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 고전 PART에서 그리스 비극작가에 대한 내용을 접했고 책을 추천해주는 APP인 '책이야기남자'에서 추천해주는 책이기도 해서 읽어보자 찜해두고 있었다.
그리스 고전의 정수라고 하면 항상 빼놓지 않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라고 한다.
왜 하필 희극이 아닌 비극이어야만 하는 건지, 왜 굳이 비극이라는 장르가 그 시절 고대 그리스에서 성행했었는지 궁금했다.
역자인 천병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비극은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라고.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심이라고 한다.
나와 이웃을 이해하고 지적 탐구심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이끌어준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아닌가? 따라서 그리스 비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문화를 이해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리스 비극의 3대 작가로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로 한번 지은 죄는 나중이 되서라도 그 벌을 반드시 받는다는 생각 하에 작품을 썼다. 즉, 신의 섭리를 증명하려 애썼다.
소포클레스는 전통을 존중하는 한편 비극의 개혁에도 노력을 기울이며 그리스 비극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인간 운명의 주는 인간이라는 관점 하에 작품을 썼다. 즉,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려 했다.
에우리피데스는 평범한 인물을 극에 등장시키면서 인간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리스 비극은 종합 예술로써 시, 음악, 춤, 노래 등이 모두 어우러진 장르였기에 그리스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 비극의 구성은 프롤로고스, 등장가, 삽화, 정립가, 엑소도스로 이루어진다.
프롤로고스는 코로스가 오케스트라에 등장하기 이전 부분으로 드라마의 주제와 상황을 제시한다.
등장가는 코로스가 그들의 위치인 오케스트라에 등장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정립가는 코로스가 오케스트라에 자리 잡고 서서 또는 그 좌우로 움직이며 부르는 노래이다.
엑소도스는 코로스가 오케스트라를 떠나며 부르는 노래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 명의 작가의 작품 중 각 두 개의 작품을 엮어 놓은 것이다. 역자의 친절한 주역이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는 않다.
아이스퀼로스의 현존하는 유일한 비극인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아가멤논』에서는 트로이아 전쟁 후 아가멤논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와 정부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 그는 살해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아내와 정부가 잘못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아내도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쳐 남편이 돌아온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에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할 만하다.
둘 다 잘못은 한 것 같은데 과연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인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내심은 헛되이 예감하지 않는 법.
감정이 성취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을 향하여 사납게 날뛰어도 마음은 정의의 응보를 알고 있음이라네.
하나 내 이 두려움은 부디 성취되지 말고 거짓이 되어 땅에 넘어지기를!
(77p)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후 다른 이들이 완성했다는 추측이 많다고 한다. 그의 다른 비극들과 문체 등이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알다시피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제우스로부터 미움을 사서 카우카소스 산의 암벽에 결박당하고 결국 제우스가 내린 벼락으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이야기를 담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시종일관 인간에게 선행을 하고 자신은 불행을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대의 거친 행동은 무익한 작전에서 비롯된 것이오.
지혜가 따르지 않는 고집은 그 자체로는 힘이 허약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오.
(160p)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인 『오이디푸스 왕』. 추후 프로이트에 의해 정립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이 여기에서 나오기도 한다.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고 나라의 역병이 일어나자 신탁에 따라 선왕을 죽인 살해범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살해범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내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도 스스로 눈을 찔러 멀게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비극의 종합 집합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만약 이런 운명이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오이디푸스가 범인을 찾아가며 느끼는 감정의 동요가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아아, 그대들 인간 종족이여.
헤아리건대, 그대들의 삶은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노라.
대체 누가 행복으로부터, 잠시 보이다 사라져버리는 행복의 그림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가?
그러니 불행한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운명을 거울 삼아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않으리라!
(220p)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아들이 결투 끝에 서로를 죽이고 새로 왕이 된 크레온이 폴뤼케이네스가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했는데도 여동생인 안티고네가 장례를 치뤄주다 그녀를 죽이고 크레온의 아들은 크레온을 죽이려 하다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것도 모자라 아내도 죽게 된다.
크레온이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닐까. 안티고네는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였고 전왕의 아들의 장례를 챙겨주기 위한 형제애의 발로였다고 생각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자는 더 이상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
다름 아닌 고집이 어리석음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오.
(285p)
예언자의 말대로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고쳤다면 자식과 아내 모두를 잃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메데이아 신화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이아손이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황금 양모피를 구해왔는데도 펠리아스가 왕위를 내주지 않자 메데이아는 펠리아스를 죽인다. 이후 메데이아에게 싫증난 이아손은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고자 하여 메데이아는 크레온의 딸과 크레온을 죽이고 메데이아는 자식도 제 손으로 죽인다.
메데이아의 혹독함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아손에게 화가 나서 결혼할 여자와 그 아비를 죽인 것은 이해된다 쳐도 왜 자식들마저 죽이는지. 당황스러운 것은 자신은 이미 도망칠 궁리를 해놓았다는 사실. 그러면서 자식들은 하늘로 보내고. 과연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분노가 일다 못해 역겹기까지 했다.
사랑이 너무 격렬하게 다가오면, 사람들에게 명성과 명예를 가져다주지 않는 법.
(334p)
그녀는 사랑만이 소중했던 모양이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가 제물로 바쳐졌지만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구출한 후 여사제로 지내고 있던 중 그녀의 오빠들을 만나게 되고 오빠들과 함께 그곳을 탈출한다는 이야기이다.
희망은 달콤한 것이어서 결코 물리는 일이 없다네.
인간들에게 재앙이 되도록, 그래서 인간들은 부를 잔뜩 짊어지려고 바다를 떠돌기도 하고 이방인들의 나라를 찾기도 한다네, 다들 같은 희망에 이끌려.
그리하여 더러는 부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허사가 되지만, 더러는 큰 부를 얻게 된다네.
(391p)
대부분의 책을 묵독으로 읽지만 이 책은 음독으로 읽으니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들을 읽으면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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