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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강일기

category 리뷰/책 2022. 12. 12. 11:23
빼앗긴 땅, 빼앗긴 나라의 얼어붙은 한겨울 밤은 의주행 열차 앞에 서 있는 젊은 아낙네의 달아오른 열기로 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망이질하는 여인의 가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차는 어쩌면 저토록 한마디의 말도 없이 엎드려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참혹과 고난이 기다리는 땅으로 간다는 묵시의 경고일까? 아니면 빨리 갈 것을 서두르는 재촉의 몸짓일까? 어쩌면 내 결심을 시험해 보는 마지막 순간의 엄숙한 고요일지도 모른다(P17).
 
한 여인이 1920년 1월 도착할 사람은 알지 못한 채 열차에 몸을 싣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길이었다. 사라진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아 자국의 다른 곳도 아니고 타국땅이었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1919년 여름, 그는 시집온 지 8년 만에 어렵게 얻은 첫 딸을 낳자마자 잃고 만다. 그리고 10월 어느 날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나간 뒤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 시어머니가 넌지시 던진 신문에는 사라진 두 사람의 소식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대동단 사건으로 큰오라버니가 체포된 후 시댁 주위에는 왜경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 속 욕구도 함께 생겼다고 한다. 시어머니께 친정엘 다녀온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시댁을 나섰다. 친정 아버지를 만나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하고 받은 거금 8백원을 들고 상해로 향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친척인 정필화가 동행을 하였다.
 
무사히 상해에 도착하고 임정의 상황을 보니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형편이 넉넉치 못했고 활동 자금이 많이 부족했다. 그는 신규식을 찾아간다. 신규식은 김가진과도 가까운 사이여서 그의 집안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이었다.
"엉뚱한 소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친정에 가서 돈을 좀 얻어와 볼까 하는데요."
임정의 어려운 살림을 내부인이라면 모르지 않을 터이지만 신규식은 그의 신변을 걱정했다. 시댁도 왜경에 감시를 받는 판국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녀의 이 결단이 너무나 놀랍다. 가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자금 수급이 쉽지는 않을텐데, 왜놈에게 잡힐지도 모르는데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저지르는 그의 결단 말이다. 나는 간이 작아서 절대 못할 일이다. 어쨌든 처음에는 이렇게 그의 사적인 용기에서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임정의 공식적인 밀령으로 1931년까지 자금 조달 업무를 하게 된다.
 
그가 자금 조달 업무를 하며 초반에 도움을 준 비밀 연락소의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신의주 시내의 세창양복점 주인 이세창씨다. 이세창의 도움으로 그는 신의주에서 서울까지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
이세창은 소박하고 착한 성품을 지녔지만 애국심과 정의감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몸조심하라요. 자기만 생각할 거이 아니라 남도 생각을 해야 되는 일이야요. 기래야 또 들어올 수 있으니까니. 명심하라요. 내레 솔직하게 한마디 하갔는데, 젊은 아주머니레, 더구나 귀골로 곱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시다. 독립운동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레 하나같이 다 이런 험악한 일을 하는 건 아니디요? 기렇디요? 나같은 놈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이세창은 그의 결단력과 기개에 적지 않이 놀랐던 모양이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말을 건네는 이세창이 있어서 그도 용기를 더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금 조달 업무로 국내에 갔다가 체포가 되었는데(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종로서에서 풀려난 후 그는 상해에서 시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1922년 7월 4일이었다. 상해에서는 김가진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고, 국내에 있던 그는 시댁의 살림으로는 손님을 받을 수가 없어 친정에서 받은 돈으로 전셋집을 얻어 그곳에서 문상객을 받는다. 조의금으로 받은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만 여겼다) 중 일부는 시집 식구들을 위해 자리잡게 한 후 상해로 간다. 상해로 가보니 장례식 비용이 모두 외상이라 결국 가져온 돈으로 충당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부는 자신들의 거취를 재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친정에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겠다는 승낙을 받은지 얼마 안되서 하필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계획도 수포가 되고 만다(만약 이 때 부부가 떠났다면 임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부부는 자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25년 어느 날 그는 배가 아파왔고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서 자궁수술을 받고 아들 후동이를 낳는다. 아이를 6년 만에 다시 갖게 된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임정 식구들도 김가진의 손자가 태어났다고 축하 인사를 건네며 많이 귀여워해주었다고 한다.
 
1931년 여름 그는 여섯 번째로 고국 땅을 밟았다. 시댁과 친정으로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오라는 재촉 편지를 받아서였다. 이 때는 친정의 가세도 기울고 인심도 냉랭하던 때였다. 시댁에서 가까운 인사동을 지나다가 첫번째로 자금 조달 문제로 들어왔을 때 자신을 숨겨 주고 도와준 이의 집 골목을 지나가 반가운 마음에 찾아 들어갔다. 내가 아무개입니다 하고 안부를 묻자 그 사람은 "누구시더라?" 그는 무안했고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반성하게 했다. 비록 하잘것없고 하찮은 일이겠지만,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가? 도대체 독립이란 무엇이며, 또 투쟁이란 무엇인가? 독립의 주인은 누구이며, 투쟁의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성엄은 당시 상해에서 동지들과 테러 행위에 대한 모의를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서울에 가면 돈을 좀 마련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31년 초 다시 상해로 돌아가면서 나는 독립이 되기 전에는 다시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P100)
 
 
임정이 해외에 있었던 만큼 해외 사정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임정이 왜 그렇게 복잡하게 피난을 다녀야 했는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외교와 전쟁 등의 상황이 얽혀 있었는데 이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대표적으로 서안사변에 대한 설명이다.
 
