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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춘추좌전 2

category 리뷰/책 2023. 1. 25. 11:09
춘추좌전 2권은 진초(晋楚)가 양분되는 과정, 오월(吳越)이 세력을 다투는 과정이 담겨 있다.
 
BC 551년부터 473년까지 1권(BC 722~BC552)보다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기를 다루는데 드라마틱한 사건은 더 많아서 흥미진진하다. 이는 춘추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춘추 시대 초기만 해도 열국 간 법도와 예의를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말기로 갈수록 작은 일로 원한을 갖고 이것이 복수로 귀결되는 과정이 잦아진다. 춘추 시대만 해도 제후들은 '왕'이라는 칭호를 칭할 수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스스로가 왕을 칭하는 제후들이 많아진다. 제후들은 등급도 나뉘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엄밀한 위계에 따라 행동해야 했으나 나중으로 가면 그런 경계도 허물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핵심적인 인물은 역시 오왕의 합려와 월왕의 구천이라 할 수 있다. 둘은 쌍벽을 이루었으나 결국 월왕 구천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열국들 중 승자가 되었는지 과정을 지켜보며 리더의 자격,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합려는 BC 515년 노 소공 27년, 주 경왕 5년에 주군을  시해하고 등극하였다. 오나라의 공자 광(합려)은 무장한 갑사들을 지하실에 숨겨두고 오왕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오왕은 호위병을 자신의 주변에 단단히 깔아 놓았지만 합려의 계략에는 미치지 못했다. 
 
공자 광이 발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설제(오나라 당읍 사람)가 물고기 요리 속에 칼을 감추고 들어가 마침내 그 칼을 뽑아 오왕을 찔렀다. 그 순간 호위병들이 양쪽에서 그의 가슴을 피로 마구 찔러 그를 죽였으나 결국 이때 오왕도 시해되고 말았다. 이에 합려는 전설제의 아들을 경으로 삼았다.
 
오나라에 합려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주변 열국들은 긴장했고 변경 지역의 긴장은 더했을 것이다. 사실 합려가 등극하는 모습은 이 기술이 다라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이 때의 모습은 실제 어떠했을까? 실감나는 묘사로 접했다면 더 드라마틱했으리라. 이런 아쉬운 부분은 동주 열국지를 통해서 상세하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등극한 합려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오왕 합려가 서(徐)나라 사람을 시켜 공자 엄여를 잡게 하고, 종오 나라 사람을 시켜 공자 촉용을 체포하게 했다. 두 공자가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러자 초소왕이 이들을 이용해 오나라에 위해를 가하려 했다. 그러자 대부 자서가 이같이 간했다.
"오나라의 광(光)은 새로 나라를 차지하고서는 백성들과 매우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백성을 마치 자신의 자식같이 대하고, 백성들과 동고동락하고 있으니 이는 장차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나라의 변경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 그들을 유복(고분고분하게 복종함)하게 만들지라도 오히려 오나라가 쳐들어올까 두렵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원수를 강대하게 만들어 그들의 분노를 가중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강대해지기 시작해 중원의 여러 제후국과 견주게 되었고 군주인 광 또한 마음이 아주 넓어 스스로를 선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늘이 장차 그가 포학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그를 시켜 오나라를 멸망하게 하고 이성 나라의 영토를 넓히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끝내 오나라를 보우하려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결과를 알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잠시 우리의 귀신을 편히 쉬게 하고, 우리 백성들도 안정되게 만들면서 그 결과가 어찌될지 기다려 보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니 굳이 우리가 스스로 파양(힘들게 움직임)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초(楚)나라의 신포서가 진(秦)나라로 가 구원병을 청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나라는 봉시(덩치 큰 멧돼지)와 장사(큰 뱀)처럼 욕심을 부려 중원의 제후국들을 천식(병탄)하고 있으니 초나라가 가장 먼저 그 침해를 입었습니다. 과군이 하신을 시켜 급히 고하기를, '이덕무염(오랑캐 오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다)'하니 ..."
 
합려 자체의 인물됨은 오나라 안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나 다른 열국들 안에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왕위에 등극한 이후 지나친 욕심으로 열국들의 긴장을 높였던 탓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오나라는 월나라가 침입하고, 신포서가 이끄는 초에 패한(BC 505년) 이후 국력이 점차 쇠하게 된다. 합려에 뒤이어 부차가 월왕 구천을 항복(BC 494년)시키기도 했으나 그 기세는 반짝이었다.
 
월왕 구천의 등장은 묘하게도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을 때 나타난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다. 월왕 구천(允常의 아들)이 오나라 군사의 진군을 막으면서 취리(절강성 가흥현 남쪽)에 군진을 펼쳤다. 구천은 오나라의 군진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우려했다. 이에 사사(결사대)를 두 차례나 출동시켰으나 이들 모두 포로가 되었을 뿐 오나라의 군사에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죄인들을 3항으로 열을 짓게 한 뒤 각자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제히 이같이 외치게 했다.
"양국 군주가 교전하는 중에 우리는 기고(군령)를 어겨 두 번 다시 병사가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감히 형을 피할 수 없으니 감히 귀사(죽음으로써 죄를 구함)하고자 합니다." 이에 죄인들이 스스로 목을 베어 차례로 자진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이 광경을 주목하는 사이에 월나라 군사가 일제히 진공해 오나라 군사를 대파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공격을 받아 힘껏 싸웠고 합려는 이 때 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고 가던 중 숨을 거두고 만다. 이로써 구천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부차와 구천 간의 대결은 BC 473년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포위되어 자살하고  오나라가 멸망하며 비로소 막을 내린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용동(절강성 정해현 동쪽의 해도에 위치)에 거처할 것을 허용하자 오왕 부차가 이같이 사양했다.
"내가 이미 늙었는데 어찌 군주를 섬길 수 있겠소."
그러고는 곧 목을 매어 자진했다. 월나라 군사가 오왕 부차의 시신을 이끌고 귀국했다.
 
건조한 문체로 적힌 간략한 기술이다. 역시 이와 관련한 자세한 상황은 동주 열국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춘추좌전을 통해 춘추 시대의 역사를 만났다. 춘추좌전은 춘추 시대 열국의 명멸을 편년체 기술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특히 전쟁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할 때 거북점을 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었고 인의예지에 입각하여 사건과 인물을 평가한 기술도 특징적이었다. 또한 <시경>과 <서경> 등 과거의 고전이나 경전의 글귀를 인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해당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춘추 시대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확인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된다. 향후에도 참고서의 역할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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