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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기본기

category 리뷰/책 2023. 3. 13. 15:06
사마천의 사기를 언젠가는 정독해봐야지 했었다. 처음 구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통독을 했었고 이제 정독을 할 때가 되었다 싶어 읽게 되었다.
 
<사기>는 오제 시대부터 한 무제까지의 중국 고대 시기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사기는 대표적인 기전체 역사서로 편년체 역사서와 구별된다. 편년체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주욱 나열하는 방식이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본기, 세가, 열전, 표, 서(또는 지)의 구조로 백과사전과 같이 분류한 방식이다. 때문에 기전체 역사서를 읽을 때는 각 편만 읽어서는 안 되고 본기, 세가, 열전을 함께 읽어야 그 흐름이 완성된다.
역사적 시기를 구분해보았을 때 서주 건국이 될 때까지, 전국 시대, 진나라와 한나라 사이의 시기, 한나라 무제 이후의 시기의 역사로 나눌 수 있다. 
  
재미로만 따지면 군상들이 담긴 <사기열전>부터 읽으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나는 <사기본기>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사기본기>는 제왕들의 전기를 엮은 것이다. 오제 시기부터 진나라 통일 이전까지는 오제, 하, 은, 주, 진으로 나라별로 나누어져 있고 이후에는 인물별로 실려 있다. 본기의 목차를 보다가 놀라운 지점이라면 단연코 항우와 여태후가 그것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여태후는 유방, 한 고조의 아내로 그가 죽고 나서 혜제 이후 황제는 있었으나 실권을 장악하고 통치를 했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는 않으나 항우가 본기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놀랍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마천은 유방을 마지막까지 괴롭힌 항우를 고조 본기 앞에 두었다. 그만큼 한 고조와 그의 시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태사공은 말한다. "효혜황제와 고후의 재위 시절, 백성들은 비로소 전국 시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군주와 신하가 전부 쉬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혜제는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고후가 여주인으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해 정치가 방 안을 벗어나지 않았어도 천하가 편안했다. 형벌이 드물게 사용되어 죄인이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사에 힘쓰니 옷과 음식은 더더욱 풍족해졌다." - P407
(태사공은 여태후를 이렇게 평가했으나 사실 여태후는 득보다 실한 평가가 많다. 인정이 없고 잔혹하며 사사로이 형벌을 감행했다는 등이다.)
 
 
역사서는 사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고 편집할 때는 한 무제 시기였다. 그는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포위당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분노를 사서 궁형의 치욕을 받았다.  사기의 편명 각 말미에 '태사공 평'을 넣음으로써 본인의 사관과 해석을 뚜렷이 하였다는 점을 참고하며 읽어야 한다.
 
역자가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효경 본기'와 '효무 본기'는 위작 논란이 있는 항목이다. '효경 본기'는 앞의 사마천의 본기와는 문체가 다르게 밋밋하게 쓰여져 있다. '효무 본기'는 당대 시기에 쓰여졌는데 죽지도 않은 사람에게 '효무'를 붙인 것이 이상하고 개인적으로도 원한이 있을 법한데 이리 사적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효무 본기'를 읽어 보니 무제의 치세에 대한 관련된 기록보다는 신선을 찾았다는 이야기, 봉선을 행하는 기록에 치우쳐 있다. 향후에 <사기세가>와 <사기열전>,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크로스체킹을 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본기>는 인물 전기이지만 <세가>와 <열전>보다는 더 건조하게 쓰여져 있다. 물론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보다는 인물과 관련한 일화들이 담겨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기본기>는 '항우 본기'가 백미다. 뒤에 '고조 본기'가 나오지만 같은 사건을 두고도 '항우 본기'는 풍부하게 쓰여져 있다면 '고조 본기'는 밋밋하고 건조하게 쓰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우 본기'의 사실의 진위 여부는 둘째치고  여기에만 실려 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후대에 쓰여진 역사서에 대부분이 '사기'를 참고했다고 한다. 항우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른 역사서에는 없는 인물들도 있음)와 명문장을 보는 즐거움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본기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항우 본기'만큼은 읽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군대를 일으킨 이래 지금까지 여덟 해 동안 직접 칠십여 차례나 싸우면서 맞선 자는 쳐부수고 공격한 자는 굴복시켜 이제껏 패배한 적이 없었기에 드디어 천하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결국 이곳에서 곤경에 처했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한 탓이 아니다. 오늘 죽기를 굳게 결단하고 그대들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 기필코 세 차례 승리하고, 그대들을 위해 포위를 뚫으면서 적장을 베어 죽이고 적군의 깃발을 뽑아 버림으로써 그대들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 P325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은 비록 좁지만 땅이 사방 천 리이며 백성들 수가 몇십 만이니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합니다. 대왕께서는 서둘러 강을 건너십시오. 지금 오직 저에게만 배가 있어 한나라 군대가 도착해도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항우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강을 건너겠는가! 나 항적이 강동의 젊은이 팔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설사 강동의 부모와 형제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설령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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