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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국철학사 (하)

category 리뷰/책 2022. 9. 2. 14:02

중세와 근대의 철학은 대체로 각 시기의 경학 또는 불학에서 찾아야 한다. 중세와 근대는 각 시기마다 경학이 달랐던 만큼 상이한 철학이 생겼는데, 각 시기의 철학이 달랐기 때문에 상이한 경학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경학과 불학 내의 각 종파는 대체로 각기 그 전성기가 있었다. 고대 자학시대의 사상은 횡적인 발전이 더 두드러졌다면, 중세와 근대 경학시대의 사상은 종적인 발전이 더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 P6

서양의 학설이 처음 동쪽으로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 예컨대 강유위 무리는 여전히 그것을 경학에 부회하여 낡은 병에 극히 그 새로운 술을 담으려고 했으나, 낡은 병은 용량을 늘리는 일이 이미 한계에 달한 데다가 또 새 술이 아주 많고 극히 새로웠기 때문에 결국 터졌던 것이다. 경학의 낡은 병이 터지자 철학사의 경학시대도 끝이 났다. - P7

중국철학사 상권은 자학시대를 다루고 있었다면 하권은 경학시대를 다룬다.

상권은 공맹을 비롯하여 중국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았다면 하권은 기존의 사상가들의 저작을 해석한 여러 명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우리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대의 인물들이라 낯익은 이름들이 많았다.
하지만 복병은 있는 법. 하권 시작하자마자 도학의 기초가 된 저서인 주역의 이론이 등장하여 머리가 아팠다. 해석하려다 이는 단기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중서는 전한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은 사상을 대표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그의 저작은 모두 경학의 의미를 해명한 것들인데 특히 『공양춘추』는 음양의 학설을 담아냄으로써 유자들의 영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동중서의 성설(性說)은 한편으로 맹자와 순자를 조화시킨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동중서 역시 사람의 바탕에는 본디 선단(善端:선의실마리)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의 설은 사실상 맹자의 성선설과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동중서는 성 속에 겨우 선단만 있는 까닭에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 P32

전한시대 경학자들은 음양가의 말을 빌려 유가의 경전을 해석했다. 『역(易)』은 본시 시초점)에 쓰인 술수(數)의 일종이었던 만큼 그런 해석을 수용하기가 더욱 쉬웠다. 소위『역위(易緯)』가 바로 그 방향으로 『역』을 해석한 것으로서, 전한시대 중엽 이후 ‘위서(書)‘가 출현했다. 이른바 "위(緯 : 씨줄)"란 "경(經:날줄)"에 대한 말이다. 위서 외에 또 ‘참서(書)‘가 있다. - P75

중국의 상수학은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설과 비슷하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수"는 제일 원리로서 존재하는 사물의 질료인(material cause)이고, 수의 요소는 홀수와 짝수를, 홀수는 유한이자 속성과 상태를 구성하고 짝수는 무한을 나타낸다. 하나로부터 둘이 나오고 하나로부터 모든 수가 생기며 온 우주가 모두 수라고 생각했다.

음양가의 주요 동기는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우주 만상을 포괄하고 또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 있었다. 비록 그 방법이 틀렸고 그 지식은 엉성했으나 우주간 여러사물을 체계화하여 우주간 여러 사물의 존재 이유(所以然)를 알려고 했으니 진실로 과학정신이 있었다. - P106

우주를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쨌든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놀랍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검증하는 일이다. 과학은 반증가능성이 있으므로 언제나 새로운 이론으로 교체되기 마련이다. 나중에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해서 과학이 아닌 것은 아니다.

전한 시대에 음양가를 대적하는 학파가 있었는데 그들이 고문학파다. 고학은 고문학의 경학이다. 고학을 주장한 이들은 경을 해설할 때 공자를 "스승"의 지위로 되돌린 사람들이었다.
다만 전한 말 후한 초는 위서와 참서의 전성기였으므로 도가 학설이 부흥하였다. 고대 사상 중 노자를 비롯한 도가가 활개를 쳤다고 볼 수 있겠다. 

