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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시아 1945-1990: 냉전의 킬링필드

category 리뷰/책 2023. 12. 28. 09:07
 
아시아 1945-1990
아시아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2천만 명 희생시킨 전쟁·폭력의 기원과 궤적 세밀하게 그려 동아시아, 동남·서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체 아우르는 현대사로서 유일한 책 희귀 사진, 도판, 지도 다수 수록되어 읽는 재미와 편의 더해 중국 내전(250만 명), 한국 전쟁(300만 명),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29만 명), 베트남 전쟁(400만 명), 캄보디아 제노사이드(167만 명),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50만 명), 방글라데시 해방전쟁(100만 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00만 명), 이란-이라크 전쟁(68만 명), 레바논 전쟁(15만 명)…. 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90년까지 45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동남·서아시아를 거쳐 중동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과 폭력의 현장, 그리고 희생된 이들의 수를 가리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역설적이게도 서구가 ‘장기 평화The Long Peace’의 시간을 누리는 동안, 아시아는 왜 이토록 참혹한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을까? 이 책이 출간되는 2023년 현재에도 아시아의 서쪽 끝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전쟁은 또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 책은 아시아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폭넓게 재구성하며 비극이 왜 일어났고, 오늘날 이 문제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날카롭게 풀어낸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현대사’로서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
폴 토머스 체임벌린
출판
이데아
출판일
2023.10.23


시간을 따라 지도를 그려보면, 학살은 개발 도상 세계를 관통하는 일정한 길을 쫓아가면서, 모두 합쳐 냉전 시대에 발생한 전사자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광범위한 세 전선에 집중되었다. 전선 각각은 세 개의 지방 전쟁군 중 하나와 연계된 지역 투쟁들로 이루어졌고, 이 지방 전쟁군들은 다시 지구적 냉전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각 전선은 소련과 중국의 국경을 따라 만들어졌고, 지방 권력의 대두에 집중되었으며, 탈식민지화의 뒤를 쫓아 전개되었다. 다량의 병력이 주둔한 중부 유럽의 변경 지대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남았던 반면, 동쪽에서는 격렬한 충돌이 불타올랐다. - P16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1,200여 명을 살해하고, 240여 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피의 보복’에 나섰고 현재, 팔레스타인 희생자만 2만 명을 넘어섰다. 봉쇄된 가자지구의 주민 220만 명도 생사기로에 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은 세계 곳곳에서 반유대주의 물결을 일으켰다.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에도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덧 2달을 훌쩍 넘겨버린 전장터가 된 가자지구를 떠올렸다. 중간에 일시적인 휴전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전쟁은 현재진행중이다. 

 

현대 아시아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미소 냉전으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에 의해 한쪽 편에 서는 것을 강요당했다. 1955년 비동맹운동이 일어나면서 중립 노선이 성공할 수 있을까 했으나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끝났다. 냉전이 해체되면 평화가 올 것 같았으나 강대국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잠재해 있던 내부 갈등이 결합되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폭력과 전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번역서의 제목은 ‘아시아 1945-1990’이고 원서의 제목은 ‘The Cold War’s Killing Fields: Rethinking The Long Peace’이다. 비교해보면 번역서의 제목이 지역과 시기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읽어보기 전에는 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런 뜻에서 번역서의 제목을 원서 제목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시아에서 치뤄진 폭력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같은 시기 다른 지역은 냉전이라는 미명 아래 장기 평화의 시대에 진입했으나 아시아는 남은 제국주의와의 민족해방전쟁, 이념, 인종과 종교의 갈등으로 인해 이뤄진 각종 전쟁으로 열전을 치뤄냈다고 주장한다. 

시기별로 전쟁의 성격이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동아시아 전선으로 1945년부터 1954년 시기의 중국, 한국, 인도차이나가 그 무대다. 두 번째는 남아시아 전선으로 1964년부터 1979년까지 베트남, 라오스 및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를 그 무대다. 세 번째는 서아시아 전선으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이 그 무대다.

 

기존에도 현대 제3세계가 열전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음을 많은 연구자들이 밝혔으나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서 열전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음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의 개별 전쟁사를 다룬 책들은 있었으나 여러 전쟁사를 현대 시기 전반에 걸쳐 다룬 역사서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는 소중한 참고서를 얻은 셈이다.

 

나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남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 소중한 정보를 얻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의 여파가 라오스, 캄보디아로 확대되었음은 잘 알지 못했었다. 또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학살과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 크메르 루주 정권의 제노사이드도 그 배경과 전개 과정을 전반적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전선이었던 서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레바논 내전, 이란 혁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은 미소의 전쟁 개입으로 무장 정파 등의 급진파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면서 현재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역사라 느꼈다. 개인적으로 1~3부 중 3부의 내용이 가장 설득력 있어 좋았다. 

 

아쉬운 점들도 있다. 

