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가 구석기시대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
그리고 신과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에드워드 오즈본 윌슨, 《하버드 매거진》(2009) - P18
독자로서 역사가가 작업한 결과물을 자주 만난다. 역사가의 작업물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기록물에 근거하고 비교적 우리와 가까운 시기를 다루므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고고학자는 때론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독자로서는 관심이 있지 않다면 멀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고고학자이다. 그래서 딱딱하냐고? 만약 그저 과거의 유적이나 유물을 소개만 한 것이었다면 그저 뻔하게 느껴졌거나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저자는 현명하게도 과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지금과 미래를 들여다보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독자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방식이다.
영국 작가 L.P. 하틀리는 그의 소설 『중재Go-Between에서‘ 과거는 곧 다른 나라‘라고 썼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의 세계는 고대의 세계와 다른 듯 닮아 있다. 때로 그들의 행위와 관습이 괴이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것이다.
나는 인류의 이야기를 가장 첫 장에서부터 시작해보고 싶다는 (허망한) 희망으로 역사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이룰 수 없는꿈이다. 역사에는 시작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야기의 어렴풋한 첫 장에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그래서 고고학자가 되었다. - P22
사랑하는 사람의 신발 끈을 고쳐매 주거나, 떨어진 물건을줍기 위해 무릎을 꿇는 사소한 행동들을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할까?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뒤 당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미래의 누군가가 당신이 잠시 머물렀던 자리를 발견하는 것을, 그 흔적이 당신의 존재를 증언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내가 고고학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는 책이나 편지, 일기, 문서, 묘비명 등의 문자로 구성된다. 문자로 적힌 이야기들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글쓴이의 관점에 따라 쉽게 왜곡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 고고학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 말이 없는 사물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P167~168
우주와 지구. 그리고 그 속의 나를 생각하면 그제서야 내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 사소한 것 하나에 목숨을 거는 우리들을 우주, 지주가 바라볼 때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싶을 때 있지 않나. 존재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도 놀라운데 내가 지금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이 때때로 너무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거스를 수 없는 힘에 따라 물질이 모이고 한데 뭉쳐져 별과 은하가 탄생했다. 별의 내부에서는 나머지 원소들이 생성되었다. 별이 소멸할 때 나온 원소들은 서로 뭉쳐져 그 밖의 모든 것이 되었고, 그중에는 우리도 있었다.
빅뱅 이론은 새로운 전설이자, 믿음 없는 이들을 위한 현대의 창세신화다. 불가해하기도 하고 신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식이다.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 주제곡 가사에 빅뱅의 역사가 담겨 있을 정도니 말이다. - P59
원circle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한 가장 오래된 형태다. LHC는 그중 가장 새롭고 큰 원이다. LHC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우주의 95퍼센트 이상은 암흑물질, 즉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모든 곳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약 2600년 전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도덕경』에 이렇게 썼다.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도 없고 모양이 없어 볼 수도 없으나,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서서 변치 않는다. 그것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고 움직임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 이것이 암흑물질에 대한묘사가 아니면 무엇일까? - P70
우리 조상은 나무 위로 올라간 뒤 손가락이 발달되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엄지 손가락이 발달된 것이 무슨 대수라고 생각했는데 손가락을 다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를 떠올린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 것인가. 직립보행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이 발달했다면 우리는 발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등의 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주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나무로 올라간 포유류가 바로 우리의 조상이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 조그만 동물이 시간이 흘러 영장류로 진화했고 인류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나무에 더 잘 매달리고, 나뭇가지를 정확하고 빠르게 움켜쥐는 재주가 있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고, 더 많이 살아남아 자손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기다란 앞 발가락은 곧 손가락이되었다. 인류 발달 역사에서 엄지손가락의 진화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맞닿는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를 집는 힘이 늘고 손재주도 향상되었기때문이다. - P264
산업혁명 전까지 지구는 지구인들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우리는 지구라는 땅에 잠시 왔다 가는 것 뿐인데도 주인 행세를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마구잡이로 살육한다.
가만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땅에 쳐들어가서 자신들이 문명의 기준이라 믿고 야만인을 처단한다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그렇게 수많은 부족과 원주민들의 삶이 희생되었다.
