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반드시 읽겠다 생각한 계기가 딱히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는데 언젠간 읽어야 하나 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고 책장 한 켠에 모아두고 있던 시리즈가 아까워서 더는 방치 말고 읽어보자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친구분들이 재독을 하신다기에 이 기회에 1독은 해보아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책을 꺼냈다 놀랐다. 얼마나 오래 되었으면 책 종이가 누렇게 될 정도였다. 내지에는 읽은 흔적도 있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처음 읽었을 때는 내게 남은 것이 전혀 없었던 게 분명하다.
프루스트 문체의 특성이 만연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 작품 읽기에 늘 자신이 없는 터라 이 작품을 이해나 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화자는 엄마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만연체의 문장은 읽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묘사력이 돋보인다. 다만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재능과 특이함에 대한 생각, 상대에게 끌리는 마법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지 근사하게 그려냈다.
레오니 아주머니의 죽음은 화자에게도 충격을 주었겠지만 나에게도 슬픔이었다. 주변을 정리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그를 보면서 죽음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문장들, 구체성 없는 장면들은 때론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화자가 사랑을 느꼈던 소녀와의 강렬한 감정 뒤 어느 거리에서 또 다시 느꼈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나라로부터 나그네가 보내 주는 꽃다발처럼, 아주 오래전에 내가 지나온 봄날 꽃향기를 그대 젊음에서 맡게 해 주게나. 앵초, 민들레, 금잔화와 함께 오게나. 발자크의 식물군에 나오는, 순수한사랑의 꽃다발을 만든 꿩의비름과 함께 와 주게나. 부활절 아침의꽃 데이지와 함께 오게나. 그리고 부활절의 우박 섞인 마지막눈송이가 아직 녹지 않았을 때, 그대의 고모할머니 댁 오솔길에향기를 풍기기 시작한 정원의 불두화와 함께 와 주게나. 솔로제비몬 왕에게 어울리는 백합의 영광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제비꽃의 다채로운 빛깔과 함께 와 주게나. 특히 마지막 서리로 아직은 싸늘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문에서 기다리는 두 마리 나비를 위해서 예루살렘의 첫 장미꽃을 피우려는 산들바람과함께 와 주게나." - P224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을 번데기로 감싸는 노년의 커다란 체념이었는데, 이런 체념은 오래 끌어 온 인생말년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 아주머니는 자신이 결코 스완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결코 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고통스럽게만 여겨지는 이 결정적인 칩거가, 같은 이유로 오히려 아주머니에게는 견디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주머니가 나날이 확인할 수 있는 쇠진한 기력 탓에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칩거였는데도, 아주머니는 행동이나 움직임 각각을 피로나 고통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무위나 고립, 침묵에 기력을 되찾아 주는 축복받은 휴식의 부드러움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P252~253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정리한다는 게 가능할까 생각한다. 군데 군데 구멍이 난 옷감처럼 밀도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무얼 말하는 것인지도 뚜렷하게 알지 못하겠는데... 결국 읽으면서 생각한 소감들을 이어붙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프루스트의 묘사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생각. 특히 풍경묘사!
묘사가 나올 때마다 눈을 감고 장면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생각했다. 나는 그 풍경들을 그려보며 혼란스러웠던 여행의 한 날이 기억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방안은 겨우 책을 읽을 정도로 밝았고, 빛의 찬란함에 대한 감각은, 퀴르 거리에서 카뮈가 먼지 쌓인 상자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로 느낄 수 있었는데(카뮈는 프랑수아즈를 통해 우리 아주머니가 ‘쉬고 계시지 않으니까‘ 소리를 내도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그 소리는 더운 날이면 더욱 낭랑하게 울려 퍼져서 대기 속으로 진홍색 행성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 듯했다. 또한 빛의 감각은 내 앞에서 여름 실내악을 연주하듯, 작은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파리 떼가 윙윙거리는 연주 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실내악은 우연히 날씨 좋은 계절에 들으면 나중에 그 계절을 기억하게 되는 인간의 음악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빛의 감각을 환기한다. 파리 떼의 음악은 보다 필연적인 관계로 여름에 연결되어 있다. 화창한 날씨에 태어나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서만 다시 태어나는 이 음악은, 그런 나날의 본질을 함유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 그 이미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그런 나날이 돌아왔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다. - P151
나는 대지와 존재들을 분리하지 않았다. - P274
대지와 존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저 말이 나는 1권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풍경은 존재와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기억 속에 박제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화자의 저 말은 나도 동감했다. 기억 속의 풍경은 그럼으로써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켈트족의 신앙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은 어떤 열등한 존재나 동물,식물 혹은 무생물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우연히 나무 곁을 지나가거나, 그 영혼의 감옥인 물건을 손에 넣는 날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 그러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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