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만에 한국 통사를 읽게 되었다. 그 때 읽은 책들은 이제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변태섭의 <한국사통론>, 한영우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였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는 사두기만 하고 시도는 하지 못했다.
통사는 말 그대로 한국사 전체를 개괄식으로 훓어내려간 역사다. 어떤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그릇에 담을 내용과 서술 방식이 달라진다. <한국사신론>은 지배층의 변화에 따른 역사 서술 방식을 취했고 <한국사통론>은 사회 내부의 발전에 따른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 방식을 취했다. <다시 찾는 우리 역사>는 비교적 최근까지(박근혜 정부) 개정을 거듭하였는데 선비 정신을 중요시하는 것이 눈에 띈다.
<시민의 한국사>는 이 책들에 더해 한국통사의 고전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1권은 전근대편으로 조선 후기 개항 이전까지를 다루었다. 통사는 개론서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서술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점을 보완했다고 느껴졌다. 역사 교과서의 사건-연도 단순 나열이 아닌 사건 전후의 과정을 기술하여 맥락을 확인할 수 있게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근대는 사진이 없던 시기이므로 유물과 유적, 과거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 역사를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상당히 많은 유물과 유적 사진, 지도, 도표 등을 싣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균형 잡힌 서술 방식이 눈에 띈다. 지배층의 변화에 따른 정치사 위주의 서술은 교과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애써 찾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민중들의 기록은 확인하기 어려운에 이 책은 그런 빈 곳들이 채워져 있다. 특히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의 경우 따로 정리를 하여 독자들이 확인하고 향후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치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 문화, 사회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서술이어서 좋았다.
우리에게는 삼국 시대 이전 낙랑군의 역사가 뚜렷하지 않다. 낙랑군은 중국 왕조의 변화에 따라 변화와 부침을 겪었고 대부분 중국사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20세기 이후 일제 식민사관에서 낙랑군을 중국의 식민지라고 강조하면서 왜곡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낙랑군은 고조선을 기반으로 성립되었고, 삼한(마한, 진한, 변한)과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낙랑군은 한이 설치한 것이지만 한국사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삼국시대 중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백제다. 백제는 백제국에서 출발하였다. 사실 역사를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고구려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현재는 백제로 마음이 기울었다. 백제 멸망 후 지배층을 비롯한 상당수의 백성이 당이나 일본으로 넘어가서 자리하였고 자체 기록은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백제 기록의 상당수는 일본이나 중국사에 의존하고 있어 축소되거나 왜곡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백제의 정복 군주하면 4세기 근초고왕을 떠올릴 것이다. 이 때 영토 확장이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 영토 확장을 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다는 것을 책에 싣고 있다.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 마한의 남은 세력을 통합해 전라도 전역을 직접 지배했다는 견해. 둘째, 전북 지역까지만 직접 지배하고, 전남 지역은 간접 지배했다는 견해, 셋째, 전남 지역은 일시적인 복속에 그쳤고, 전북 지역까지만 간접 지배했다는 견해다. 논란은 있으나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적어도 충남 지역까지 직접 지배가 이루어졌고, 마한의 남은 세력에도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시기는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정치사 위주로 배워서이지 않을까 싶은데(문화 파트는 상대적으로 재미있으니 넘어가자) 정치는 전제왕권 강화, 왕위 다툼 이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래도 책에서 경덕왕 이후 혼란스러운 왕실의 상황을 2~3페이지에 걸쳐 잘 소개해두고 있다. 이런 정리가 없으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여러 기록을 뒤져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물론 상세한 확인을 위해서는 기록을 뒤져봐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겠다.
