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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코펜하겐 삼부작 1 - 어린시절

category 리뷰/책 2022. 10. 19. 09:46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나쁜 냄새처럼 몸에 달라붙는다. 당신은 다른 아이들에게서 그것을 감지한다. 각각의 유년기는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냄새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서 남들보다 나쁜 냄새가 날까 봐 두려워한다. (...) 그렇게, 은밀하게, 당신은 어린 시절을 내면에 품고 사는 어른들도 관찰한다. - P47
 
소설을 읽으면서 한 챕터를 통째로 스크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인용한 이 단락의 문장 뿐 아니라 사실은 이 챕터 전체가 감동을 주었다. 코펜하겐 삼부작 1편 《어린 시절》 은 누구나 가지고 있던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다.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내게도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토베 디틀레우센은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가다. 코펜하겐 삼부작은 자전 소설이라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는 책을 좋아했고 학업을 더 이어가고 싶었으나 고등 교육은 받을 수 없었다. 가난한 지역에서 자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소설의 이야기가 되었다.
 
덴마크 작가도 처음이었으나 덴마크 사회에 대한 이해도 부족함을 느꼈다. 당시 덴마크 사회주의에 대한 배경, 노동자 사회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나오는 모든 단체와 용어들이 처음이었다. 이로써 새로운 작가와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마지막 봄은 춥고 바람이 세게 분다. 먼지 같은 맛이 나고, 고통스러운 출발과 변화의 냄새가 난다. (...) 이 시기의 모든 순간이 내게 깊고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 P140
 
어린 시절은 잊어버리고 싶다고 해서 잊어버릴 수 없다. 토베는 어린 시절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 양가 감정을 나는 너무나 이해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철이 빨리 들어버린 나는 부모님이 있는 집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오니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었다. 이런 상황과 감정은 대부분 겪어본 일일 것 같다. 다만 토베는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목마름을 느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는 없었던 것 같다. 홀로 헤쳐나가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일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토베의 어린 시절을 통해 친구들과도 겉돌았던 나, 부모님을 원망했던 나, 외로웠던 나를 떠올렸다.
 
시가 없었다면, 시마저 없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그가 쓴 시를 가족은 비웃었고 편집자는 14살이 쓰기엔 성숙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자신이 쓴 시가 사랑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 생각한 마지막 희망이었으니 좌절을 느낄만하다.
 
작은 나비가 날아갔네
높이, 푸른빛 도는 하늘로
모든 상식과 도덕
또 의무를 거슬러

봄날의 매혹에 취해

떨리는 두 날개를 펼친
그것은 아름다운 세상까지 이어진
황금빛 햇살에게서 태어났지

그리고 막 활짝 벌어진
연분홍 사과꽃잎 속으로,
작은 나비는 날아가
사랑스런 신부를 찾아냈지

이제 사과꽃잎이 닫히고
거친 비행도 끝이 났네
아, 고마워, 작은 친구들아, 너희들이 내게
기쁘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
 
도서관 희망도서로 읽었으나 이 책은 구입해야겠다 하는 결심이 바로 섰다. 문장력과 묘사도 일품이고 목차 편집도 멋지다.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 궁금증을 일게 하는 편집이라 생각했다.
 
다음 2권은 청춘이다. 토베의 청춘은 더 불안정하리라 예상해본다. 누구나의 청춘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