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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타인에 대한 연민

category 리뷰/책 2023. 11. 6. 17:35
 
타인에 대한 연민
현대 사회, 고속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과 노동자 계급의 절망, 최근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공포 앞에서 민주주의는 과연 후퇴하고 있는가, 전진하고 있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시민들은 불확실한 삶 앞에서 쉽사리 두려움이란 감정에 잠식당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종종 타인(기득권 또는 소수 집단)에 대한 혐오, 분노, 비난과 뒤섞인다. 이성적 사고와 건설적 협력 대신 손쉬운 타자화 전략을 선택해 나와 타인의 날선 경계를 짓게 한다. 성별, 종교, 직업, 나이,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회적 편 가르기의 근본에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배어 있다. 계급 계층 간 갈등, 여성 혐오, 진보와 보수의 대립 등 이러한 정치적 감정들은 늘 이면의 권력자들에 의해 교묘히 조종되어왔다. 세계적 석학이자 정치철학자인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 느꼈던 통렬한 무력감을 기반으로 이 책, 『타인에 대한 연민(원제: The Monarchy of Fear)』을 써내려갔다. 저자는 두려움이 어떻게 시기와 분노라는 유독한 감정들로 번져 가는지, 대중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현대 민주주의를 좀먹는 과정을 냉철하게 진단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인종 차별,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사례들이 나열된다. 이는 미국의 이야기지만 극심한 기시감을 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가. 두려움, 분노, 혐오가 쌓아 올린 ‘트럼프주의’로부터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
마사 누스바움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일
2020.09.15

타인에 대한 연민을 생각하기 힘든 시대다. 점점 더 사회는 각박해지고 개인은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타인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그들을 외면한다. 나도 마음으로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장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마음을 실천하는가 물어보면 선뜻 답할수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 사회 문제의 원인을 다룬 철학/사상가들의 이론들과 현실의 미국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을 쉽게 그 세계로 안내한다. 

 

차별과 혐오라는 단어가 익숙해졌음은 과거보다 그만큼 그것들을 이슈화하면서 문제시여기고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타인을 배제하려는 감정을 여러 모로 분석하고 있는데 시작은 ‘두려움’부터다. 

저자는 두려움이 인간이 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자 동물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인식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 원초적인  감각이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자신의 행복에 위협이 닥쳤음을 느낄 때 일어난다. 

나쁜 일들은 쉽게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진실에 무관심하고 서로의 거짓말을 반복하는 폐쇄적인 집단의 안락함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앞장서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자궁과 같은 평온함을 제공하는 지도자의 위안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려움의 고통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을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 P94

 

두려움은 분노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분노는 보복을 포함하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저자는 자기 안의 분노에 저항하고 정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부정의한 정치 문화에 대한 분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숙고하지 않고 성급하게 내린 판단에 의한 분노나 이유 없는 분노는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정돈된 세상을 갈망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헛된 해결책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복잡한 진실을 파고드는 일은 어렵고 개인의 기쁨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사는 것보다 마녀를 불태우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분노는 확실한 생각을 동반하는 명확한 감정이다. 강하고 남성다운 중요한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 P118

 

혐오는 인지하는 감정으로 두려움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혐오를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다. 원초적 혐오는 죽음이나 동물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상에 대한 것이고 투사적 혐오는 나(우리)는 순수하고 그들은 내 발 밑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 전래동화에서 악당들은 사회적 혐오의 투사 대상이었고 현실에서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들에 대한 배제와 혐오까지 이어졌다. 혐오를 조장하는 두려움이 극대화되면 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큰 불안을 느낄 때 취약한 집단을 비난하며 성급하게 희생양으로 삼는다. 우리는 이제 혐오를 외부로 투사하는 그들이 자기 신체의 취약성과 유한한 목숨을 인식하고 있음을 안다. 혐오는 언제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특정한 생각과 결합된다. 하지만 혐오가 두려움에 관한 것이며 구체적인 두려움들의 집합이 연료가 된다면, 다른 조건이 같을때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혐오 집단의 필요성이나 낙인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를 인식한다면 숨겨진,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난 편견을 물리치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P170

 

시기심은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파괴욕이다. 시기심은 타인이 가진 것에 주목하여 자신의 상황이 그보다 못하다 비교하면서 느끼는 열등감으로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긴장과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화려한 스타를 좇는다거나 SNS에서의 자기 자랑 경쟁에 열중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고 타인 경시에 대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시기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은 인간의 불안한 삶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관계든 정치계든 순수함에 대한 추구가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증오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시기심이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자라지 않는 조건, 사랑과 창조적인 업적을 국가의 길을 밝히는 조건으로 만들어 시기심의 고삐를 묶어야 한다. - P205

 

두려움과 혐오, 시기심은 동시에 발생하여 서로를 강화한다. 여성의 평등을 방해하는 사회적 조건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 육체성을 가진 여성, 성공한 경쟁자로서의 여성이다. 저자는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성차별주의는 “불쌍한 여성들. 언제나 능력 발휘를 못하지.” 같이 무능력함에 기반하는 것이고 여성 혐오는 “여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같이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여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행동 양식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당연하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성차별주의는 문제다. 하지만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이다. 여성 혐오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영리한 전략은 아니다. 이는 아이들이 싫다고 외치며 발로 바닥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여성혐오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계급 남성의 건강 악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얻게 되지도 않는다. 그들이 아직 직면하지 못한 문제 역시 해결해주지 못한다. 다시 사랑과 돌봄을 주고받는 방법, 여성들의 경제 활동과 성취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새로운 핵가족을만들어나가는 방법 말이다. 여성 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유독한 감정들의 조합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전략이다. - P242~243

 

저자는 미래를 위해 신중하고 이성적인 비판 정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행동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칸트의 실천적 요구 개념을 가져왔다. 

칸트는 우리가 사는 동안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행동의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행동 말이다. (칸트는 개인적으로 세계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노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절감하고 있었다. 옳지 않은 행동과 증오가 난무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다운 행동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전반적으로 호감이 가는 종인가 아니면 재앙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칸트는 전제 군주제, 노예 매매, 침략적 민족주의, 종교의 자유와 언론 자유의 부재 등과 같은 악도 공격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면 스스로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희망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칸트는 ‘실천적 요구‘로서의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충분한 이유 없이도 올바른 행동을 위해 취해야 할 태도다. - P258

 

희망을 품고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상적 지침들이 있다. 가정, 개인 간 우정을 잘 돌보기,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집단 간 토론을 이용한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 단체, 폭력을 지양하는 정의적 대화를 추구하는 연대 단체, 정의에 대한 이론들이다. 결국 개인에서부터 나아가 서로 연대하여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악법을 개정해나가는 것들이 그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이다. 말은 쉽지 실천은 어려운 일들이다. 그렇지만 넋놓고 있으면 후퇴할 뿐이다. 결국 희망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 온당한 사회라면 사회 제도를 설계해 집단적 증오를 최소화할 방법에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일반 교실에 편입시키는 간단한 정책만으로도 두려움과 공격성의 형태는 눈에 띄게 변화한다. 다른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정책 대신 희망, 사랑, 협력을 장려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증오를 숨긴 채 행동 양식만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 아동의 일반 교실 편입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느끼는 관점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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