한편 통일신라와 함께 나란히 했던 발해가 있다. 기억나시는지. 발해는 고왕(대조영)-무왕-문왕-선왕 이 네 명의 왕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없다. 문왕과 선왕 사이 25년간 6명의 왕이 교체되는 내분이 있었다. 그만큼 왕실은 혼란스러웠고 지방에 미치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심지어 백두산 폭발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 하지만 이런 내분기가 있었고 9세기 후반이 되면 동아시아가 요동치면서 정세가 혼란스러워진다. 중국은 5대 10국이 들어서며 혼란스러웠고 거란족이 부족을 통일하고 요를 세운다. 발해는 요의 성장에 따른 전략 변화, 기동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이는 내부적인 요인이 컸다. 발해는 요와는 한 차례 밖에 교섭하지 않으면서 중국 왕조와는 지속적인 친선 관계를 가졌다. 발해의 통제하에 있던 보로국(한반도 북부에 있던 여진의 소국)과 흑수, 달고(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거주한 말갈족 중 하나) 등이 독자적으로 당이나 신라 및 고려와 교섭하면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게다가 발해의 지배층조차 백성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전근대 역사 중 가장 흥미로운 국가가 있다면 역시 고려다. 중국과 만주의 영역에서 많은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고려는 500년 가까이 왕조를 꿋꿋이 지켜낸 나라다. 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세기 몽골, 14세기 홍건적과 왜구까지 쉴 틈없는 외적의 칩입에 대한 고려의 대처는 놀랍기만 하다. 이 중 가장 어려운 적은 역시 몽골이었을 것이다. 몽골의 항쟁은 총 70여년 간 이어졌는데 정권의 주체가 무신으로 변화되는 혼란 속에서 일어났고 정부군의 항쟁 뿐 아니라 곳곳에서 민중의 항쟁이 이어졌다. 삼별초의 항쟁은 진도에서 제주도까지 옮겨가며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다. 내가 고려를 좋아하는 것은 사회의 유연성 때문일 것이다. 유연한 외교와 사회 구조 등 여러 모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부계 위주의 가족 구조가 아닌 양가의 혈연의식에 기반한 가족친족 구조였기에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신의 혈연을 중심에 두고 상대의 혈연 이익도 존중하였다. 아들과 딸은 성별과 사회적 역할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가족 내에서는 동등한 지분을 지녔다는 것이 눈에 띈다.
조선은 양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국가다. 16세기 사림 세력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도전이 설계한 대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바탕으로 건강한 정치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과학 기술과 상공업에 대한 천대도 심하지 않았다. 사림 집권 이후 붕당이 심화되고 유교 중심의 국가가 되면서 사회의 폐쇄성이 짙어졌다. 사림의 중심 기관인 서원은 향교와 달리 양반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서원의 원생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뽑았기에 양반들은 더 많은 서원을 건립하고자 했고 집안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조상을 모시는 문중서원을 세우는 경우도 많아졌다. 조선 후기 양반들은 증가했으나 자리는 정해져 있었으므로 직함 없이 일생을 고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양반의 지위로 군역을 면제 받으면서 양반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향교와 서원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 시기인 영/정조 시대를 지나고 세도정치기가 오면 부패와 학정으로 민란이 발생했다는 것으로만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순조나 헌종 시기 국왕은 왕권 회복을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순조는 만기요람을 편찬하여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고 헌종은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바꾸면서 군사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물론 이 때 삼정의 문란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이들의 의지력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삼정의 문란은 국가 재정 운영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방재정 운영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심해진 탓이 컸다.
조선 후기가 되면 강력했던 신분제에 변화가 생긴다. 양반이 분화되고 중인과 평민이 성장하며 노비가 급감한다. 개항기 이전 무렵이 되면 양반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하였으나 대부분이 세력 없는 지방 양반인 향반에 머물렀고 일부는 몰락한 잔반으로 소작이나 수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평민 중 일부는 상공업의 발전으로 부를 축적하여 양반의 위세를 능가하게 되었고 납속책이나 공명첩으로 양반의 족보를 매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결과 평민과 양반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게 된다.
전근대 시기 답게 왕위계보도를 첨부해 놓았고 자료의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리고 경제 파트를 많이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데 늘 정치나 문화 파트에 밀려 소홀한 경우가 많다. 민란의 대부분은 경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 중 큰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 책의 아쉬움은 책의 재질이다. 무광이어서 흠집에 민감한 듯하다. 책을 험하게 보는 나는 벌써 여러 군데 찍히고 긁혔다. 코팅을 하거나 유광 재질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을 접한 소감을 마무리한다.
'리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0) | 2022.08.23 |
---|---|
[책] 시민의 한국사 2 (0) | 2022.08.21 |
[책] 저주토끼 (0) | 2022.08.16 |
[책] 토지 1 (0) | 2022.08.08 |
[책] 인류본사 (0) | 2022.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