1936년 12월 12일 초공(공비 토벌) 작전을 독찰하고자 서안에 온 장개석이 서북초비 부총사령 장학량과 제17로군 총사령 양호성의 부대에 의하여 감금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장개석은 장학량 휘하의 동북군을 공산당 토벌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목적으로 서안에 왔는데 부하에 의해 감금되고 말았던 것이다(P140).
서안사변 당시뿐만 아니라 내가 중국에 있는 동안 서안사변에 대하여 끝끝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으므로 사건의 경위에 대하여는 오히려 그 후 책을 보고서야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서안사변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큰 전환점이 됐으며, 따라서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서안사변이 있기 바로 전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추축세력 형성과 더불어 일본과 독일의 방공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중국은 역시 나찌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국 국민혁명군(중앙군)에는 독일 고문관들이 고용되었으며, 중앙군의 편제와 장비를 독일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을 중간에 두고 중국에서는 이른바 중일 방공협정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국민정부 내에는 왕조명과 하응흠 등 철저하게 반공 친일의 노선을 걷는 이들이 있어 그러한 반민족적인 노선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안사변은 이러한 음모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었고, 장개석은 서안에서의 언약도 있거니와 더 이상 중국인의 염원에 등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안사변이 있은 후 겉으로나마 중국은 비로소 일본과 맞서 싸우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P142~143).
 
사실 나도 중일전쟁 이전에 이런 큰 사건이 발생했는지 몰랐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반공을 기치로 항일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군 내부에 부패 문제도 많아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국내 사정도 복잡했으나 해외에 있던 임정으로서 이렇게 중국과 일본, 주변국들의 정세에 대한 역사와 임정의 움직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임정이 상해->가흥->진강->남경->장사->광주->(불산->삼수->오주->계평->유주->의산->독산->귀양->준의->기강)->토교-중경 이렇게 복잡한 루트로 이동을 하게 된 데는 일본의 중국 공격과 중국의 내전 등 외부적인 요인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임정이 세웠던 계획들은 틀어지고 귀국조차 공식적인 이름으로 허락되지 못한 채 지도자 급들은 개인적으로 귀국절차를 밟았다. 정정화는 1946년 1월에야 귀국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옛적에 동정호의 이름들 들었더니
오늘 내가 악양루에 오르다.
오와 초의 땅은 동과 남으로 갈렸고
하늘과 땅이 일야에 떴도다.
친한 벗에게서 일자 소식 없고
늙고 병든 이 몸에겐 외로운 배 한 척뿐
관산 북녘엔 아직도 전쟁인데
난간에 기대니 흐르는 눈물.
 
악양루는 두보의 오언율시로 눈물을 적신 곳이었다. (...)
사람에게 칼과 피의 전쟁을 생각케 하고, 소식 끊긴 친한 벗을 기억시켜 주며, 자신의 젊음을 다 잃어버린 외로운 이에게 배 한척이나마 의지할 곳을 베풀어 주는 관용을 아끼지 않고, 혹시라도 잊었을까 하늘과 땅 사이에 떠다니는 만물의 무상함을 일러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악양루일까, 동정호의 물일까?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찾고 싶었던 것을 찾았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몸과 함께 묻힌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나라도 조국에 가서 보고를 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 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P254~255).
 
 
책에는 그와 연이 있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들어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대외적 이미지 말고도 그들이 편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태도나 모습 등을 엿볼 수가 있다.
 
이시영 선생이 내게 구두를 한 켤레 사주시며 "나갈 때만 신고 다녀." 내 공부를 많이 도와주시고 아껴주시던 분인데, 내가 늘 그 헝겊신만 신고 다니는 게 안쓰러웠는지,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P88).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왜놈 잡는 일에는 그렇게 무섭고 철저한 분이지만, 동고동락하는 이들에게는 당신 자신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겉으로 나타내는 법 없이 항상 다정하고 자상하며 격의없는 분이 백범이었다(P96).
 
한번은 그분의 생신 때 내가 미당과 함께 비단 솜옷을 사다드린 적이 있다.
"난 평생 비단을 몸에 걸쳐 본 일이 없네. 어울리지를 않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나마 밥술이라도 넘기고 앉았는 건 온전히 윤의사의 피값이야. 피 팔아서 옷 해입게 생겼나? 당장 물려 와.(P120)"
홍구공원의 의거가 있은 직후였던 때 백범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건네셨다. 많은 교육을 받은 어느 지식인 못지 않게 대범하고 경우가 밝은 분이었다.
 
