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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토지 2

category 리뷰/책 2022. 9. 2. 14:03

말미에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등장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최치수, 김평산, 귀녀, 칠성, 강포수 간에 얽히고 설킨 관계는 이것이 그나마 나은 것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하여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무엇보다 함안댁의 운명이 너무 기구하고 슬펐다.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되려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떳떳해야 할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목청 높은 이에게 희생되는 것. 누구 탓을 해야 할까? 

2권은 역사적 배경이 1권과 멀지 않고(1897년~1899년) 책의 내용상 인물 간에 사건에 집중하여 역사적 사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느 세월이든 본시의 것을 오래 지키는 쪽은 서민인가 하오. 지금 친일하여 삭발하고 양풍을 따라 의관을 바꾼 사람들은 모두 양반들 아니겠소? 제 나라 백성 다스리는 데도 남의 힘, 제 겨레를 치는 데도 남의 힘, 그럴 때의 체통은 불관지산가 본데, 허 참, 이야기가 빗나갔소이다."

 "서울서는 만민공동회라던가 관민공동회라던가? 뭐 그런 것이 생겼다 하는데 대체 그것은 무엇이오? 말로는 고관대작에서부터 아녀자 백정까지 한자리에 모여 시국을 논했다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사실인가 보오. 갑신변란 때 미국으로 달아난 서재필이란 사람이 돌아와서 만든 독립협회라는 게 있지 않소. 그 단체에서 꾀한 일인 모양인데 이게 또 기승을 부린다면 장차 왕실이 위태로워질 것인즉, 게다가 상감께서는 개화당을 싫어하시는 터라 그 왜 참의대신 조병식이 보부상들을 긁어모아서 만든 황국협회, 그 단체에서 무리를 풀어서 만민공동회를 쳐부술려고 습격을 했다는 소식이오. 세상이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소이다."
 "허 그것 참 야릇한 일이오. 한쪽에는 아녀자에서 백정까지 끌어들이고 한쪽에서는 보부상들이니 이거 천민들이 세상을 만났구려."
 "세상을 만난 게 아니라 반 식자(半識者)와 권력자들의 고깃밥이 된 거지요."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만들고 만민 공동회와 관민공동회가 일어난다. 하지만 황제는 늘어나는 백성들의 요구에 긴장했고 황국협회를 조종하며 독립협회에 맞서게 했다. 

"스스로 주인되어[自主] 스스로의 의지대로[自由]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독립(獨立)'이라 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화합하고, 여러 사람의 힘이 굳게 뭉치는 것을 '협회(協會)'라 한다. 아! 우리나라는 4천 년의 독립국이다. ... 안으로는 기운차게 일어나고, 밖으로는 외적을 침입을 막아내려는 것이 이 회(會)의 본래 뜻이다. <대한계년사 4권 - P199)>

등짐장수란 이름이 나라 안에 가득 차고 퍼져, 위로는 벼슬아치와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염치없는 종부치와 천한 무리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상무사에 투신했다. 무리를 지어 재빨리 상무사로 달려가 한패거리가 되어 서로를 비호하면서 온 나라와 백성들에게 끼친 폐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대한계년사 5권 -71p>

- 대한국 국제를 정하다.
8월 17일 지시하였다. 같은 날 법규교정소 총재 윤용선, 의정관 서정순 등이 나라의 제도 9조를 아뢰었다. 
제1조, 대한국은 세계의 온 나라가 공인하는 자주독립의 제국이다.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해 내려왔고, 향후 영원히 내려가도 변치 않을 전제 정치이다. <대한계년사 5권 -73p>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고 개화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많아지면서 백성들의 의식도 깨어나고 있었다. 독립협회는 이 흐름에 발맞추었고 여기에 백성들은 호응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다만 고종은 황제로 등극, 전제군주정 체제를 등장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요구와 반대로 갔다. 백성들이 깨어나고 들고 일어나는 것을 고종은 국가를 전복하는 세력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전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며 나라가 뒤집어졌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일을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독립협회가 추진한 일들은 조선의 마지막 개화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실패하면서 조선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상실되고 만다. 이 이후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미 조선의 국운은 기울었다.


이동진은 마을을 떠나기 전 최치수를 마지막으로 찾는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당시 혼란스러운 정세와 양반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임금께서 아라사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신 뒤 아라사나 그 밑에 빌붙은 놈들이 한판 자알 놀더니만 요즘엔 왜국도 세력을 만회하여 아라사하고 함께 나누어 먹기를 궁리들 하는 모양인데 모처럼 뜻을 세우긴 했으나 자텐 길이 허행이나 되지 않을란가?

