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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870~1945

category 리뷰/책 2022. 12. 9. 13:23
187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좀 더 익숙한 장소가 되는 동시에 더 낯선 장소가 되었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 속도가 빨라졌고, 타지를 여행하고 묘사하는 매력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뚜렷했으나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P13). 세계는 이 시기 더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였으며 한편으로는 이해와 소통이,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과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187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좀 더 익숙한 장소가 되는 동시에 더 낯선 장소가 되었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 속도가 빨라졌고, 타지를 여행하고 묘사하는 매력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뚜렷했으나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P13). 세계는 이 시기 더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였으며 한편으로는 이해와 소통이,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과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베크 세계사의 근대 국가는 두 버전으로 나뉜다. 먼저 리바이어던이 내놓은 국가의 개념을 초기 국가로 보고 1.0 버전으로 부른다. 그리고 1850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2.0 버전으로 부르겠다라고 논한다. 명시적으로는 1945년까지로 나와 있으나 1970년대까지를 범위로 설정했다. 이는 1945년 2차 대전의 종식으로 탈제국, 탈식민이 종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해방은 한참을 이어서까지 진행되었다. 미소의 대결로 냉전이 격화되면서 체제와의 대결도 시작되었다. 체제의 경쟁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자유주의, 사회주의의 흐름이 진행된 바 있다.
 
베크 세계사의 근대 국가는 두 버전으로 나뉜다. 먼저 리바이어던이 내놓은 국가의 개념을 초기 국가로 보고 1.0 버전으로 부른다. 그리고 1850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2.0 버전으로 부르겠다라고 논한다. 명시적으로는 1945년까지로 나와 있으나 1970년대까지를 범위로 설정했다. 이는 1945년 2차 대전의 종식으로 탈제국, 탈식민이 종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해방은 한참을 이어서까지 진행되었다. 미소의 대결로 냉전이 격화되면서 체제와의 대결도 시작되었다. 체제의 경쟁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자유주의, 사회주의의 흐름이 진행된 바 있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국가는 여러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국가는 영토의 통합성을 위해 싸우고 중간계급들을 징집했으며, 영토를 공고히 하고 '유목민'이나 부족민을 복속시켰고, 전대미문의 전쟁으로 서로 대결했다. 국가는 폭력을 통한 변혁의 전망에 도취된 당원들이 가장 잔인한 지도자들을 실질적으로 숭배한 혁명 정당들을 실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는 정상 상태를 추구했고 지속적으로 강력해지는 경제의 힘들과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려 했다. 물론 국가는 사상과 이해관계, 심지어 본능까지도 주입된 개인들과 공동체들, 정당들의 창조물로서 앞선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국가는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던 정책들과 하위 기관을 통해 작동했다(P322).
 
1870년에서 1945년을 관통하는 특성들이 있다. 시간과 공간의 극적인 축소, 다양한 종류의 세계 네트워크로 빨라진 사람과 상품, 사상의 이동, 근대 국가와 제국주의 체제에서 서구가 장악한 헤게모니,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의 교차와 상호적 구성, 세계적 도시의 등장,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기술의 확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종족 차별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이에 대한 도전), 새로운 권위주의 형태들과 더 효율적인 살인 수단의 등장으로 거의 모든 대륙에 가져다준 폭력들이다.
 
퍼시 비시 셸리는 '세계는 과거에 싫증을 낸다'고 했다. 이 시기를 살펴 보기 전에 이전의 1760년부터 1850년의 시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를 주도한 유럽에는 정치가 새로운 원리가 되고 권리 개념이 등장하였으며 과학의 등장에 따른 종교적 권위 영역이 재규정되었다. 또 행정의 합리화, 지리적인 재구성, 국제법이 정리되었다. 1850년 이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럽의 정치적 폭력에 따른 혼란이 발생하고 이후 전쟁과 혁명, 대량 실업의 발생, 힘을 갖춘 제국들이 등장하였다.
 
1850년에서 1880년의 발전은 세계 전역의 국가 조직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국가는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용을 촉진하며 이민의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1870년대 유럽 전역의 도시에 인간 동물원이 세워졌다. 동물원은 문명의 위계 질서를 전제로 하였고 관람객은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증명했다. 전시 대상인 원주민 등은 마치 배우처럼 서비스직에 종사했다.
 
