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앗 딘의 집사 시리즈 중 2편과 3편의 내용에 호기심이 있었다. 한반도의 역사와 더 연관 있는 것은 3권이겠지만(무신 정변, 몽골과의 항쟁 등) 2권은 테무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칸의 자리에 오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은 1155년에 출생하여 1227년 73세에 사망했다. 1155년 그 해는 금나라가 세워지고 1126년 정강의 변이 있은지도 거의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칭기스 칸은 1115년 적대 관계였던 타타르 종족에 대한 원정을 나갔다가 어머니인 우엘룬 에케가 그를 임신하였다고 한다.
그는 손에 마치 간처럼 생긴 복사뼈만한 응혈을 움켜잡고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세계 정복자의 징표가 분명히 보였으며, 행운과 번영의 빛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바로 얼마 전에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타타르와 그 군주인 테무진 우게에게 승리를 거두고 적을 눌렀기 때문에, 그것을 상서로운 징표라고 생각하여 그 타타르 군주의 이름을 따서 영광스런 자식에게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P126)
일단 어느 영웅의 평전을 읽는 것처럼 일화 등을 미화시켰음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테무진의 이름에 대한 유래다. 승리한 전투를 기념하여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좋은 기운을 아들에게 불어넣어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버지 이수게이 바하두르는 자신의 형과 아우들 및 친족들의 지도자로 있는 동안 다른 종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수게이가 13년 만에 사망했을 때 테무진과 형제들은 어렸고 자신의 종족을 보호하는데 최우선을 두어야 했다. 게다가 테무진이 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형제들과 벌인 싸움은 오죽하겠는가. 이 과정을 겪고 최종 승리자가 된 테무진은 어쨌든 남다른 점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이수게이 바하두르의 아들은 테무진 말고도 주치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 벨구테이 노얀이 있었다. 초반에는 그의 친족과 사촌들, 부형들이 그가 있던 목초지와 가까이 있어 그들을 처리하는 데 30여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나서 테무진이 칭기즈 칸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두 번의 단계가 있었다. 일단 케레이트의 군주인 옹 칸을 패배시키면서 ‘칭기지’(‘위대한 군주’라는 뜻)가 된 것이 첫 번째, 그 뒤 나이만의 군주인 타양 칸을 죽이고 스스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칭호를 ‘칭기스 칸’으로 한 것이 두 번째다.
칭기스 칸이 옹 칸의 군대를 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을 패주시키자, 케레이트 종족들은 그에게 복속했고, 그는 그 나라와 울루스를 장악했다. 1203년에 해당한다. 그가 이처럼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군주의 대업이 그에게 확정되었고, 주변에서 종족들이 그에게 귀순해 들어왔다. 거대한 회의를 열고 크나큰 은총에 감사하면서 준엄하고 자비로운 법령들을 선포하고, 상서롭게 칸의 자리에 앉았다. (P226)
1206년 초봄에 칭기스 칸은 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엄하게 쿠릴타이를 열어, 축복을 받으며 보좌에 앉았다. 이 칭호를 정한 사람은 콩코탄 종족 출신인 뭉릭 에치게의 아들 쿠케추-텝 텡그리라고도 부른다-였다. ‘칭’의 뜻은 ‘강하고 단단하다’는 것이며, ‘칭기스’는 그 복수형이다. (P252)
그렇다면 당시 몽골은 동아시아에 있는 부족들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을까. 아무래도 우리와 연관이 깊은 동네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데 (부록에 있는) 지도를 보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몽골인들은 그 지방들을 ‘자우쿠트’라고 부르고, 키타이 주민들의 용어로는 키타이를 ‘한지(漢地)’라고 부른다. 그 지방과 마친과의 경계는 카라무렌 건너편에서부터 바다에까지 이어진다. 키타이 사람들은 마친을 ‘만지(蠻子)’라고 부른다. [키타이 지방의] 또 다른 경계는 주르체 지방과 접하고 있다. 주르체라는 말은 몽골인들의 표현이고, 키타이 언어로는 그것을 ‘누지(女眞)’라고 부른다. 또 다른 경계는 카라키타이 지방과 평원과 접해 있다. 그[곳의] 종족들은 모두 유목민이다. 그들은 유목민들과 접해 있으며, 언어와 외모와 풍습도 비슷하다. 키타이 언어로는 [카라]키타이의 주민들을 ‘치단야르(契丹)’라고 부른다. 또 다른 경계는 거듭 칭기스칸에게 복속했던 지방들과 접해 있는데, 각자 독자적인 명칭과 군주를 갖고 있다. 그들의 외모와 풍습은 키타이와 힌두와 비슷하며,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다. 상술한 지방들 가운데 일부는 티베트 지방에, 또 일부는 카라장 지방과 접해 있다. 키타이 사람들은 카라장을 ‘다이류’라고 부르는데, ‘커다란 지방’이라는 뜻이다. (P273~274)
칭기스 칸의 몽골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지금의 키르기즈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의 중앙아시아, 더 넘어 이란(이라키 아잠),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라크(이라키 아랍)의 서아시아까지 진출했다. 특히 1211년에는 키타이, 카라키타이, 주르체 등의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했다.