석오장은 영욕과 회한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도 깨끗하고 꼿꼿한 자태를 전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 석오장은 나 한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임정의 큰 인물이었다. 지도자다운 지도자였다. 깔끔한 용모답게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간에 너저분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무슨 일을 처리하든지 공정했다. 주의나 주장이 확고하면서도 언제나 말수가 적고 청렴했던 탓에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되어 있던 이들도 선생을 존경하고 흠모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동갑나기인 성재와는 늘 행동을 똑같이 했고, 일곱살 아래인 백범이 선생님 대우를 깍듯이 했던 분이 석오장이었다. 임정의 무슨 큰일이 있을 때면 백범이 꼭 선생을 찾아와 상의를 했고, 그럴 때면 "백범, 백범"하면서 백범과 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리를 맞대곤 했었다(P178).
 
백연 김두봉이 중앙집행위원장이 된 후 팔로군 구역 내의 한인들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었다. 백연은 비록 민족혁명당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철저한 보수파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주로 공산주의자들의 집단인 독립동맹의 위원장이 되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하나의 사건이었다(P211). -> 이 부분은 꽤나 놀란 부분이다. 김두봉이 보수파로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공산당 계의 거물로만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전혀 보수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부분은 더 조사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집은 우남과 개인적으로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1904년에 출옥하여 도미할 때 시아버님이 그의 뒤를 많이 돌봐주었다. 심지어 집 내실에까지 데리고 와 도미 자금에 쓰라고 상당한 액수의 사재를 내준 적도 있다. (...) 우남과의 그러한 관계는 귀국 후 정치적인 견해의 대립으로 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백운장의 연고권 문제를 기화로 해서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백운장은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사저 중의 하나로 시아버님 때 지어진 시댁 소유의 사택이었다. (...) 시아버님은 여러 차례 백운장 건축을 사양했으나 결국 황실의 권고에 따라 백운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망국 후 얼토당토 않는 일에 휘말려 백운장의 소유권이 일본인의 소유에 넘어가게 되어 소유권 문제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아버님이 재판 도중 상해로 망명을 함으로써 백운장은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인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백운장은 적산이 되었고, 우리는 당연히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었으므로 성엄은 우선 백운장을 임대하려고 수속을 밟았다. 백운장 임대를 위한 제출 서류에는 보증인이 필요했다. 성엄은 백운장의 내력을 잘 아는 세 사람 위창과 우남, 우사를 내세웠다.
우남을 찾아가자 우남은 도장을 찍어주면서 토를 달았다. "독립이 되면 찾게 될 터인데, 서두를 필요가 잇을까?" 마침내 백운장은 미 군정 당국의 임대 허가가 나와 성엄이 조흥은행에 임대료를 물고 임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 군정 당국은 1948년 정부 수립이 될 때까지 결국 백운장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정부 수립이 된 후 우남은 여러 해에 걸쳐 모든 귀속재산을 소유자에게 다 불하해 주면서도 백운장만은 유서있는 건물이라는 이유로 불하하지는 않았다. 우남이 물러난 후 5.16 직후 백운장은 결국 미국인이 운영하는 교회측으로 그 소유권이 넘어가고 말았다. 새 정권이 재빨리 미국인 교회에다 불하처분시켜 버린 것이다(P276~279). -> 이승만은 참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왜 이리 지저분하고 치졸한게 많은지.
 
백범의 죽음은 정정화에게도 충격이었고, 더 이상은 민족의 분열을 막을 지도자가 없다는 허망함을 느꼈던 것 같다. 또 시아버지의 유해를 결국 해외에서 모셔오지 못한 것은 그에게 큰 응어리로 남았다.
중국의 국공내전, 항일투쟁을 견뎌낸 그이지만 6.25는 또 다른 재난이자 슬픔이었다. 남편인 김의한은 어느 날 누군가 데려간 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는 의지할 상대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꾸려 나가야했다. 그 와중에 조소앙의 비서인 김홍곤을 만나 남편의 소식을 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체포가 되고 만다. 한달 동안의 감옥 생활,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요시찰인으로 찍혀 항시 감시대상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자식이 언론인이 되어 밥 벌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지 않았을까. 정정화의 아들 김자동도 어머니의 성품을 닮은 탓인지 강직했던 모양이다. 출세의 기회가 몇 차례가 있었는데도 이를 모두 거부하고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드라마이고 이야기다. 그 시대를 오롯이 겪어낸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임정의 이야기이자 독립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외부에서 본 임정이 아니라 내부인의 시선에서, 임정의 살림꾼으로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그의 글은 울림을 준다. 비어있는 역사를 채우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항일투쟁 기록은 고초와 간난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한 편의 대서사시다. 어느 한때도 어머니는 주인공 자리를 남에게 맡겨 보지 않았과, 자신의 삶의 신조를 어기지 않으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에서 끝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변절, 매국, 부일에서부터 방관, 냉소, 무관심, 안일무사, 이기주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몹쓸 것들이 종횡무진으로 활개치던 그토록 어려웠던 시기에 어머니는 흔들림 하나없이 항상 꼿꼿했다(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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