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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롱 드 경성

category 리뷰/책 2023. 10. 16. 10:38

올해 들어 한국 근대문화(예술)사에 관한 신간을 여러 권 읽었다. 그 중 이 책은 특히나 읽으면서 놀라움을 많이 느꼈는데 작가 자체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작가의 주변 친분 관계, 그리고 뒷 이야기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나는 작가와 작품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작가의 주변 관계를 알면 작가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작품 세계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과거에서부터(작가 자신) 현재(후손)까지의 흐름까지 알려줘서 여러 번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 정말 많아서 정리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매 챕터가 거의 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가 오히려 더 난감한 책이었다.

 

1부는 작가와 친분을 가진 관계를 다루는데 구체적으로는 미술가와 작가의 만남이다. 이상과 구본웅, 박수근과 박완서, 이태준과 김용준 같은 알려진 관계들도 있지만 정지용과 길진섭처럼 정지용은 잘 알지만 길진섭은 물음표이거나 김광균과 최재덕처럼 둘 다 생소한 경우도 많았다. 

 

김광균은 그림 같은 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한데 대표시 ‘와사등’이 있다. 아래 잠시 살펴볼까.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雜草)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悲哀)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와사등’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라는데 나는 그 시를 이번에 처음 보았으며 심지어 김광균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어쨌든 그림 같은 시를 썼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시를 읽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김광균은 전쟁이 났을 때 후배 예술가(이중섭 등)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최재덕은 이중섭처럼 김광균이 아끼는 화가였다고 한다. 그가 김광균에 대해서 이야기한 묘사가 있다. 

경주 박물관 추녀 및 제일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지나는 바람 같은 미소를 띤 부처님이 최재덕인 것 같다. …. 그의 그림은 행복한 색채로 덮인 나이브한(순수한) 풍경이 많다. 가을 추수 때 시골로 내려가 그린 들판의 <원두막>, <포도>, <한강의 포플러 나무>, <금붕어> 등 대단히 독창적이고 부드러운 형상이 서려 있는 서정을 나는 이중섭과 맞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 김광균, ⌜30년대의 화가와 시인들⌟, 계간미술 1982년 가을호

 

김광균이 왜 이중섭과 최재덕을 아꼈는지 그의 말을 보면 이해가 될 것 같다. 둘의 작품이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시골 감성? 향토성을 지닌 풍경이라고나 할까. 

 

아래 그림을 보자. 최재덕의 <원두막>인데 마치 이중섭의 <소>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 연상된다.

 

심지어 최재덕은 자신의 서명으로 소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최재덕’이라는 한글 글씨를 분해해서 소 모양이 되게 했다. ‘덕’이라는 글자가 소의 다리 모양을 만드는 식이다. 왜 소 모양을 서명으로 했을까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 소는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은유의 대상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일견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최재덕의 이름이 생소한 것은 그가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2부는 화가와 그의 아내를 다룬다. 생각해보라. 화가에게는 언제나 그의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파트너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파트너가 조력자이기만 하지 않다. 그 자신이 예술가인 경우도 많았다. 가장 놀랍기도 하고 재밌었던 주제가 아니었다 생각한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화의 대가다. 몇달 전 전시회에서 유영국의 <산>이라는 작품을 만났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화사한 색과 절묘한 배치를 이용해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유영국은 화가 몬드리안을 존경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생각해보니 왜 그가 몬드리안을 존경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화가 몬드리안은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은 인간이 낭만적인 서사에 빠져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예술가는 그런 우매함에서 빠져나와, 수학적 직관을 통해 자연이 지닌 완전한 균형과 질서를 표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추상화는 시장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잘 팔리지 않는 추상화에 일생을 걸겠다고 유영국은 다짐한다. 평생 알아주는 이가 없으며 돈을 벌지 못할 지 모르는 일에 뛰어드는 결심,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리만치 놀라운 도전이다. 그런데 그 무모함의 태도에 김기순 여사는 이끌렸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열심히 해서 만들어놓은 것이 바가지라 하더래두요. 그건 그냥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건 아니죠.” 유영국이 환갑이 다 되어가던 1979년 삼성의 이병철이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 시작한 뒤로 삼성가에 그의 작품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그의 그림이 인정을 받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유영국은 “내 그림은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라고 했다는데 김기순 여사는 안정된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고 반복되는 리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의 뒷바라지를 톡톡히 했다. 

