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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새 - 오정희

category 리뷰/책 2023. 4. 10. 10:11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 무렵 즈음 어느 주택가를 떠올리게 한다. 아파트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서민들이 익숙하게 사는 그 곳이다. 응팔 시리즈를 단 하나도 본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들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 무렵의 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만화가 있는데 '우주소년 토토'다. 1984년에 나왔다고 하는 것을 보니 그 무렵이 시간적 배경일 것 같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만은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어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분노가 쌓이니 뻔뻔해지고 감정적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들이 안됐다고 생각하다가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사정도 녹록치 않은 것이 보여서 마음이 불편했다.
 
폭력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의 내면은 상처와 얼룩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도 "내가 미쳐!"라는 소리를 항시로 듣고 "내 명대로 못 살고 죽을 거야"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에 온 여자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나는 이 말을 하는 여자가 안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은 어쩌라는 걸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팽겨쳤다. 남자는 열등감과 열패감을 분노로 포장해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던졌다.
 
안방의 아랫목 쪽 벽 중간쯤에, 두 짝의 미닫이로 된 벽장문이 달려 있고, 그 문을 열면 다섯 개의 계단, 그 계단의 끝에 어슴푸레 떠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묵은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찬 다락의 어둑신함과 그 안에 서린 매캐하고 몽롱한 냄새, 모든 오래된 것의 안도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먼지, 오래된 시간, 이제는 쓰일 일 없이 버려지고 잊힌 물건들 사이에서, 그 슬픔과 아늑함 속에서 우리는 둥지 속의 알처럼 안전했다. - P27
 
아이들이 그 속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란 다락방이라는 공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아이들은 이것 저것 열어보며 닫힌 것을 열어 제꼈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동생도 그 곳에서는 잠시 자유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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