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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토지 10

category 리뷰/책 2023. 1. 25. 11:11
10권을 읽으면서 머릿 속을 비집고 들어온 역사적 배경은 다름 아닌 '물산장려운동'이었다. '물산장려운동'의 중요성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일까.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것쯤으로 간단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헌데 토지 10권에서는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시각과 방향이 당시 무산자 계급 운동과 맞물려 있었던 만큼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이상현과 선우일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물산장려운동이 단순한 경제적 자립에 한한 것이야? (...) 인도식이다, 중국식이다, 남의 형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스운 얘기지만 우리에게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일제에 대한 저항 아니겠느냐, 그 말이야. 중국과 다르다 하며 반대하는 놈들, 별 무소득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설사 일본놈 자본에 눌리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가정하더라도 3.1운동 이후, 이 시기에, 어떻게 일으킨 불꽃인데?  그걸 끄려고 덤비는 놈들은 다 반역자다! 몇 사람의 기업가가 돈 좀 벌게 된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구. 새 발의 피라구. 그걸 못 새겨서, 아 그래 초가삼간 타는 것보다 빈대 타 죽는 것이 시원하다는 심보 아니고 뭐겠냐 말이야. 일본놈이건 조선놈이건 착취당하기론 마찬가지라구. 길가에 쫓겨 나앉아서 집 찾을 생각은 않고 싸움질하는 꼴밖에 더 되겠느냐 말이다. 계급투쟁을 나쁘다 하는 게 아니야. 계급투쟁 그 자체도 투쟁대상은 일본이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엔 말이야."
"(...) 물산장려운동을 방해하고 비난을 퍼붓는 이곳 좌파 과격분자들의 이론과 의돈형님의 이론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형님 말씀이 영세한 자본, 불리한 조건으로 풍부한 자본, 유리한 조건, 그리고 뿌리를 깊이 내린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아예 있을 수도 없고 존립하는 것조차 그들 뜻대론데 자본이 최소한도 유통을 유지하려면 노동자들 임금에서 재주부릴밖에 달리 길이 있겠느냐는 거지. 일본인 업체나 일본인에게 고용되면 일자리 잘 얻었다 하는 것이 일반의 인심 아니야? 왜냐, 든든하고 조선인들보다 임금이 후한 때문이 아니겠어? 일자리는 모자라고 노동력은 많고 결국 남아나는 노동력은 임금이 싸도 흡수되게 마련인데, 불평불만은 싼 곳에 있지. 비싼 곳은 적어도 싼 곳이 쓰러질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거 아냐? 장차 노사문제로 혼란을 겪게 될 때 제일 먼저 칼끝에 올려지는 것이 조선인 기업가인 것은 뻔한 일이지. 그러니 몇 사람을 살찌우는 대신 그들은 일본자본가의 방패로 삼는 동시 민족분열의 원천도 될 수 있다는, 나는 의돈형님이 말한 중에서 이 한가지만은 경청할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착취하는 데 일본놈 조선놈 다를 것이 없다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란 말이야. 일본이 지금 사회주의의 물결을 두려워하고 골머릴 썩이는 것도 사실이지." (P332~335)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3.1운동의 여파로 유화 정책(물론 기만이지만?)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1920년 회사령이 폐지되고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철폐문제가 가시화되자 한국인 자본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은 같아졌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물산장려회가 만들어지고 전국적으로 홍보가 진행, 확산되며 물산장려운동은 대중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된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을 쓰자는 운동은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었던 만큼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측면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923년 이후 물산장려운동은 쇠퇴하는 흐름을 보인다. 한국인 지주들은 물산장려운동 초반만 해도 그것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켜줄 수 있다 생각했지만 일본 자본에 비해 규모나 기술 면으로 취약했던 국내 자본은 수요를 따라갈 생산력과 기반을 애초에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가와 상인은 수요를 맞추어야 했던 데다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기도 하면서 국내 경제는 대혼란이 초래되었다. 또 이 때 러시아 혁명 이후 국내에도 공산주의 비밀결사 단체들이 속속들이 만들어지는 상태였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조선은 현재 일본 제국주의이자 자본주의의 노예이기 때문에 이를 깨부수어야만 민족 해방 및 사회주의 건설을 할 수 있다 주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물산장려운동이 자본가와 중산층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이기심을 조장한다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던 것이다.
 
3.1운동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 반향은 컸다. 이로 인해 상해 임시정부가 생겨났으나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김구를 비롯하여 각종 파들의 내분과 갈등으로 체계적인 정부 운영 및 독립 운동 지원이 이어지지 못했다. 또 러시아에 가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은 코민테른에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공산당 상하이파, 이르쿠츠크파로 나누어 대립하였고 거기에 러시아 내전(볼셰비키 적군 VS 민족주의 백군)에 일본군이 참여하여 자유시 참변(흑하 사변)이 발생하면서 그 곳에서도 더 이상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국내에서는 조선 총독부의 정책 변경으로 일부 지식인들 중 개량주의자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친일의 길을 걷는 사람이 생겨났다.
 
 
10권에 특히나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야무네와 딸인 푸건의 이야기였다. 시집 가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자신이 들어와서 남편이 아프게 되었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 너무하지 않나. 또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된 홍이와 명희도 있었다.
수녀가 되었어야 했나 생각하던 명희도 마음이 아팠고 끝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저앉은 홍이와 장이도 있었다.
 
'어째서 우리 조선여자들은 결혼 못하는 것을 그렇게 수치스럽게 여기는 걸까. 독신주의를 이단시하며 모멸과 조롱으로 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몽달귀신이니 처녀귀신이들 하고 사후까지 액신으로 처우하는 것은 결국 독신자를 사악한 존재로 보기 때문일 게야. 중을 보고 흔히 중놈이라 하는 것도 독신자를 경멸하는 의식에서 나온 말이나 아닐까?' (P456)
 
"저는 저 나름대로 복음전도에 있어서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는가 많이 생각해보았고, 또 체험에서 얻어진 것도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애국사상과 복음을 함께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간벽촌에 있어서 기독교란 아주 생소하고 서양사람 종교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그리고 미신적으로 믿어지는 불교며 무당들, 점쟁이를 통한 귀신신앙도 뿌리깊은 것입니다. 유교에서 오는 조상숭배도 그렇고요. 그러나 아무리 몽매무지한 사람에게도 내 나라를 잃었다, 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말은 대단한 호소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심정적으로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조선에 있어서 독립사상과 기독교 정신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수한 전도정신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P460)
 
종교는 인간을 향한 구원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사회 개혁을 위한 목소리는 낼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여옥이 말했던 것처럼 종교가 개인의 구원을 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나라는 뺏겼는데 신에게 빌어 자신만 구원받으면 무얼 하겠나?
 
당시 종교계에 독립 운동가들도 있었지만 친일에 몸담은 자들도 많았기에 뼈아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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