슬을 했고(물론 그 후에 활약은 연나라에서 제나라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염파와 인상여는 약화되었던 조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경쟁자였던 염파와 인상여가 나란히 다루어졌다는 것이 후대의 독자로서 놀라운 지점이다. 사마천의 평가는 인상여에게 좀 더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도덕적인 면(너그러움, 인)에 대한 평가 때문인 듯하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를 찾아가 변설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꿇리지 않는 기개와 용기를 느끼게 했고 자연스레 조나라의 국격까지 높이는 모습이었다.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는 명성만 믿고 조괄을 쓰시려 하는데, 이는 거문고의 괘棵를 아교로 붙여서 고정시키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자기 아버지가 남긴 병법 책을 읽었을 뿐 사태 변화에 대처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조괄을 장군으로 삼았다.
조괄은 스스로 어릴 적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대해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일찍이 그는 아버지 조사와 함께 군사적인 일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는 그를 당해 낼 수없었다. 그러나 조사는 그가 잘한다고 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골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 P538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소진과 장의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소진이 합종을 주장했다면 장의는 연횡의 대표주자다.
소진 열전에는 소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소진의 두 동생인 소대와 소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소진이 합종에 성공해 육국의 재상이 되어 13 년간이나 자리했다는 것은 평가를 떠나서 그의 능력에 출중함을 엿보이게 한다. 소진은 진나라에 갔다가 거절 당하고 나서 육국을 차례로 돌면서 유세를 한다. 그의 유세법은 탁월한데 각 나라에 맞춰 그럴 듯한 설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나라에 가서는 닭부리가 되라'고 하고 위나라에 가서는 '싹을 잘라라'라고 하고 제나라에 가서는 '실질적 이득을 생각하라'고 한다. 사실 어디에든 통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것이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설득하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대와 소려는 연나라를 위해 계략을 꾸며 제나라를 물리친다.
장의 열전에도 장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진진, 서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연횡을 주장했다.
장의는 진나라 재상으로서 제나라, 초나라를 이간시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때 장의가 진나라를 가도록 만든 배후 인물이 소진이었다는 것은 놀라웠다(가신으로 하여금 장의를 화로 정신차리게 한 것). 위나라를 시작으로 초->한->제->조->연을 차례로 돈다. 진나라 혜왕이 장의를 지지했다면 뒤를 이은 무왕은 장의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때문에 제후들은 이 때 눈치를 보다 연횡에서 벗어나 합종을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이 가겠다 단언하며 위나라로 갔으나 간 지 1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진진은 장의와 함께 혜왕의 총애를 함께 다툰 인물이고 서수는 장의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의가 죽고 나서 장의의 자리를 차지하여 활약한 인물이다.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천하의 강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이고,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다툰다면 그 형세는 양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 P282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나라를 받들어 합종하겠소."
모수가 물었다.
"합종이 결정된 것입니까?"
초나라 왕이 대답했다.
"결정됐소."
그러자 모수는 초나라 왕의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모수는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초나라 왕에게 올리면서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 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하여 어전 위에서 합종 약속을 맺었다. 그러자 수는 왼손으로는 구리 쟁반의 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열아홉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 P408
 
열전은 총 70명의 인물을 다루는데 1편은 딱 절반인 35명의 인물을 다루었다. 900여페이지에 달함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2권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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