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덮은 날, 공교롭게도 북한에서 동해상으로 일본을 넘어 미사일을 쏘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여전히 남북은 지리상으로 붙어 있음에도 먼 존재가 되어 있다. 마음으로는 오가고 싶다 해도 내 발로 휴전선 너머를 향해 갈 수 없다. 월북, 탈북 이런 단어는 이따금 듣지만 나와는 어느새 먼 단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는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 반공법, 사회안전법(보안관찰법) 등으로 구속되어, 수십 년간 징역을 살면서 잔혹한 고문과 협박 등으로 사상전향 공작에 맞서 투쟁한 분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실상이 드러났다. 1988년 12월 21일 양심수 대사면으로 시국 사범이 사면 석방될 때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관련자가 나오면서 알려졌다. 또, 1989년 5월 29일 사회안전법이 폐지되면서다. 사회안전법은 좌익수가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출소하면 '보호소'라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외부로 나온다 해도 거주와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이들은 대부분 고향과 가족이, 살았던 동네가 북쪽인데다 자유의사로 귀향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시대도 변하고 국제사회에도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들을 가두어두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1999년 12월 31일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던 이들 모두가 석방되었고 자연스레 송환 운동까지 이어졌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두 정상은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합의했고 1차 송환으로 63명이 북을 향해 갈 수 있었다. 다만 비전향장기수 102명 가운데 일부는 송환에서 제외되었는데 북쪽에 가족의 생사 여부와 거주지를 알 수 없는 경우나 교도소에서 강제전향한 경우였다. 말은 강제전향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갖은 고문과 협박으로 사상 전향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회유에, 협박에, 고문을 받다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전향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강제전향이 될 수 있는가?
총 11분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구순이 넘은 분들이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분은 두 분인데 지리산 빨치산 여전사인 박순자 선생님과 강담 선생님이다.
지리산 빨치산 활동은 태백산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는데 생생한 묘사 덕분인지 지리산 안에서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빨치산 토벌을 위해 백선엽을 비롯한 대한민국 온갖 부대들이 총출동했으니 이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마치 제주 4.3의 토벌처럼, 그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일제 의병의 대토벌처럼 잔혹하게 느껴졌다.
박순자, 박수분, 설봉이라는 세 개의 이름을 지닌 박순자. 그에게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첫 번째는 뇌성마비 딸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고 눈을 감는 것이다. 서른여덟 살에 품은 첫딸인데 노산인 데다 산고가 심해 출산 과정에서 다소 뇌에 손상이 있었다. 아이가 한참 예민한 다섯 살 때 경찰의 가택침입과 계속된 불법 수색에 경기를 앓았고 심한 불안에 시달렸다. 꾸준히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태였건만 남편의 재판과 면회를 챙기느라 딸아이를 제대로 돌 볼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북쪽이 고향이 아니고 연고도 없지만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동지들과 손을 잡고 북녘 길에 올라 남북이 평화롭게 걸어가는 길을 열겠다는 뜻이다. - P145~146
강담 선생님은 북쪽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상태였으나 출소 후 57세의 나이에 교회 권사의 주선으로 새 장가를 들었다. 아내 분은 초혼에 실패하고 혼자 지내고 있었는데 그렇다 해도 북에서 내려온 전과자를 받아준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친지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으나 선생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었나보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준 남쪽의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뇌경색 을 앓은 후 폐암까지 생긴 후로 아내 분께서 혼자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결국 요양원에 가게 된다.
이 사연에서 너무 슬퍼서 눈물이 많이 났다. 남은 이도, 떠나갈 이도, 북쪽에 있는 가족도 모두 다 가련한 것이다.
"나는 괜찮으니 당신 북으로 가라, 고향 아니냐? 당신 맘 다 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는 거야. 60년간 기다렸을 북쪽 아내에게 '여보, 나 돌아왔어. 고생 많았지' 그 말 한마디만은 하고 싶다는데 그 모습이 짠했어요. 사실 난 속으로 서운했지. '당신 두고 내가 어딜 가냐' 그런 소리 듣고 싶었는데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더라구. 그때는 이 양반이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양반을 여기 두고 떠나는 셈이 되었네."
"여보, 나 이제 올라갈게. 당신은 이제 여기서 여생을 마쳐야 하고 나는 집에서 죽어야 해"
코로나로 모든 요양원에 면회금지 명령까지 내려진 상황이라 이날 올라가면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이별인 셈이다.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 P191~193
20, 30대에 감옥에 들어가 20년, 30년 이상을 지나고 나와보니(심지어 초반에 정해진 복역 기간에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복역 기간이 늘어난 경우도 많다) 어느덧 50, 60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사회에 나오니 먹고 살 길은 막막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없고 교도소에서 알게 된 사람이라고 믿었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도 모았던 돈을 날려먹고 길거리를 떠돌다 이제 더는 살 수 없다 생각한 분들도 있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라면 어떻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지... 그저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아픈 책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서 미처 몰랐을 테고 이분들의 삶을 알 기회가 있었을까.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 분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북이 대결 구도로 치닫고 북미 관계는 물론 대만을 두고 미중 관계도 좋지 않은 지금 긍정적인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책을 내려놓고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이분들의 한은 어떻게 풀어드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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