몽골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즉시 키타이와 카라키타이와 주르체의 군대를 격파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 부근의 평원이 온통 악취로 진동할 정도였다. (P278)
간략하게 적었지만 이런 모습은 책에서 거의 매 전투마다 나온다. 너무 끔찍하고 잔혹해서 입에 담기도 불편한 장면들이었다.
칭기스 칸은 탕구트 지방을 정복하고 난 뒤 돌아와 아들들과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 1년이나 걸리는 거리인 광대한 왕국을 너희 자식들을 위해 정복하여 완성시켰노라. 이제 나의 遺志는 너희들이 적을 물리치고 친구를 치켜세워 주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편안하고 풍요롭게 인생을 보내고 왕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우구데이 카안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이렇게 충고했다. “너희들은 각자의 왕국과 울루스로 가라. 너희들은 내가 죽은 뒤 법령을 바꾸지 말라.”
칭기스 칸이 사망한 1227년은 무신 집권 시기였고 집권자는 최우였다. 불과 4년 뒤 1231년 고려와 몽골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이전 일이라 해도 감정 이입이 안 될수는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몽골 전쟁 당시 칸의 일대기는 3권을 읽으면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책에서는 몽골의 역사를 앞에서 설명하고 뒤에는 동시대의 키타이와 카라키타이와 주르체, 투르키스탄, 서아시아에 있던 이란, 시리아, 이집트의 칼리프와 술탄의 연대기를 다루지만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기록이 소략하고 뒤쪽 비중이 자세하다. 아무래도 이는 저자가 이란 출신이기 때문에 자국의 역사에 대한 접근(자료 등)이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대기 동안 벌어진 사건들과 일화들(성경 말씀 같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왕국에서 악을 없앨 수 있다.” 이런 것들…)도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사건은 대부분 자연 재해의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도 보면 ‘지진’이나 ‘가뭄’ 등의 기록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백성들에게도 피해였으나 지배층에게는 하늘의 경고처럼 받아들여졌음을 느끼게 한다.
1권의 리뷰에서도 적은 것 같지만 집사 시리즈를 읽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일단 이름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뒤적뒤적해야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름은 '이즈 앗 딘 마수드 이븐 누르 앗 딘 아르슬란샤 이븐 이즈 앗 딘 마수드 이븐 쿠틉 앗 딘 마우두드 이븐 이마드 앗 딘 젱기 이븐 악크 송코르' -> 이러했다. 어느 지방의 영주 이름이고 물론 단 한 번의 출연이지만 이리 길다니 당시 사람들은 이를 외우기나 했을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읽었던 이름을 잊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나오는 이름을 옆에 적고 뒤에 나오는 이름들을 확인하면서 관계도를 그리는 것을 추천한다.
부록으로 칭기스 칸과 조상들의 족보들을 싣고 있는데 『집사』 버전과 『몽골비사』 버전을 함께 넣어서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정리 차원에서 보거나 추후에 계보를 확인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인데 부록에 있는 지도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형(강, 산맥 등)과 도시명을 짚어가면서 공부해야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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