 

3부는 화가와 그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를 관통하여 온몸으로 살아낸 선구자들이다. 

 

이들 중 나는 오지호의 작품과 생애에 주목했다. 

 

그의 작품 중 국가등록문화재가 있다. <남향집>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자의 표현이 일품이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 오히려 나무보다 그림자가 더 눈에 띈다라는 생각을 했다. 빛에는 그늘이 있듯 앞면이 아닌 뒷면에 주목하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처음 죽음의 위기는 1935~1937년 무렵이었는데 혼탁한 경성의 생활을 접기로 하고 개성의 송악산에 간 그는 1년만 머물 생각으로 갔다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10년간을 머물게 된다. 그런데 하필 위출혈이 발생하여 죽음의 문턱까지 가 5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고 퇴원 후에도 재발과 졸도를 반복한다. 오지호는 더 이상의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단식, 일광욕만으로 자가 치료를 했는데 다행히 정신력의 승리였는지 나아졌다고 한다. 두 번째 위기는 한국전쟁 때다. 그는 1950년 말 고향에서 빨치산에 납치되어 남부군 활동에 끌려다니게 된다. 그는 해방 후 조선대 교수를 역임했고 예술가여서 부대 내에서 반동분자로 몰려 내내 감시생활을 받았다. 1952년 1월 오지호 부대가 백운산에서 군경 토벌대와 대치하다 낙오되어 국군에 붙잡혀 즉결 처형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한 장교가 그를 살려준 덕분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거쳐 무죄로 풀려났다고 한다(진짜 생각할수록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더니 작품 3백점이 몽땅 소실된 뒤였고 이는 작가로서는 최악의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좌절의 순간에도 그는 그림을 다시 그리겠다 결심하고 무등산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5.16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그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활동과 과거 빨치산 이력 때문에 검거되어 빨갱이로 몰린다. 서대무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면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인간승리가 아닐 수가 없다.

 

오지호는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는 환희”라고 이야기한다. 예술은 환희를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지호의 밝고 환한 작품은 결코 어둠을 피하거나 외면해서 얻은 것이 아닌 고통을 직면해서 얻어진 결정체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4부는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을 담았다.

 

이 중 나는 역시 이성자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난 번 전시회에서 이성자 말년에 주로 천착했던 우주에 관한 그림이 떠올랐다. 작품을 보고 나니 그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성자는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인 외과의사 신태범과 결혼한다. 그는 이성자와 마찬가지로 자존감 높은 인물이었고 계속되는 관계의 악화로 결국 이성자는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그녀는 파리 화단에 빠르게 주목을 받으며 진입했고 회화 공부한지 3년 만에 <국립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다. 1964년에는 이성자 개인전이 열리면서 프랑스 문화부 관계자의 주목을 받고 작품이 프랑스 정부에 영구 소장되는 쾌거를 낳는다. 한국에는 세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성자를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몇 년동안을 떨어져 지내면서 보지 못했을텐데 아들들의 인품도 놀라웠던 지점이었다. 

 

말년에 이성자 작품은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우주의 하늘과 별과 행성들은 수많은 점처럼 흩어져 있다. 우주를 보고 있으면 인간은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뜻일까. 작가의 중심성을 찾아가는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이상하리만치 슬픔이 느껴진다.

 

 

 

한국 근대 예술가들을 꽤나 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인물들이 이렇게나 남아 있다는 것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쁨을 느끼게도 했다(앞으로 더 눈여겨볼 예술가들이 있다는 것이므로). 

 

다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에 관심이 없다 해도 이 책의 인물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물 하나쯤은 궁금해서 파게 되는 욕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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