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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돌궐 유목제국사

category 리뷰/책 2023. 7. 10. 11:25
외교 관계는 상대적이다. 외교는 자국의 입장에서 정도의 차이에 따라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에서부터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는 치열한 수싸움의 세계이다. 외교에서 중요한 관계는 아마도 주변국이 될 것이다. 자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외교는 안보와도 연결되어 인식되므로 그렇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세계사적으로 유목 민족이 힘을 키운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돌궐, 위구르, 몽골, 오스만 등이다. 돌궐은 유목 제국의 황금기를 연 첫 주자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었다.
예를 들어, 한반도는 고대부터 근대에 오기까지 중국의 영향 하에 있지 않았던 적이 없다(좋든 싫든). 현재 남아 있는 문헌들이 대부분 중국의 것들이고(물론 일본도) 당연히 자신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변국들의 입장은 축소되거나 왜곡되어 기술된 경우가 많다. 자국의 역사가 있다면 중국이 써 놓은 기록과 비교해볼 수 있겠으나 고대로 갈수록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있다 해도 부족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시의 역사를 다각도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돌궐은 6세기부터 8세기까지 중앙아시아 초원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며 호령한 제국이다. 그 이전에 흉노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범위를 차지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유목 국가로서는 최초의 타이틀을 가질 만하다.
돌궐은 552년 건국되어 급격하게 성장했다가(제1제국 시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로 분열되고, 다시 일시적으로 힘을 되찾았으나 630년 당나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그 후 한동안 당의 기미지배를 받다 그 세력권에서 벗어나 687년 국가를 재건하였으나(제2제국 시기) 이후 침체 및 부침의 과정을 거쳐 745년 멸망하게 되는데 이처럼 2세기 동안 다양한 양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가가 성장에서 소멸의 시기를 겪지만 이처럼 제국으로 성장했다가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일어나 제국을 형성하다니 놀라웠다.
 
이 책은 돌궐의 주도 집단인 아사나 세력에 주목하여 이들이 권력을 형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정리하였다. 아사나 집단의 역사는 곧 돌궐국의 형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아사나는 5세기 바르콜 분지(톈산 산맥 북방)에서 발원해 6세기 초 유연과 고차가 대결하는 과정에서 알타이 산지로 이주하였다. 그때까지 아사나는 유연의 지배 하에 있던 대장장이에 불과한 집단으로 그나마도 건국 이전의 기록은 없고 건국 이후 중국 기록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그 기원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아사나 집단은 자신들이 국가의 주도 집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들은 과거 흉노, 오손 이래 북아시아의 정통성 계승을 상징해주던 이리 신화를 받아들여 하늘의 권위가 자신들에게 이어졌음을 강조했다(P97) .
 
돌궐은 건국 이후 몽골 초원과 중가리아를 넘어 서방으로 진출해 카자흐 초원을 거쳐 아랄 해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의 초원과 그 주변의 오아시스 지역 대부분을 통합하고 단일한 국가 체제를 만들어냈다. 돌궐은 과거 유목민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강력한 군주권을 확립하고 주변의 오아시스 상인 출신의 관료들을 채용하였다. 이를 통해 동서 교역로인 초원길을 바탕으로 거대한 교역 시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돌궐이 위치한 곳은 주변의 정주 세력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정주 세력의 힘이 강해지면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고 반대로 약해지면 돌궐은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구조가 되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남북조 시기 이전 돌궐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끝나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돌궐의 교역로가 해체되자 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게다가 수, 당은 돌궐을 끊임없이 견제하였다. 돌궐은 680년 재기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당나라의 지속적인 무력 대응으로 수나라 통일 이전의 제국 범위 만큼은 돌아오지 못한다. 결국 720년 이후가 되면 돌궐은 당조를 중심으로 한 질서를 받아들인다.
 
비록 한계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돌궐이 보여주었던 권위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한 교역 국가로의 지향, 즉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동서로 영역을 확대해 초원과 오아시스를 결합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기초로 장악한 동서 교역로를 바탕으로 중국으로부터 구득한 물자를 유통시키려고 한 방식은 이후 큰 영향을 미쳤다. 돌궐 이후 몽골 초원을 지배했던 위구르는 그의 권위를 철저히 부정했음에도 이와 같은 교역 국가로서의 지향은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위해 위구르는 당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카라발가순 같은 거대한 교역 도시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국가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또한 10세기 초의 거란(요) 역시 동부 몽골 지역으로부터 초원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를 장악, 유지하면서 화북과 만주 등지에서 확보한 재화를 동서로 유통시키려는 노력을 적극 보여주었다. 나아가 13세기 초에 등장한 몽골은 돌궐처럼 서방 진출에 성공해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만이 아니라 주변의 정주 지역까지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과거 초원을 최초로 통일했던 돌궐을 능가해 정주 지역마저 통제하는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발돋움했다(P595).
아사나가 유목 세계의 투르크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던 노력은 그의 권위가 완전히 소멸된 뒤에도 아시아 내륙에 펼쳐진 거대한 중앙 아시아 지역에 큰 유산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사나는 초원의 중요한 유목민 세력이었던 투르크들을 통합하기 위해 과거 투르크(고차)의 상징으로 북아시아의 중요한 신화소였던 '이리'까지 차용해 그들을 하나로 묶어내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발전했던 200여 년의 돌궐사 전개 과정을 통해 '투르크'라는 강한 자의식이 초원 유목 세계 내에 형성될 수 있었다. 그 후 누구든 초원의 패자가 되려면 이것을 극복하든가, 아니면 이것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P596).
 
이 책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장점은 사료로 비단 중국의 한문 문헌만 참고하지 않고 고대 투르크(오르콘룬) 문자로 쓰인 비문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투르크 비문은 19세기 말 유럽 탐험대가 확인한 이후 연구자들의 오랜 연구 끝에 투르크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이후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돌궐은 이전 유목민들과 달리 6세기 후반 소그드인의 문자를 차용하고 680년 이후에는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였다. 사용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 일방적인 한문 자료로의 해석에서 탈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돌궐의 문자는 이후 위구르, 키르기스 등에서도 10세기까지 사용되었고 이후 거란, 서하, 여진, 몽골, 만주 등도 독자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선례를 만들었다. 단점은 (아사나 집단의 세력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내용의 구성과 책의 분량, 시간상의 제약으로 몽골 중심으로 전개된 부분만 다루어져 서돌궐의 범위까지는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 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고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정주 세력인 중국의 자료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래서 유목 세력의 역사들을 함께 고찰해야 일방적인 해석을 벗어나 빈 공간의 역사를 메우고 왜곡된 역사를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수, 당이 고구려에 몇 차례나 공격에 막히고 고구려 이후 대조영이 세력화하기까지 돌궐과 생각보다 많은 관련이 있어 흥미로웠다. 아주 유익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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