이 마을에 김훈장이라는 미친 사람이 있어서 국모 살해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노상 짖어대는 모양인데 자네도 그 등속인가?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나라 망하고 충신이 난들 무엇하리오."

 "상민들이 부러울 때가 있지."
 "어려울 것 없다. 의관을 벗어버리면 될 거 아닌가. 머릴 깎으면 중놈이 될 것이요, 칼 들고 푸줏간에 들어가면 백정이 될 것이오."
"말 말게. 기백 년 세월 동안 골수에 박힌 생각은 어느 나무에다 걸어놓고? ...
선비들이라고 모두 다 지조 있는 인물이 아닌 것같이. 개중에 슬기 있는 놈도 있어서, 오늘같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쓸모없는 글자로써 꺼멓게 먹칠이 된 식자(識者)의 머리보다 천만 가지의 이치는 모르더라도 한 가지 이치에 눈을 뜬 상민들의 외곬으로 치닫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뜻이야. ... 
원군을 보내주지 않아서 왜군한테 패하고 돌아온 김백선이 분을 못 참고 안승우에게 칼을 빼어 들이대었다 해서 엄한 군율로 다스린 의암 선생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강직한 성품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상민을 부러워하는 이동진의 말은 솔직히 신빙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치수는 양반의 권위 의식에 목을 매는 자였고 오히려 그런 그가 가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들이 과연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상민 이하의 백성들을 부러워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양반은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 했고 그런 특권이 부러운 상민들 중 많은 이들이 족보를 구매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양반이 되었던 것이니 말이다.

유림들은 철저히 봉건의 가치를 고수하려는 의지를 드러냈고 단발령에 극도로 분노하며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데 의병 내부에도 신분적 차별에 따른 갈등이 존재했다. 

김백선은 전투가 있을 적마다 앞장을 서서 의병의 모범이 되었다. 수안보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고 이어 충주 공격에 나섰다. 당시 충주에는 김규식이 새로 관찰사로 부임해 일본군과 함께 의병 토벌에 나서고 있었다. 김색선이 선봉장으로 충주성을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중군장인 안승우가 의병을 이끌고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김백선과 포수들은 용감시 싸워 충주성을 점령하고 김규식을 처단했다. 이어 전선을 끊고 달아나는 일본군을 추격해 사살했다. 그후 가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반격을 개시해 의병에게 타격을 입혔다. 김백선은 남은 부대를 이끌고 제천으로 달아났으나 후원군으로 오기로 약속한 안승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김백선은 제천 독락성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던 유인석에게 칼을 들고 서울 진격을 요구했다. 유인석은 김백선이 상민으로서 양반에게 대들어 질서를 문란케 했다며 처형했지만 정작 군율을 어긴 안승우는 불문에 부쳤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9 - P70>

김백선은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의병을 일으킬 생각을 한다. 마침 안승우 등이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1896년 1월 휘하에 있던 병사를 데리고 합류하였다. 유인석이 이후 지휘를 맡아 김백선에게 선봉장 역할을 맡기고 충주성 전투 등에서 활약을 보인다. 이후 일본군을 공격할 때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패배하자 김백선은 당시 중군장이었던 안승우에게 항의하였다. 하지만 군율을 어겼다는 죄명을 받아 처형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작 하나로 뭉쳐 싸워야 했던 의병들도 내부에서 각자의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1년 간 피신해 있는 동안 정부의 관료들은 러시아에 빌붙는 이들이 많았다.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승리하고 러시아와 세력 균형이 일어나면서 일본에 빌붙는 이들도 있었다. 

광무개혁과 독립협회의 역할은 어느 쪽에 더 의미와 무게를 두느냐를 놓고 훗날 역사학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한국근대사산책 3권 - P113>
'근대'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전제된다면, 그리하여 '식민지 근대'와 '자주적 근대'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을 이유가 없음을 확인한다면, 자본주의 근대화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수탈과 착취와 반동, 그리고 처벌과 학대를 동반하였음을 고려한다면, 대한제국과 광무개혁을 더도 덜도 아닌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계급이 주도하여 마지막으로 시도한 근대화 개혁, 또 그 과정과 결과로 성립한 국가체제'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이론 주장이 제기되지만, 어떤 논쟁에서건 멸망에 이른 왕조라는 결과론이 행사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한국근대사산책 3권 - P115>

고종하면 이태진 교수가 떠오르는데 그는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꺼져가는 조선의 불꽃을 살리고 현명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듯해서이다. 물론 어쨌든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내부 개혁을 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의 나라에는 기득권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 아닌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대한제국 내에서 일본의 힘은 막대하게 커진다. 토지 뒷 편에서 이 부분도 다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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