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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토지 15

category 리뷰/책 2023. 5. 2. 11:44
천하무적의 군비, 일본의 심장은 그것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P92)
 
1931년 9월 18일, 선양(당시에는 펑톈) 부근의 철로에서 폭탄이 터졌다. 만주에 체류 중이던 국민정부의 미국인 고문 로버트 루이스는 중국 외교부에 전보를 보냈다.
9월 18일 금요일 밤 군용 열차 7량에 가득 탄 일본군이 조선에서 단둥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왔다. 9월 19일 토요일 밤에 4량의 열차에 탑승한 일본군이 증원되었다. (...) (일본인들은) 학교 관리자를 체포하고 쑨원의 삼민주의 교육을 금지시켰다. (...) 병사들과 생도들은 체포되어 무장 해제되었다. 일본인들은 신형 소총과, 기관총, 군용차량 등 중국군 병기고의 무기와 탄약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중일전쟁 - 레너 미터, P61)
 
토지 15권은 시기의 범위가 가장 넓지 않나 싶은데 1931년 만주 사변 이야기를 하다가 중후반이 되면 훌쩍 시간을 넘어 1938~1939년이 되어 있다. 때문에 그 시간만큼 인물들은 나이가 들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있어 이거야말로 시공간을 뛰어 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5권 인물들 중 가장 놀라운 변신을 한 인물은 유인실일 것이다. 14권에서 유인실의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힘들게 읽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전 케이스가 된 것인지 놀라웠다. 반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에 또 16권을 기다리게 하는 그 어떤 사건이 터져서 또 나를 궁금하게 한다. 어떻게 흘러가고 풀릴지 말이다(꼬이지는 말아주길).
 
15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꼽을 수밖에 없다. 중국 국내의 사정, 그리고 일본 국내외 사정은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 조선이 중국과 일찌감치 함께 합세하여 일본에 대항했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었겠느냐 생각해보면 솔직히 회의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중국 땅 내부까지 그 여파가 미쳤고 이는 중국 북부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과 독립군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중국인들의 시선도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일본 군벌이나 헌병에 고발하는 사례 등이 증가).
 
장학량이가 작년에 공산당하고 결탁해서 장개석이를 납치한 서안사건(西安事件), 그게 멸망의 징조였던 게야. 서안사건은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의 원인이지. 일본을 상대해서 중국은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이제는 만주가 문제 아니야. 멀잖아 일본은 중국을 손아귀에 넣을 거다. 이런 판국에 조선이 독립을 해?"
"중국을 손아귀에 넣는다구……… 그게 쉬울까요? 소련이 있고 미국, 다른 나라들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만주를 보아라. 군말 몇마디 듣고 끝나지 않았나. 그나마 그 귀찮은 소리 안 듣겠다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를 했거든 아무튼 일본은 지금 욱일승천이야. 기세가 하늘을 찔러. 장개석이 군대가 허약하기도 하지만 공산당을 경계해서 힘을 다 쓰지 않는 것도 일본의 전과가 오르는 이유의 하나고, 공산당이 아주 숨이 끊어져서 장개석이 강화되어도 안 될 거고 물론 공산당이 국민당을 아주 내몰아도 일본은 난감할 거고 말하자면 시기를 잡는 데 일본은 묘수(妙手)를 쓴 셈이지. 만주사변하고 꼭 같은 길을 가는 게야. 참말로 세상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 만주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변했지. 내가 만주땅에 온 것이 삼십 년 꽉 차고 넘었는데 변해온 꼴을 보니 마치 처음에는엉금엉금 얼음판을 기듯, 다음에는 간신히 걷고 그리고 뛰는데 지금은 날고 있어. 허허벌판, 신경의 저 대동광장은 몇 해 전만 해도 허허벌판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어때? 사오 층의 어마어마한 건물이 가득 들어서 장관이지. 오랑캐의 땅이 그리 번창할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 P322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이며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 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 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 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 행렬, 등불 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 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 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 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 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P448~449)
 
1936년 2월 26일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이른바 '니니로쿠' 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들은 '국가개조를 막는 통제파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부대를 이끌고 수상관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습격, 당시 내무대신 사이토 마코토, 오쿠라대신 다카하시 고래키요(1854~1936) 등 정부 요인을 살해했다. 사건은 이들을 3일 만에 진압함으로써 마무리됐으나 군부는 숙군을 핑계로 정계 요로에 군부세력을 크게 강화했다. 이같은 진통을 겪은 군부는 대중 매체나 교과서, 나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 국민에게 '대일본 정의'를 믿도록 선전했다. (도쿠토미 소호, P256~257)
황도파는 1932년 무렵 아라키 사다오(1877~1966), 마자키 진자부로(1876~1956) 두 대장이 위관급 청년장교들을 규합하여 형성한 육군내의 한 파벌로 텐노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텐노 중심의 국체 지상 주의를 신봉하였다. 통제파는 일본 육군성 중앙막료 등 영관급 장교를 주체로 형성된 군부 파벌로 재벌과 관료들과 결탁하여 군부세력을 신장시키고 전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군부 내 통제를 주장하였다. 만주 사변 이전에 군부와 내각이 갈등을 겪었다면 이후에는 군부 내 파벌들이 나뉘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국민들에까지 전시, 강요, 확대했다는 데 있다.
 