우리가 속한 종,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호모 에렉투스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문서도 없는 세입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빌린 방 아래에 땅을 파고 건물의 뼈대를 세웠다. 건물 아래에는 기반암이 있고, 그 기반암 안에는 화석이 되어버린 지난 세입자의 해골이 있다. 우리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존재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우리와 우리의 잡동사니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벽에는 다른 이들의 액자가 걸릴 것이다. 이 사실에서 깊은 위안을 얻는다. 이 또한 모두 지나갈 것이다. - P121
도시와 실내에서 주로생활하는 현대인은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하려는 심보로 자연의 자원을 이용하려 든다. 현대인은 자연과 동물의 세계에서 더 멀어지는 것을 진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다가오는 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땅과 흙에 긴밀히 연결된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 P135
티위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완전한 사회를 유지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의 시스템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소위 세계의 ‘현대적 영리함’이 그 모든 것들을 방해했고 무력하게 했다.
티위인들은 어쩌면 탄광의 카나리아일지 모른다. 한때 그들은 현실과 상상 속에 존재하는 우주 만물을 꿰뚫어 보았고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들의 믿음 속에는 유령과 작은 정령들과 하늘을 나는 악마가 있었다. 우리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그 존재들은 삶에 의미를 부여했고 수만 년 동안 사람들이 삶에서 의미를 찾고 온전히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늘날 티위인에게는 맥주와 약물, 자살이 남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믿고 의지했던 정령들을 다 없애고 진통제와 항우울제, 베타차단제, 스타틴, 수면제에 기대 덜컹거리고 있다. 티위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도 과학적 사실그 이상이 필요하다. - P315~316
도시 생활을 하는 우리는 더 이상 멀어질 수 없을 정도로 사냥의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 농장의 동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키워져 도살되고, 고기는 생물로서의 실체와 완전히 분리된 채핏기 없이 밀봉 포장되어 나온다. 고기가 마트 매대에 진열되고식탁에 올려지기까지의 그 과정을 우리는 더는 알 필요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생명에 더 냉담해지고, 경외심을 잃어버리고 있다. - P369
죽음과 상실이라는 키워드가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수록 인간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고통과 두려움, 불안 등의 키워드로 떠오른지 오래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죽음을 좀 더 의연하게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을 생각하기 보다는 현실을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인간이 우주 안에서의 자기 위치를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 이 세상에 다녀간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 땅에 얼마나 머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누구에게나 반드시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죽음이 정해져 있음에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설명해왔다. 탄생과 죽음, 그 사이의 삶에 대한 이 모든 심오한 개념들은 구름처럼 어렴풋이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언어로 구체화되어 이야기라는 옷을 입고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분명한 이야기들과 달리 현실은 결코 뚜렷한 형태와 질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이 그처럼 한없이 복잡 미묘한 현실을 인지하는 매커니즘을 이제야 어렴풋이 밝혀내고 있다고 고백한다. - P314~315
중석기시대에 북유럽이나 영국에 살던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삶을 어떤 식으로 상상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죽음을 끝이라고 여길 것인지, 아니면 수수께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후자를 택했던 것 같다. 우리 종은 2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인류의 생리나 지능이 근본적으로 변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다른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선택이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죽음, 그 가장 지독한 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이 우리에게 이르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 P325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곱씹어본다. 역사를 통해 과거를 만나고 과거의 사람을 만난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가도 예외들을 만날 때 이래서 역사는 재밌는 것이구나 느끼기도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 미래를 점쳐보기도 한다. 종국에는 그것들 넘어 내가 이 땅에 붙어 있음을 감사하게 느끼게도 한다.
벨록은 ‘아주 오래된 무엇‘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를 다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거나 막연한 진리를 구축하기 위해서가아니라, 역사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함이다. 몸이라는 외피를 입고 현재에 머무르는 우리는 과거를 회복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존재의 층위가 넓어지고 영혼은 충만해진다. 경외, 지식, 안도, 좋은 땅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은 역사라는 학문을 추구함으로써 생겨나거나 더 커진다." - P82~83
기억은 우리를 우리이게 한다. 불완전할지라도 말이다. 기억은 의식의 산물이다. - P148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의식을 하며 산다는 것이 아닐까. 의식을 한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미래를 좀 덜 어둡게 가져갈 수 있는 핵심 주제어이겠구나 싶다.
고고학자가 과거로 안내하는 여행을 통해 사람과 사건을 만나고 나, 우리를 발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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