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2권은 1권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다.
초반에는 한나라 초기 공신들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왕에게 아첨했거나 전투에서 공은 세우는데애만 목적이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창이나 역생, 육가, 유경은 호(好) 쪽에 가깝다면 부관, 근흡, 주설은 한나라 고조 곁에서 신하로 봉호를 받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숙손통은 초한 전투 때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사람이고 계포도 그 싸움에서 유방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장수였는데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 중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직언과 간언을 한 아래와 같은 이들이었다.
역이기(역생)은 출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한 방 먹였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때 패공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발을 씻고 있는 상태였다. "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은 자세로 나이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패공은 바로 발 씻던 것을 그만두고 의관을 정제하고 상석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역생은 관직에 등용되었고 사신으로 제나라 왕과 재상을 상대로 협상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꿇리지 않고 지략과 담대함을 보여 설득해서 이익을 얻어내었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많이 하였다. 강후 주발이 황제 앞에서도 위아래 구분을 못하고 교만함을 보이자 그가 공신이지 사직의 신하는 아니라며 따끔히 일침을 가했고 회남왕이 시무의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촉 땅으로 보냈을 때 강직한 성품에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고 간언했다(결국 회남왕은 가는 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마음 아파하는 황제를 보며 회남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삼게 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권세를 누렸지만 그만큼 질시를 많이 받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최후도 정적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 법 집행을 맡고 있었던(정위) 신하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다리 아래에서 뛰어나와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석지는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벌금형에 내렸는데 황제는 "이놈이 내 말을 놀라게 했고.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벌금형?" 그 말에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한쪽으로 기울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라는 말로 폐하를 납득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법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리 열전'과 '혹리 열전'에서는 순리(청렴한 관리)와 혹리(포악한 관리)를 비교함으로써 관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당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태도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무제 때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관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나라는 혼란한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서 관리들이 뒷주머니를 차고 도적이 횡행하였으며 농민 봉기가 폭증하였다. 법령과 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적당한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상깊게 본 주제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한나라 주변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흉노 열전'은 개인적으로 사마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노 정벌은 한 무제의 치적으로 주로 이야기되지만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제가 관리를 잘못 기용했다는 비판도 들어가 있다(물론 이 때 활약을 한 위청, 곽거병 장군 같은 인물도 있다).
'남월 열전'은 진나라 말기에 조타가 자칭 왕이라고 나섰던 곳인데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되는 남월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동월 열전'은 남월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월 지역인데 지금의 복건성 지방의 이야기다. 진나라 말 반란 세력이 들고 일어설 때 이 지역도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할 때 이 지역에 왕을 봉하게 되었다.
'조선 열전'은 기자 조선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위만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한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남이 열전'은 '서이'와 '남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등 서남쪽인데 중원에서 먼 데다 소수 민족으로 중국 전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어서 문화적으로 황무지라 여기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고 부락의 개수도 많다. 한 무제 때 확장 정책을 이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원 열전'은 지금의 티베트 분지 지역으로 한혈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무제가 이광리를 보내 정벌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장건의 서역 행로와 겹치기 때문에 관련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열전들의 특징은 이 곳 땅과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할 때 중원은 사실 영역의 범위가 넓지 않은데 진/한나라를 둘러싼 다양한 지역의 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하다(물론 오류도 있겠지만).
의술과 점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 창공 열전'의 편작과 창공은 명의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편작은 진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였고 침을 놓는 일, 탕약을 짓는 일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창공은 편작에 영향을 받았고 그에 버금가는 명의였으나 편작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편은 이 시기 한의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당시 실제 환자의 상태로 맥을 짚고 병명을 진단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서 '일자 열전'과 '귀책 열전'도 흥미로웠는데 바로 점술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역사에서 점술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인데 아마도 고대 사람들은 하늘, 거북이 등껍질, 시초 등으로 운을 점치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자'는 하늘의 상태를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귀책'은 거북 껍질과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다. 일자는 한나라 때 아주 성행했고 귀책은 은/주 나라에서 성행했다(갑골 문자를 생각해보셔도)
협객과 장사꾼 이야기도 있다. 사마천은 둘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협객 이야기는 '유협 열전'에 실려 있다. 사마천이 생각하는 협객은 내가 생각하는 협객보다 범위가 더 컸다. 통치 계층의 악행을 도와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자도 협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만 협객이라고 생각했었다. 협객(유협)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타고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진한 통일기가 되면 타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장사꾼 이야기는 '화식 열전'에 실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인 것이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상업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장려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역의 나라 별로 땅의 특성에 따라(습기, 바람 등) 어떤 산업이 발달했는지 기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중국 진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의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넓은 땅,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가 여전히 필독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 그리고 사기 열전이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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