대인 선생이 있었는데 천지를 하루아침으로, 만백년을 순간으로, 해와 달을 창문으로, 광활한 대지를 뜰로 여겼다. 지나다녀도 흔적이 없었고, 거처는 집도 오두막도 없었다. 하늘을 천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아 마음 내키는 대로 행했다. 머무를 때는 술병을 잡고 술잔을 들었으며, 거동할 때는 술통을 휴대하고 술병을 쥐었으니, 오직 술에만 힘썼고 그밖의 일은 개의치 않았다. - P171

우선 현재의 삶을 즐기면 되지 무슨 겨를에 죽은 뒤를 생각하랴? - P176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유가에서 중요시한 도덕과 관습의 속박을 거부하고 인생의 중요 가치를 쾌락에 두었다. 이는 서양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견줄 수 있겠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행복의 도에 이를 수 있을까? 나만 산다면 가능하겠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사는데 쾌락만을 좇을 때 충돌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가를 자유분방함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정작 노자와 장자는 자연주의를 주장했을 뿐이지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노자는 자연주의, 장자는 자연주의에서 신비주의까지 결합한 형태로 자신들의 사상적 얼개를 세웠다. 

천하에 서로 피차 관계 아닌 것은 없고, 피차 모두 자신을 위하므로 마치 동서로 갈라지듯 서로 상반적이다. 그러나 피차는 서로 이와 입술 관계에 있다. 이와 입술은 서로 상대를 위하고 있지 않지만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 - P196

무위(無爲 : 억지로 꾀하지 않음)란 조용히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각자 스스로 꾀하게(自爲) 맡겨두면 성명(性命)은 평안해진다는 말이다. 부득이(不得已)함이란 위협적인 형벌로 핍박한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도의 순수함을 견지하고 필연의 법칙에 맡기면 천하는 저절로 복종한다는 말이다. - P203

감추어두지 않고 모두 그대로 맡겨두면 사물과 더불어 합일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항상 변화와 합일한다. 따라서 안도 없고 밖도 없으며 죽음도 없고 삶도 없이 천지와 일체가 되고 변화에 합일하면 달아날 곳을 찾아도 찾을 수 없다. - P225~226

남북조시대가 되면 중국에 불교가 수입된다. 한반도는 이때 삼국시대였고 고구려에서 불교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이래 백제, 신라도 불교를 수입하게 된다. 이후 중국은 송대 초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사상의 중심을 이끌게 된다. (한반도도 마찬가지. 고구려, 백제, 신라도 그렇고.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 당시의 중국인들은 불교철학을 접하고는 우선 그것을 중국철학 고유의 술어로 번역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다. 불교철학을 선양한 사람들도 반드시 불교철학의 사상을 중국고유의 철학 술어로써 설명해야 중국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을 당시에 "연류(連類)" 혹은 "격의"라고 불렀다. - P235

수당 시대 무렵이 되면 걸출한 불가 학자들이 등장한다. 길장, 현장, 법장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다. 

불가의 학자들은 홍황사의 도랑의 가르침을 받들어 세 단계의 이제 이론을 수립했다. 제1단계 이제는 유(有)라고 말함은 세제이고, 무(無)라고 말함은 진제임을 밝힌다. 제2단계 이제는 유라고 말하고 무라고 말함은 모두 세제이고, 유도 무도 아니다고 즉 둘이 아니다고 말함이 진제이다.……제3단 - P294
계 이제의 의미는 이제란 ‘유’·‘무’는 둘(二)이면서 또 ‘불이(不二)’도 아니다는 것이니, 둘이라고 말하고 둘이 아니다고 말함이 세제이고 ‘둘이 아니고‘ ‘불이도 아니다‘고 말함이 진제이다. 이렇듯 이제는 세 단계가 있어서모든 설법은 반드시 이제에 의거하고, 모든 발언은 이 세 단계를 벗어나지않는다. - P295

현장이 서술한 유식 사상의 핵심은 "환화인은 참된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있었다. 각각의 핵심이 달랐던 만큼 강조한 내용도 달랐다. 현장 역시수행자의 성불 이후의 활동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언급하지않았는데 강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단지 일부의 사람에게만 부처의 무루종자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람마다 모두불성이 있고 사람마다 모두 성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식(識)이 "의타기(依他起 :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남)"이니 그 속의 종자도의타기일 것이므로 한 번 생성되어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수는 있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성불할 가능성은 다르다. 또 그가 말한 수행은 반드시 일정한 단계가 있었으니 돈오(頓悟)가 아닌점수(漸修)를 주장한 셈이었다.
당시에 현장이 논한 불학을 그르다고 여긴 사람이 있었는데 법장(法藏, 643-712)이 그 대표자이다. - P334