20세기 세계 각국은 국내의 분쟁과 혁명, 경기 침체, 전쟁에 대처하는데 주력했다. 이런 예외적 상황과 비상 사태가 발생할 때 법 질서가 시민권을 보호하는 조항을 갖고 있음에도 각국은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고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예외적 상황에서 국가는 탄생했다. 교육과 기간 시설에 투자하고 경제를 규제하는 오늘날의 복지 국가 방식의 국가, 전쟁과 혁명 등의 사회적 소요에 대응하고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이득을 얻거나 개발과 주권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쟁 국가의 모습으로 분화되어 나타났다.
 
제국 체제가 등장하면서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도 벌어졌다. 토지, 자원을 둘러싼 쟁탈과 식민지 전쟁, 제국주의적 평정을 위한 종군이 이어졌다. 제국은 상이한 물질 조건과 사회적 기회, 문화 역량을 결정할 때 핵심 역할을 수행한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제국의 정치인들, 식민지 행정관들이 재규정한 제국의 범위는 국경이 되었다.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와 터키 공화국, 청 제국, 러시아 제국, 서유럽 국가의 국경이 정해졌다.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세력이 약화되고 미국과 일본의 세력이 발흥하였다. 제국 체제는 영토와 주권, 전략적 이점, 채굴 가능한 자원, 문화적 영향력 획득을 위한 경쟁으로 이루어졌다. 지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식민지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는 제국의 역사들을 경계한다. 식민지가 어떻게 그리고 왜 제국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질서의 공동 저자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과정이 토착민 사회에서 전 세계적 저항과 식민지 해방에 함의를 갖는 실천과 고유의 주권 관념을 발전시킨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 이 시기 제국적 세계에 대한 자존적인 설명 가운데 식민지 '현지'나 제국 본국의 제국 비판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작업이 1945년 이전 제국들이 세워 유지하려 한 이전의 세계적 질서를 만들고 종국에는 해체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P346).
 
속박된 남녀들의 저항, 인권을 둘러싼 계몽주의적 논의, 자유민 노동과 노예노동 간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논의는 이렇듯 권력관계의 틀 속에서 인간의 이동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유럽의 정주형 대토지 소유자와 그들이 이주한 사촌인 (나중에는 미국 출신 소유주들까지 가세한)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들은 될 수 있으면 값싸고 유순한 노동자를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문제는 아프리카인의 노예화가 불가능해지면 유럽의 하층민 혹은 필요할 경우 아시아의 식민지화된 지역 사람들을 억압해 아열대 지방이나 열대 지방으로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국가 주도로 계약 노동자들을 동원하거나 유럽의 경우 정부가 이주민의 뱃삯을 지원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민간 분야에서 납세자에게 비용이 전가되게 하는 내용의 로비가 시작되었다. 계급적 이해관계와 계급투쟁, 인종화와 저항, '인간의 조건'에 대한 사고방식의 재정립은 이렇듯 이주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P500).
 
국가는 19세기 말 이후 여권이 도입되고 이주민의 출입국 장치가 마련되어 이주 제도 수립에 따른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중요한 분석적 도구가 되었다. 이주는 이주민의 결정에 따른 자유 이동과 강제 이동, 지방 이동과 대륙 이동, 계절 이동(주기적 또는 일시적)과 영구 이동, 이주 목적지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 성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모든 것을 국가적으로 설명하려 한 시도는 다민족 제국 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식민지 지역은 식민주의자, 피식민지인 또는 백인과 유색인의 이분법으로 분류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난민과 전쟁 포로, 강제 노동자, 전쟁 전 제국의 식민주의자 본국 송환이 필요한 병사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고국이 소멸했거나 전후 신정부가 들어서서 귀국이 어려운 경우, 생명이 위험하여 재정주가 필요한 병사들에 따른 이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망가진 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노동자들의 이주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탈식민지화로 야기된 다양한 형태의 이주도 있었다.
 