 

첫 번째로,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의 균열 구도를 설명하는 부분은 그 근거가 빈약해보였다. 우선 양국 간 정치, 이념적 차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아시아 전장에서의 이득적인 면이 갈등의 요인이 되었겠지만 미국과의 이해 관계가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아무래도 제1시기와 제2시기 사이의 10년 동안 각국에서 벌어진 정치, 군사적 흐름에 대한 공백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로, 시기별로 주요 전장이 달라졌을 뿐이지 각 지역의 역사가 제국주의의 영향과 이념, 종교와의 갈등에서 어느 곳 하나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장에서 벌어진 일을 그 시기로 한정하려고 하다보니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특히 1971년 벌어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전쟁은 그 갈등의 기원이 1947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47년 양국은 영국에서 분리독립되었으나 이후에도 대립 구조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1949년 둘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정전선에 의해 카슈미르가 분할되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1970년 무렵부터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료들이 미국 쪽에 치우쳐 있음이 아쉬웠다. 

 

여러 아쉬움들이 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전체적으로 정리해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저작이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18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27일 완독하였으니 딱 열흘 걸려 읽어냈다. 최대한 꼭꼭 씹어 소화하기 위해 천천히 읽느라 시간이 더 걸렸는데 이해를 그만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도 참고서로 잘 활용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 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반세기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미국, 유럽, 러시아에게 냉전은 마르스크주의의 혁명적 도전을 사실상 패배시켰고, 자본주의를 지배적인 정치, 경제, 시스템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나 제3세계에서는 사태가 전혀 다르게 끝났다. 제3세계에서 냉전은 유럽 식민주의를 파멸시키면서 수십 개의 독립국가들을 창출하는 동시에 2000만명 이상을 죽이고 온건한 세속 민족주의의 힘을 파괴한 대량 폭력을 부채질하는 데 일조했다. 궁극적으로 두 이야기는 냉전 시대와 21세기 국제 질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냉전의 킬링필드에서 저질러진 격렬한 폭력은 유럽의장기 평화 못지않게 현대 세계의 형성에 주요한 요소였다. - P872~873

 

동아시아를 위한 전투는 초강대국 투쟁을 제3세계에 가져왔다. 이 지역 전역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자 미국 지도자들은 세계 지배를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노력을 목도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1949년10월부터 1950년 6월 사이의 몇 개월은 제3세계에서 냉전이 형성되는 데 핵심적인 기간이었다. 1949년 10월 중국이 공산주의 대국으로 등장하자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뒤집혔고, 개발 도상 세계 전체에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냉전 지도자들은 중국, 한국, 인도차이나에서 맹렬히 진행된 일련의 아시아 혁명들을 두고 하나의 응집된 전선으로 결합해 전략적 계산을 수행했다. 한편 동쪽에서 공산주의가 승리하자 주저하던 소련 지도자들은 아시아 혁명가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과 동지들은 냉전 투쟁의 방향을 중부 유럽에서 동아시아의 포스트식민주의국경 지역과 그 너머로 돌렸다. - P88

1954년 제네바에서 소련과 중국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국익을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 공세를 계속한다는 목표보다 위에 두었다. 그러나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그 모든 승리에도 불구하고 양쪽의 정치적, 이념적 이해관계 속에 뿌리박힌 극심한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또한 마오쩌둥은 중국 내전 동안 스탈린이 했던 미온적인 지원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또한 중국 지도자들은 개발 도상 세계의 사회들에 소련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 P267

베이징과 모스크바 사이의 균열이 깊어지면서 개발 도상 세계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 동안 미국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면서 의기소침해진 흐루쇼프는 포스트식민주의 세계에서 소련의 자세를 더욱 행동주의적으로 취함으로써 제3세계 동맹자들에게 모스크바의 신뢰를 회복시킬 필요에 직면했다. 한편 중국 지도자들은 처참한 대약진운동의 경험을 잊어버리고 제3세계 혁명 프로젝트의 리더십에 대한 그들의 권리 주장을 강화하기를 바랐다. 1960년대라는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면서 베이징도, 모스크바도 비서방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교묘하게 움직였다. - P280

크렘린에 대한 베이징의 적대감이 증대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학살당했으며, 중소 국경 충돌이 1969년에 발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노이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중국 지도자들은 워싱턴과 관계 회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971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부터 1979년의 중국-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동안 워싱턴과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소련과 그 동맹국에 맞선 투쟁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제휴 관계를 형성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의 전쟁은 공산주의 세계를 갈갈이 찢어놓았고 제3세계 공산주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파괴했다. - P554

냉전 시대의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혁명전쟁의 경로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부터 새로운 지역으로 두드러지게 이동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은 포스트냉전 시대의 국제정치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었다. 이 세번째 충돌의 물결은 좌익 게릴라들이 친서방 정부와 싸우는 이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아니라 종교적, 인종적 정치에 사로잡힌 새로운 유형의 급진주의자들이 선두를 차지했다. "동도 서도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 다음 세대의 전사들은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모두 거부했다. 냉전 말기의 종파 전사들은 외부 세력에 맞서 싸우는 만큼이나 서로를 상대로도 싸웠다. - P558

대대적인 종파 반란의 전쟁들은 레바논,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적 그룹들을 급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파키스탄의 군사화된 정권들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포스트식민주의 세계 전역에서 맹렬하게 진행된 충돌들에 미국과 소련이 퍼부은 군사적, 정치적, 재정적 지원은 온건파를 파멸시키고 세계의 사회들을 급진화하는 데 일조했다. - P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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