법장은 하나의 영원불변한 진심을 세워 일체 현상의 근본으로 여겼으니, 그의 설은 하나의 객관적 유심론이다. 주관적 유심론보다 객관적 유심론이 [소박한] 실재론에 가깝다. 그 설에 따르면 객관적 세계가주관을 떠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객관적 세계 속의 각각의사물은 모두 진심 전체의 현현이므로 그것의 진실성은 상식에서 진실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우월하다. 법장이 말한 공은 현장이 말한 공의 공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또 법장의 말에 따르면 "사(事)" 역시 당연히 존재하는 것인데, 이것은중국인의 사상 경향이기도 하다." - P353

진·수(陳隋) 무렵의 지(智顗, 538-97)는 불학의 한 종파의 대사로서 지자 대사(智者大師)로 일컬어졌다. 그 종파는 지의가 천태산(天台山)에 살았으므로 천태종(天台宗)으로 일컬어졌고, 또『법화경(法華經)』을 근본 경전으로 삼았으므로 법화종으로도 일컬어졌다. 이 종은 혜문(文)이 제1조(祖), 혜사(慧思, 515-77)가 제2조, 지의가 제3조이다. 지의는 이 종을 선양 발전시켰고 저술도 매우 많지만 그 내용은 주로 수행방법이고 철학적 흥취가 있는 것은 별로 없다. - P355

송명 도학은 당나라 시대 한유(768-824)와 이오(7723-841)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오의 학설은 불교가 끼친 영향이 아주 컸다. 이오와 송명 도학자들은 사람들이 유가의 부처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불학을 유학에 가져오면서도 불학은 배척하였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도학자로서 도교사상을 도학에 도입한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주렴계(1011-77)와 소강절(1017-73)이다. 
주렴계는 주돈이로 잘 알려져 있으며 「태극도설」로 유명하다. 「태극도설」은 도사들이 수련 때 사용하는 「태극도」를 가지고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송명 도학파 내의 대표작이라할 수 있다.

「태극도설」은 오행을 "5기"라고 했고, 「통서」는 음양을 "2기"라고했다. 즉 염계는 음양오행을 모두 기로 여겼다는 말이다. 「통서」의이 구절 이름이「리성명(理性命)」장이므로 소위 "하나"란 리이고 또한 태극이다. 태극은 리이고 음양오행은 기이다. 리·기 두 관념은 송명 도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데, 그 의미는 주희에 이르러 비로소 상세히 설명되었지만 염계가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하겠다. - P448

"건도(乾道)의 변화에 의해서 [만물은] 각기 본연의 성(性)과 명(命)이 바르게 될 때" 성(誠)은 수립되며 순수 지선(純粹至善)하다. 따라서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바로 도이다. 도를 계승한 것이 선이고 도를 성취한 것이 성이다"고 했다. 원형(元亨 : 즉 사물의 발전단계)은 성(誠)의 통철함이고 이정(利貞: 즉 사물의 성숙단계)은 성의 복귀이다. 위대하다, 역이여! 성명(性命)의 근원이다. - P449

역설은 도교 내에 붙어서 전수되다가 북송 때 이르러 도학 안으로 도입되니 그것이 상수학이었다. 소강절의 세계연표는 역의 수를 바탕으로 천지의 시작과 끝을 규명하였다. 그 이전 도교나 불교에는 찾을 수 없었던 놀라운 사상이었고 이후의 도학자들의 우주발생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실 초반에 역설의 이론에서 '양의', '4상', '8괘', '64'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소강절의 태극도의 원리를 보고서야 비로소 눈이 좀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태극이 분화되면 양의(兩儀)가 수립된다. ‘양‘이 아래로 ‘음‘과 교합하고 ‘음’은 위로 ‘양’과 교합하여 4상(四象)이 생긴다. ‘양‘은 ‘음‘과 교합하고 ‘음‘은 ‘양‘과 교합하여 하늘의 4상을 낳고, ‘강’은 ‘유’와 교합하고 ‘유’는 ‘강’과교합하여 땅의 4상을 낳는데, 여기서 8괘가 이루어진다. 8괘가 서로 섞이게 되면 만물이 생긴다. 그러므로 1은 2로 나뉘고, 2는 4로 나뉘고, 4는 8로 나뉘고, 8은 16으로 나뉘고, 16은 32로 나뉘고, 32는 64로 나뉜다. 즉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면서 교대로 ‘유’·‘강‘이 작용하여 역(易)의 여섯 위치가 완전히 드러난다. - P458

장횡거(1020-77)는 주렴계와 소강절과 거의 동시대에 사람으로 불교와 도가를 전전하다 육경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기에도 성이 있다 주장하였다. 

