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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학문의 권장

category 리뷰/책 2023. 4. 10. 13:22
『학문의 권장』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표 저작 3권(서양사정, 학문의 권장, 문명론의 개략) 중 하나이다. 3부작은 서양사정이 1866년으로 처음 저술되었고 학문의 권장이 1872년, 문명론의 개략이 1875년출간되었다. 때문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 흐름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의 개화 시기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서양사정은 서양의 근대 이론을 소개하면서 해당 용어를 일본식으로 번역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학문의 권장은 고향인 나카쓰에 나카쓰시학교가 설립되는 시기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처음에는 고향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었는데 원고를 읽은 누군가가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출판을 종용하여 냈다고 한다.
 
이 책은 서양사정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서양사정은 말 그대로 서양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학술적 느낌이 든다. 반면 이 책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 권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설득이나 연설조의 글이라 읽기에는 더 수월하다. 마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던지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다고나 할까.
내용은 일본에 특수한 예시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기준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저자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사상가이기 때문에 자국중심주의적 사고가 엿보이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학문'은 이치와 이상을 파고 드는(예를 들면 성리학의 주리론처럼) 그런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른바 '실학'이다. 조선에서도 실학의 대표 주자들이 활동할 시기가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고 난 후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 결과 이른바 서양에서 잘 배워서 일본의 근대를 발전하자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일본의 근대 지식인에게서 조선의 개화파 지식인들(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총 1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판 연도가 다 다르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메이지 4년 12월 집필, 5년 2월 초편의 출판을 시작으로 17편이 메이지 9년 11월 출판되었으니 모든 편이 출판되기까지 총 4년 정도의 기간이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각 편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즉 일본 국내 사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실제로 각 편의 내용의 주제가 다르고 어조도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을 집필할 때 저자의 나이가 39~43세였다고 하니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다. 내용은 구성에 따라 총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초편은 이 책의 시작이자 끝, 핵심을 담고 있는 장으로 총론의 성격을 지닌다. 2편부터 7편은 '실학'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자세와 방법론을 다루므로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론은 인간의 권리인 보편으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한다. 이 때 배우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이 배움으로 인해서(서당에서의 학문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학문) 독립해야 하고 일국도 독립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는, 인정에 따라 우선 각자의 행동을 바르게 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사물에 대해 폭넓게 알고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지혜와 덕성을 갖추며, 정부는 정치를 알기 쉽게 베풀고 모든 인민이 정부의 지배를 받아 고통받지 않도록 하여, 서로가 소임을 다하고 전국의 태평을 지키려는 것일 뿐, 지금 내가 권장하려는 학문도 오직 그것을 위해서이며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 P33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것을 서양 말로는 reciprocity 또는 equality라고 한다. - P43
 
2편부터 7편까지는 사람들 간의 권리의 평등과 국가 간의 평등, 국민과 정부 간의 관계에서의 권리, 법에 의한 통치의 중요성, 유무형의 학문의 차이와 그것의 상호 관련성, 실제적 현상과 그것의 이치와 원리의 탐구를 찾는 중요성, 독서의 목적, 문자나 언어의 문제, 국어를 연구해야 하는 중요성 등 비단 개인의 권리 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여러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부가 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은 인민이지만, 그것은 단지 편의상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전체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을 때는 국가를 정부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인민의 본분에서 도리가 아니다. - P51
 
정부는 법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법은 반드시 엄격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한편 인민은 정부가 만든 법을 지키는 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그것을 정부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법이 시행된 것은 사적으로 그 법의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켜야 마땅하다. - P91
 
요즘 정순신 장관의 자녀 문제로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었는데 사실 이는 그동안도 고질적인 병폐였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애매한 처벌로 가해자는 뉘우치기는 커녕 아무 죄의식이 없고 처벌이 주어진다고 해도 집행유예 등으로 이도 저도 아닌 처벌이 되어 버린다. 피해자만 억울한 상황에서 이 사회는 폭력의 해방으로부터 나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유럽이나 미국의 나라들은 부유하므로 강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은 가난하여 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강약은 그 나라의 지금의 상황이며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 나라의 부강한 힘만믿고 빈약한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완력으로 병약한 사람의 팔을 비틀어 꺾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 일본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서양 나라들의 부강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도리에 벗어난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 때에는 세계가 다 적이 될지언정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일본이 자행한 뒤의 오류들이 국가론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당시의 약육강식의 논리와 맞물려 일본의 부강함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짓밟히는 나라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할 방법론을 담고 있다. 굉장히 넓은 주제인데다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여성론이나 효행론은 여전히 지금도 가부장제의 공고화로 제대로 인식조차 못한 상태에서 자행되는 문제들에 일침을 놓을 만한 것들이어서 놀랐다.
 
그 뜻은 아무리 음란한 남편이라도 남편인 이상 어떠한 치욕을 당해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오직 마음에도 없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의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의 의견에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오직 방탕한 남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므로 남편의 마음이 곧 천명(天命)이라고 생각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불교 서적에는 여자는 죄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큰 죄를 지은 죄인이란 말인가. 그 밖에도 일방적으로 여자들을 질책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대학』에 부인의 칠거(七去)라는 말이 있는데, 여자가 음란하면 이혼을 당해도 당연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것은 남자를 위해서는 아주 편리한 내용이다. 너무나 일방적인 얘기가 아닌가. 결국 남자는 강하고 부인은 약하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남녀를 상하로 나누는 명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13
 
애도시대 중엽의 교훈서인 ‘여대학’에 대한 비판이다. 조선도 삼종지도를 강조하던 모습에서 비슷하고 이는 현재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탐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며 자식 부부를 시시콜콜 간섭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생각을 옳다고 하며 자식의 의견은 입 밖에도 낼 수 없게 한다. 며느리는 마치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자고 먹고 사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부모 마음에 거스르면 불효자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도 시부모가 지나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므로 시부모의 편을 들어 불효하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理)와 비리를 가리지 말고 부모에게 적당하게 거짓말을 하라며 거짓 행동을 권하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가정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어머니의 됨됨이는 며느리 적에 이미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킬 때에는 옛날 자신의 시집살이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P117~118
 
우리나라에서 사족이상의 사람들은 수천 년의 구습에 젖어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며, 부유함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거만하게 무위도식하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주색에 빠져 앞뒤 분별을 못하는 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 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가. - P135
 
오늘날 부유한 권력자들을 보면 소름 끼치게 똑같지 않나.
 
학문을 하는 목적은 독서를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에 있다. 그 활동을 통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observation은 사물을 관찰하거나 현장에 직접 가서 시찰하는 것을 말하며, reasoning은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학문의 연구를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에 많은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담화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시찰이나 추구 또는 독서는 지식과 식견을 넓혀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고, 저술이나 연설은 지식과 식견을 넓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 중에는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담화나 연설은 상대가 필요하다. 연설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P149~150
 
독서를 하고 나서 끝이 아니라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이나 강연회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듣고 의견 교환을 하는 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취사선택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학문은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는 것에 있다. - P183
 
이로써 후쿠자와 유키치의 3부작 중 2권을 읽었다. 아까워서라도 남은 저작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이 내용은 당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도 유용한 교훈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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