인간의 역사와 사람들이 살았던 환경이 이 첫 번째 근대 세계화 시대의 결과를 결정했다. 역사적으로 교류를 제한했던 지역과 사람들이 상품 사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해방된 세계적 힘들은 지금도 여전히 메아리친다. 윌리엄 포크너는 이렇게 경고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으며,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P919)"
 
세계 무역은 1914년까지 팽창했고 1920년대는 정체했고 1930년대 대공황 여파로 급감하였다. 이로 인하여 각국은 자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산업주의와 농업주의, 공익과 사익 사이의 논쟁을 벌이게 된다. 상품의 흐름과 가격 통제 능력을 갖춘 시장의 힘은 시간과 장소에 따른 상품 사슬에 영향을 미쳤다. 상품은 상품화 과정의 결과, 생산자와 가공업자, 운송업자, 수출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통합되었다고 해서 상품의 이용 방식이 한결 같지는 않았다. 나라별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했고 농촌과 도시 간의 격차도 컸기 때문이다. 경제 제도와 기간 시설이 출현함으로써 대규모 무역 투자와 국제적 합의가 가능해지면서 급격한 팽창이 일어날 수 있었다.
 
19세기 말 교통, 통신, 금융, 통상에 혁명이 일어나 충성심과 감수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공간적 거리에도 한계가 생기다 못해 심지어 거리 자체가 소멸된 현상은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동안 전 세계, 갈수록 몸집이 불어난 국제적이고 초국적인 네트워크들의 탄생을 불러왔다. 지금은 주로 세계화로 불리는 현상으로 향해 가던 그 국면에 크리스토퍼 앨런 베일리는 적절하게도 ‘대가속‘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베일리는 자신보다 앞서간 다수의 역사가가 이 시대와 당대의 ‘근대‘를 연 것이 유럽인이고, 싫든 좋든 근대의 특징을 제국, 교역, 문화적 패권의 새로운 구조들을 통해 다른 지역들로 전해 준 것 역시 유럽인이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지금의 세계를 "지구전역에 도달하는 중첩된 네트워크들의 복합체인 동시에 네트워크들 속에 게재된 거대한 힘의 차별성도 인지한 복합체로도 인식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인들이 "기존의 범세계적 네트워크"를 종종 "자신들의 뜻에 굴복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힘, 결속력, 활용성, 광범위에 걸친 실효성 있는 네트워크와 열망을 갖게 해 준 것"은 "서구의 지배와 힘에 내포된 기생적, ‘네트워크화된‘ 특성이었다."고 썼다(P923~924).
 
초국적 연대는 거의 예외 없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사이에 긴장을 조성한다는 것, 그리고 초국가적·국가적·제국적·지방적 영역이 별개의 장소가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동시에 모여 사는 장소들이라는 관점이다. 범세계적 흐름과 개인도 그안에서 지방화된 변이를 생성해 내고, 지방화된 변이는 역으로 범세계적 흐름과 개인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전송선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흐르다가 서로 간에 마찰을 일으키면서 상호 구성적 존재임을 드러내듯이 말이다(P1003).
서구 근대는 근대성과 진보, 자유의 확대가 이성과 과학의 목적론적 승리라 보았다. 하지만 이성과 인종학의 결합은 자유주의 대신 비합리적인 극단의 시대이자 전체주의를 가져왔다. 선형적 목적론을 중심으로 편제된 그 시대의 오래된 역사는 진보라 불리는 진화적 미래를 지향하는 과학과 이성의 합리적 문화를 가진 서구 제국의 범세계적 확산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그 관점을 가진 서사 구조도 근래의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의 도전에 직면했다(P1091).
 
초국적 공간 내에서 소비자 주도의 문화 특성들이 혼합된 방식은 여러 가지로 묘사될 수 있다. 하나의 문화를 잃는 동시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동화assimilation로도 표현될 수 있고, 타 문화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배합 문화를 만들어 내는 혼성화hybridity로도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보다는 언어학에서 쓰는 부호 전환code-switching이라는 용어를 쓰려고 한다. 그것이 초국적 대량 소비자 이미지들로 구성된 문화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국어 능통자들이 특정 시기에 생소한 언어의 낱말들을 들먹이며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전략을 쓰듯, 소비자들 또한 어느 주어진 시기에 상이한 문화적·정치적의미들을 뭉뚱그려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는 부호 전환의 전략을 쓸 수도있는 것이다(P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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