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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코리아 체스판 제1권 上

category 리뷰/책 2023. 4. 18. 11:02

노태우와 김영삼 시기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의 정치, 사회를 논평한 기사들을 싣고 이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노태우 정권 초중반기 훈풍이었던 대북 외교, 사회주의 붕괴에 따른 세계의 정치적 변화, 소련을 시작으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맺기, 김영삼 정권의 정치 자충수로 벌어진 남북 관계, 북핵을 둘러싼 대내외 갈등 등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가는 시사저널에서 기자를 시작한 이래 시사인에서 20년 넘게 기자로 지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사회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써왔다. 나는 2010년대 들어와서야 시사인을 알게 되었고 기자의 기사를 그 때 접했다. 접하는 순간 ‘이거다!‘하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왜 좀 더 빨리 기자님의 기사를 읽지 못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이제 은퇴를 하셔서 앞으로는 더 읽을 수도 없다). 남문희 기자의 기사는 짜릿할 정도로 분석적이어서 좋았다. 한반도는 차갑게 식었다 뜨겁게 타올랐다를 반복하는 만큼 내용이 민감하고 위험한 경우가 많다. 신문마다 이제 한반도 주제가 따로 있을 정도로가 되었지만 이는 한반도가 그만큼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런 현장에서 20년을 넘게 기사를 꾸준히 써왔다는 것은 기사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성실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한반도의 운명과 주변국과의 정치 싸움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왜 북한의 도발은 멈추지 않는지, 북한은 미국과만 대화하려고 하는지, 이제 평화는 요원한건지, 주변국과의 외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감하며 분노하고, 웃고 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한과의 관계는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인 노태우 정권부터 기본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권 내부 사정과 외부 세계의 변화에 따라 남북 관계는 계속 대응되어 왔다. 이 책이 노태우 정권부터 담고 있는 이유이다.

나는 남북 관계가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고 생각해왔다. 북한이 무력 도발이 있기 전 전조 증상,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규탄, 남북 관계 경색 등. 남북 관계는 왜 항상 주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과 엮여서 돌아가는걸까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간과 시간을 뛰어 넘는다고 해도 홀로 설 수 있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주변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조금 더 유리한 입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한반도에 평화는 결코 단 번에 찾아올 수 없다. 서독과 동독도 냉전의 해빙 무드가 있기는 했지만 장벽 앞에서 끊임없이 몇 십년간 교류를 지속했다. 정상 회담 등 거창한 것보다는 민간 교류 등 작은 흐름들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앞부분에는 오타가 있을 거라고(직접 자판을 두드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오타가 나올 때마다 흠칫 놀라서 집중력을 흩뜨려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편집자가 읽어보고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이런 책이 2쇄 이상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고쳐질 일은 없겠지만 만약 다시 찍을 수 있다면 수정되길 바란다. 또 이어서 나올 下권은 최대한 감수하여 책이 나와주면 좋겠다.

피스메이커(임동원) / 70년의 대화(김연철) 등의 책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선언 당시만 해도 소련의 한국에 대한 입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르바초프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통해 1차적으로 추구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중소관계는 1969년 3월2일 우수리강의 다만스키 섬(JamaHcku, 중국명 전바오섬(珍寶島, 珍宝岛))에서 벌어진 군사 충돌로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
브레즈네프 시절인 1980년대부터 관계 개선 움직임이 시작됐다. 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소련이 3대 장애를 제거할 것을 요구했다. 소련군이 아프가니 - P3
스탄과 몽골에서 철수하고 베트남에 영향력을 행사해 캄보디아로부터 베트남군을 철수시킬 것 등이다. 1979년 12월 아프간 침공 이래 소련은 서쪽에서는 미국, 동쪽에서는 중국 일본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다. 따라서 미국과의 냉전 해체와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다. - P4
남쪽은 동유럽과 같은 변혁의 물결이 북한에도 흘러넘치기를 원했다. 북한은 수세적 방어적 차원에서 대응했다. 남북간 개방과 교류를 막는 책임이 남쪽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남과 북 사이에는 통일방안의 차이 뿐 아니라 정상회담이나 당국간 대화의 위상도 서로 극명하게 달랐다. 노태우 정부 초기인 89년에서 90년 초까지만 해도 핑퐁게임처럼 똑같은 주장만이 되풀이됐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남쪽의 정상회담 개최 주장에 북한은 정치협상회의로 맞섰고 남쪽이 당국간 회담을 중시하는 창구 단일화를 주장하면 북한은 당국과 사회단체가 같이 참여하는연석회의 식의 통일전선전략으로 맞섰다. 유엔 가입에서도 남쪽이 두개의 국가로유엔 가입을 주장하면 북한은 단일국호 단일의석으로 유엔 가입을 주장하는 식이었다. 그 근저에는 남쪽의 ‘두개의 국가론‘과 북한의 ‘하나의 조선론‘의 격돌이 있었던 것이다. - P24
17일 오후 4시 15분에는 서울에서 당시 정원식 수석대표(당시 총리)앞으로 "2개 조건만 관철되면 남북적십자 접촉을 즉각 재개하는 데 합의하라"는 내용의 전문이 평양으로 날아들었다. 이 전문은 대통령의 정식 훈령이었는데 차석대표인 임동원은 물론 수석대표인 정원식 총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즉 회담을 깨기 위한 가짜 전문은 평양의 우리 대표들에게 날아들고, 대신 회담을 타결지으라는 대통령의 진짜 전문은 묵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평양에서 개최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훈령을 담당한 안기부 출신 회담 대표가 대통령 훈령을 무시하고 남북 합의를 무산시켜 버린 것이다. 이들이 이같은 엄청난 일을 벌인 데에는 임기 말에 접어든 노태우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틈을 타 그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 후보에게유리한 선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얘기가 그뒤 파다했다. 김대중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김영삼 후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 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는 얘기다. - P86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급진적인 정책들은 국내적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대외정책은 ‘신사고 외교‘로 불렸다. 페레스트로이카(IIepecrpoika/Perestroika)는 정치·경제적 개조를 의미한다. 관료의 부패를 타파하고 공산주의식 경제 운영의 한계를 극복하고 점진적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것으로 요약된다. 글라스노스트(TacHocTb/Glasnost)는 정보의 자유와 공개를통한 민주화를 뜻한다. 구소련 사회의 언론 검열을 폐지하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개방 정책이다. 신사고 외교는 서방과의 체제 및 이념대결을 지양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했다. 군사력 위주의 안보 보다는 포괄적 안보를 지향하며, 사회주의동맹간의 연대 보다는 인류공동의 보편적 가치와 이익을 중시하는 것으로 요약할수 있다. - P89
북한은 소련과 중국, 그리고 기존 사회주의 동맹국들이 한국과 수교하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됐다. 이들 국가들이 거의 대부분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한 가운데 체제 생존의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북한에게 숨 고르기 할 시간을 벌어준 게 한국의 보수 세력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노태우 정부 후반기 남북 고위급회담이 성과를 내면서 남북 교류의 물꼬가 터지려 한 것은 북한에게 기회이자 위기였다. 그런데 정권 내 보수세력들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대북 강경책을 몰아붙이면서 북한에게 숨고르기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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