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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저주토끼

category 리뷰/책 2022. 8. 16. 13:49

총 10개의 단편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좀 모호했던 2~3개 정도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잘 그려낸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 속에서는 내가 멍청해서, 못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분을 참아야 하거나 허벅지 꼬집으며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는 감히 해보지 못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서 어떤 결말로(!) 대리만족시켜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기억에 남는 단편들을 짧게 정리해본다.

<저주토끼>에서는 좋게 이야기하면 정직하고 성실히 사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이야기만 어리숙하고 순진한 사람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약삭 빠르게 이 기회를 노려 잘 뺏어가는 이들이 승자가 된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친구는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다. 정부 인사와의 친분, 인맥, 접대, 필요에 따라서는 뇌물이나 뒷거래가 제품과 기술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친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해버린 술 시장을 넘보는 더 큰 회사가 있었다. 인맥과 연줄에 강하고 접대에 능한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액체가 ‘서민들이 선호하는‘, ‘정통의 그 맛‘이라 광고했다. 앞에서는 정당하게 언론매체에 광고했지만, - P13

<머리>를 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것들에 과한 것는 없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산물이 결국 나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이르게 한다. 결코 내 몸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 말이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 P57

<안녕, 내 사랑>를 보고는 인조 반려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되었으나 주변의 이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는 없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곁을 떠나기 때문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살아 있는 반려동물도 결국 언젠가는 주인 곁을 떠난다는 것.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죽고 난 이후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낀다고 들었다. 최소 10년 이상을 내 곁을 지키는 것이니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인조 반려동물이 실망감과 서운함을 드러낼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정교한 3D 프린터 등의 기술로 얼마든지 피부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내고 학습으로 인간의 사고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인조 반려견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시기에 구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첫사랑이 각별하듯 주인공의 '1호'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인간이 나이들듯 기계도 노후가 되고 금방 교체된다. 사랑의 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하듯 기계도 한 인간에게 머무는 시간이 3~5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묘하게 연결되었다.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버릴 수 없었다. 기종이 오래되어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단했고 나중에는 오류가 계속 나서 네트워크 접속 자체도 포기하고 차단해버렸다. 결국 1호는 ‘반려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 책상이나 냉장고보다도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게 1호는 언제나 1호였다. - P128

<즐거운 나의 집>은 읽고 너무 화가 났다. 내가 견딜 수 없는 조합들로만 가득한 구성이어서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구속되지 않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남편의 저 허울 좋은 말은 핑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결말이 그렇게 되었지만 과연 현실에서는 어떨까. 다른 형태의 비관적인 결말만 떠오를 뿐이었다. 집을 구할 때 최대한 알아보고 해도 사기를 당하는 마당에 저리 허술하게 들어간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돈으로 시달림을 많이 받아봐서인지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자 주의로 바뀌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관계는 하지 않는다. 사람 자체도 믿을 수가 없는데 돈과 얽히면 사람은 더욱 믿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단편을 읽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남편은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
을 추구했다. 그녀 또한 대학 시절에 학점과 스펙에 매달리고대기업이나 공무원 취업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최고로 치는 주위 사람들의 천편일률적인 압박을 지겹게 여기고경멸했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 자신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P250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더욱 그렇다. 집 밖의 문제를 피해 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P259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과 다른 물질과의 상호 관계, 환경 문제에 대해서 곱씹을 점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에 대하여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기 전 겁이 나서 읽기 주저스러웠다. 공포 장르와는 친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읽기 잘했다 싶다. 이 책은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공포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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