홍구사건 이후 조선 혁명당이 중국 요녕 구국회와 합작하여 항일전선을 구성함으로써 양 민족 간의 공동보조는 구체화되었고 조선 독립군과 중국 의용군이 합세하여 쌍성현(雙城縣)의 점령을 위시하여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군(滿聯合軍)을 격파했고 동경성(京城)을 점령, 동만(東滿)의 대전자령에서 일본의 나남(南) 72연대를 대파하는 등 행동으로 나타났다. - P387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일본의 전쟁 준비에는 일본으로의 소규모 엘리트 이주와 대규모 수사법이 수반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군사고문관을 초빙하고, 전쟁 준비를 범아시아적 이익, 다시 말해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일본의 팽창으로 합리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수사법이었을 뿐 일본의 진정한 속셈은 중국의 원자재와 사람을 비롯한 자원 그리고 (전후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을 시작으로 일본은 상하이를 장악하고 중국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다.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에는 일본군이 학살, 강간, 약탈도 자행했다. 그때 죽은 사람이 30만 명이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870~1945, P650)
 
만주사변 후 만주국이 세워지고 1937년까지 6년간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중국 내에서 끊임없는 중일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 내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사정과 맞물렸고 일본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다.
만약 중국 내의 그 복잡한 사정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운다는 것이 조금은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 P432
 
당시 난징에 대한 상황 묘사인데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 묘사가 있지만 도저히 옮기기가 어려워서 이걸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가장 잔악무도한 사건들 중 하나이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 이유 불문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 국민, 일본 정신, 일본 문화는 대체 무엇이냐는 가장 나를 괴롭혔던 주제였다. 쉽지도 않고 지금 당장 답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황도주의를 생각했고, 황도주의 하면 대표되는 인물, 도쿠토미 소호를 떠올렸다.
 
일본 국민의 제일 의무는 일본국을 아는 일이다. 일본국체가 세계에 탁월한 까닭을 아는 일이다. 일본은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국체를 갖고 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원수로 받들고 있는 일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 찾아도 우리와 같은 체제는 없고 버금가는 모양조차 아직 볼 수 없다. 그리고 만세일계의 황실은 우리 야마토 민족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황실은 야마토 민족의 중심이자 근본이며 주축이다. 동시에 야마토 민족이라는 대가족의 본가(本家) 본원(本元)이다. 황실은 이른바 군부(君父)라는 두 자로 대체할 수 있다. 임금이면서 아버지인 것이다. 이 군민 일가족이라는 생각은 일본제국의 자랑이다. (...) 일본의 원수와 인민은 머리와 몸통 관계이다.(...)  황실이 야마토 민족의 근간이고 인민은 그 곁가지이다. (...) 우리 제국은 나라가 곧 가정이고, 가정이 즉 국가이다. (도쿠토미 소호, P195~197)
일본제국헌법은 황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국민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동시에 묶는 존재로 신격화하고 있다. 도쿠토미는 이 '일본제국헌법'을 구체화한 이론으로 '황실중심주의'를 만들어냈다. 그가 이것을 일본 국민에게 호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일본의 국체(國體)를 재확인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한탕 주의 또는 패배 주의로 흐르는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희박해지는 충군애국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오가타는 일본과 만주국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일본군과 일본인을 욕하지만 자신도 일본인이니까(자신을 탓하기도) 마치 끝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했으나 그러기엔 자신의 출신, 상황은 한계로 몰고 간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패배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이것이 아니라면 국가가 선전하는 군국주의를 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가)
 
일본 아이들이 중국인은 모두 모두 죽여라! 하더라는 찬하의 말을 들었을 때 오가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며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그 자신이 목격한 적이 있었다. 만주사변이 군의 몇몇 미친놈들의 독주였었다는 것을 일본인인 오가타는 심정적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약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관동군의 단독 행위건 정부는 무관했건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디 조선인이오? 일본이 뼛속까지 젖어들어 나는 이 동경에 있질 않소. 하하핫…………" - P251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 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 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 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 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 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는가? 인간의 최고 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 P484~485
 
 
문화에 대한 키워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건과 관련된 역사의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다. (문화와 해석, 중일전쟁 관련사들)
토지를 읽으면 마치 무한 확장되는 사물처럼 내 머리가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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