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는 온통 전쟁에 관한 기사뿐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신문은 전쟁에 관한 것 일색이었지만 전선이 달라지고 적대국이달라지면서부터 일종의 히스테리처럼 신문지면은 요란해진 것이다. 식량증산, 저축장려, 국방헌금, 유기·기타 금속류의 헌납, 지원병 독려와 아울러 동태 상황에 대한 선전, 각종 단체들은 영일(寧日)없이영미)를 성토하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연일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성전환수를 외쳐대고 있었다. 특히 지식층, 그 중에서도 글 써서 행세해왔던 문인들 문학단체들은 남 먼저, 보다 과격하게 일왕(日)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결사보국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마치 총 든 놈이 뒤에서 목덜미를 겨누고 있기라도 하듯이. 오늘 신문에도 저명한 여류시인의 시(詩) 전승부」가 실려 있었다. - P53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일으켰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격화되었다. 그러나 1943년 2월 1일 일본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하였고 4월 18일 일본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비행기 속에서 사망하였다. 2월 2일 독소전쟁의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원수인 파울루스가 항복한다. 7월 25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체포되고 같은 달 28일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이 해체되면서 침략국의 전세는 전체적으로 어두워졌다. 같은 해 조선에는 3월 1일 징병제가 공포되고 8월 1일에 시행되었다. 6월에는 학도 전시동원체제 확립 요강을 결정하고 10월에 실시되었다. 3월에는 친일 문화 단체를 통합한 반도문인보국회가 결성되었다.
8월 9일 조선식량관리령(식량의 수급 및 가격을 조정하고 배급의 통제를 목적으로 함. 정부는 매입한 미맥을 조선식량영단이나 조선 총독이 지정하는 자에게 매도하거나 기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이 공포되어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면서 식민지 조선 경제는 더욱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은 식민지의 식량을 통제하는 동시에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쓸어갔고 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가난한 대중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대중을 이끌어가야할 지식인이나 경제계 인사들은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에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이 무렵 학교에서 하는 교육이라고는 군사 훈련 과 근로 봉사였다. 결국 전쟁 예비 훈련인 셈인데 아이들을 이러려고 교육받게 한 것은 아닐텐데 참 헛웃음이 나왔다. 천으로 무슨 머리를 가릴 것이며 목검으로 무슨 싸움이 되겠는가. 막상 조선 내 전쟁이 벌어진다면 공멸이 아니였을까.
중학생, 그들은 과연 학생인가? 카키색 교복에 전투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각반을 다리에 감고 그들은 등교한다. 운동장에서는 연일 목(木)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그 지난달 그러니까 팔월에는 드디어 조선에도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조선인에게는 병역을 실시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무장시켜선 아니 된다 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유언을 했다던가 어쨌다던가.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유언을 무시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 중학교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공부 안 하기로는 여학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전보다 교련시간이 많아졌고 목검(木劍)이다, 나기나타다 하며 무술시간은 체육이나 무용시간을 완전히 점령했고 모내기에서 보리 베기, 벼 베기에 동원됐으며 폐품수집에서 국채 팔러 다니기, 센닌바리 만들어주기, 공장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군테 마무리 작업, 게다가 방학의 십일 간을 반납하고 교사부지 고르는 데 동원된 근로봉사,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고통스러운 것이 방공연습이었다. - P222
"알다시피 요즘 학생들 군사훈련 아니면 군수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노동자들 선동하기, 눈치껏 태업하기, 공장기구 파손, 변소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후미진 곳이라면 어디든 벽면에 낙서하기, 그 낙서의 종류에는 별의별 것이다 있는 모양인데 조선독립만세서부터 귀축 일본 물러가라, 해방의 그날이 오면 너희들 모가지는 추풍낙엽이다. 친일 분자의 모가지부터 비틀어버리겠다 등등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다는 거고, 하는 수 없이 학교 당국에서는 호주머니 속에 백묵이나 연필 따위가 들어 있는지 조사를 해서 들여보내는데도낙서는 줄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 애들 결코 정면 대결은 하지 않아."
"신통하군요."
"그 애들 보면 희망이 생겨, 옥쇄가 아니고 지속성이거든." - P334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조선인 아이들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오 덴노사마." 천황을 부르는 말에 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갈긴 일본인 선생에 그 학생은 반항을 했고 조선 말을 쓴다 하여 조선인 선생이 벌을 준 일이 교내에 퍼지자 학생들은 흥분하고 분개했던 일도 있었다. 여러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도 조선인 학생들은 갖은 행위로 학교 당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아이들, 학생들이 희망이다'. 이것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학교 내에는 균열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 많은 학생들을 모두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선의 악화로 학교도 예비 군사 훈련소가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선생들도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학생들을 일탈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18권에서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양현과 영광, 윤국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광은 양현이를 열망하듯 사랑했으나 윤국이의 벽을 인식하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그는 양현의 마음을 끝내 거부했고 양현은 그런 영광의 마음을 알면서도 괴로워한다. 양현은 윤국과 결혼하라는 서희의 말에 고뇌하고 윤국은 또 윤국대로 고뇌한다. 결국 셋 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양현이의 사정을 안 명희도 그 옛날 통영에서 방황하던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당시 썩은 동아줄을 잡았던 명희는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데까지 갔었기에 양현이가 자신과 같은 상황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명희는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양현을 부러워한다. 그런 점에서 명희는 여전히 과거를 털어내지 못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난다고 흉터가 저절로 아무는 것은 아니다.