만물은 곧 기가 모인 현상이다. - P481

정명도(1032-1107), 정이천(1033-1107)은 송명 도학을 완성한 이들이다. 정이천은 리학, 정명도는 심학을 주장하였다. 스승이 주렴계였으며 소강절은 친구, 장횡거는 친족이었다고 한다. 

세계의 사물은 모두 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리가 있으니, 하나의 사물에는 반드시 하나의 리가 있다. - P500

명도가 말한 천리나 리는 구체적 사물의 자연적 추세이니 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 도학 내의 심학 일파는 모두 리는 사물을 떠나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 P506

정이천은 리란 영원한 존재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이기에 보편적 준칙으로 보았다. 반면 정명도는 사물 안에 리가 존재하므로 기 속에 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주자(1130-1200)는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 이정(정이천, 정명도)를 집대성하여 리학(理學)을 완성한 도학자이다. 
그는 유가 경전인 사서를 주해하였고 선대 사상을 포괄적 체계로 만들어 도학을 집대성하면서 중국 뿐 아니라 한반도, 일본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자의 형이상학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기초로 소강절의 수(數), 장횡거의 기(氣), 이정의 리(理)와 기(氣)의 구분 등을 융합한 것이다. 

주자가 리학을 집대성했다면 육상산(1139-93)은 심학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상산은 어려서부터 이천과는 다르지만 명도와는 아주 가까웠다. 명도는 「식인편(識仁篇)」에서 "배우는 자는 먼저 인(仁)을 인식해야 하며", "그 리를 인식하고 성(誠)·경(敬)으로 보존하면" 만사 그만이다고 여겼는데, 상산의 설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 P570

청대(淸代)에 이르면 시대의 기풍은 한학(韓學)으로 바뀐다. 한학은 공맹 성현의 도의 참 의미를 알려면 한인(漢人)들이 해설한 경전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도학과는 다른 경향인 금문경학파는 19세기 서양의 입김이 강해지고 전통 사회가 동요하던 때 공자를 성인의 위치로 추앙시키면서 옛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강유위가 있다. 

강유위의 사상에 내재된 시대적 특징은 "격의(格義)"로 볼수 있다. 두 문화가 접촉하는 초기의 외국 문화 수용자는 흔히 수용한 외국 문화의일부 측면을 즐거워하며 중국 문화의 어떤 측면과 견강부회하는데,………이런 부회가 "격의"이다.……………강유위는 유신변법의 각 주장들을 제시할 때 항상 "탁고개제"의 방법을 써서 그의 추진 내용이 결코 서양 신문화의 채용이 아니라 도리어 공자의 교의의 실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래 문화와 대항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가치를 찬양했다. 그러나 그의 찬양은 오직 그것이 공자의 삼세설의 교의에 부합한다는 점에 한정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옛것을 가지고 새것을 해석했고 중국 고유의 문화적 안목에서 서양 전래의 문화를 비평했다. - P682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중국의 사상 기반이 된 것은 음양가, 도교와 도학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유학일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건 중국 여행을 하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었는데 미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 점괘 등이 현대 중국인들에게 일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작을 즐기고 어떤 일이 닥치면 점괘를 치는 것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한국도 민간 신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무당을 부르고 정화수 떠놓고 산신님께 비는 형태로 일상을 살았을 사람들. 불교가 도입되고 이후에 유교가 퍼지고 천주교, 기독교 등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신앙은 겹겹이 쌓였다.)

주렴계, 소강절, 이정(정이천, 정명도), 주자가 나오기 이전까지 도교와 불교가 중국 사상계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해 있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중국철학사를 마무리한다. 이 책을 통해서 중국사를 읽을 때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읽을 때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그 나라의 사상을 아는 것은 기초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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