욕망과 희생의 싸움이었다. 사람 속으로 뛰어들어 자기도 한몫을 하겠다는 충동과 세상을 바라보며 국외자로서 흐르는 대로 흘러가겠다는 에고이즘과의 싸움이었다. 집념과 포기의 싸움이었다. 도덕과 반도덕, 그에게는 윤국이 거대한 성(城)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더욱더 자신이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은 믿지 못할 자기 성격적 결함이었다. 제2의 혜숙을 또 만들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그의 전진에 제동을 걸었다. 영광은 양현을 사랑했으며 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강렬한 집념이었다. - P266
팽팽하게 당겨진, 결코 누그러질 수 없는 긴장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양현은 계속해서 울었다. 명희는 저도 모르게 뜨개질하다 만 것을 집어들었다.
‘언제나 그렇게 엇갈려. 왜 그렇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가고,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양현아, 실은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 P271
불안한 사랑,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러나 양현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그 불안한 사랑에 매달려 있는가를 깨닫는다. 외부의 장애보다 영광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이 그 얼마나 큰 것인가를 양현은 새삼스럽게 통감한다. 그것은 그의 처절한 외로움이며 그 외로움을 타고 흐르려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양현은 그를 꽉 붙잡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외로움을 녹여주리라! 마치 영광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러는가 하면 등을 돌리는 뒷모습에 매달리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영원히자기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그 돈암동 거리를 눈앞에 떠올려보기도 한다. - P302
윤국은 차안에 서서 피안의 양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강을 결코 건너지 못하리라는 것을, 피안에 닿지 못하리라는 것을 윤국은 깊이 깨닫는다. 양현은 양현의 길을 가고 자신은 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 P325
김두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그는 기생인 월화와 바람을 피우는데 정부가 된 서울댁(조강지처였던 막딸은 결국 호적을 팠음)은 이에 노발대발 사건은 터졌다. 그는 진주에서 음식점을 차려 두만이네 식구를 먹여 살린 만큼 지금의 김두만 부는 서울댁의 지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물론 막딸을 버리면서 부모와도 갈라서고 서울댁은 집안에서 전횡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바람 피운 것이 자랑은 아니지 않나. 그 때 막딸을 때리고 내칠 때도 '미친 놈 개자식!' 욕지거리를 했었는데 정말 끝내 이 놈은 변하지가 않는구나 싶어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허무해서 아마 그러실 거다.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고."
"허무해서 그렇다는 말엔 나도 동감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사업은 올스톱, 돈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부동산 매매나 된단 말가, 땅에서는 공출로 몽땅 나가버리니, 전쟁은 불리하고………… 현재를 실감하는 데 여자밖에 더 있어? 나 역시 그래.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 나는 출발에서부터 야망 같은 것 없었으니까, 자네들 수재하고는 형편이 달랐어. 한순간 순간을 즐기다가 가는 거지 뭐. 어차피, 땅속에 들어가 썩을 몸 아닌가." - P346
"네년이 나한테 칼을 들이대 놓고서도 그 자리가 온전할 것 같나? 독사 같은 년, 내가 그거를 모리고 이날까지 살았제. 만정이 떨어진다." 또 서울네는 새우같이 등을 꾸부리고 앉아서 눈을 치뜨고 두만을 노려본다. 힘이 다 빠져서 입도 몸도 뜻대로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는 어디 마음 놓고 집이라고 찾아오겠나? 저년은 서방 밥그릇에 비상 타고도 남을 년이다. 생각해보믄 저년으로 인해서 부모 형제하고 등졌고 죄 없는 제집 민적까지 파고 자식 놈은 저 모양..…………."
새우처럼 꾸부리고 있는 서울네 등이 튀듯 움직였다. - P352
어느덧 1943년을 지나고 있다. 19권은 보나마다 더욱 각박해진 전황 때문에 암울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도시에는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아래, 얼음 갈라지는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서늘하고 푸른 하늘 아래,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군상들, 누더기 같은가 하면 곤충 같기도 한 군상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혹은 같이하며 가고 있었다.
낡은 상자 같은 트럭이 달리고 짐 실은 우마차도 지나가고 있었다. 여인을 신이 만든 꽃이라 했던가, 자연의 열매라 했던가. 꽃으로도 열매로도 볼 수 없는 몸뻬 차림의 우중충한 모습들, 남자들은 한결같이 카키색, 사람들에게는 계절이 없었다. 배급소에서 식량을 달아주고 배급표를 챙기는 그 현실만이 있었을 뿐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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