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책]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category 리뷰/책 2022. 8. 30. 07:29

우리는 매 순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산다. 그때마다 생각해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 P217

융합은 객관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사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을 '트랜스버설(trans/versal)'이라고 하며, 횡단(橫斷)으로 번역한다. 단어 그대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가로지름(crossing)은 수직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고 재생산하고 다른 의미의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다. - P21

정희진은 글쓰기를 위한 방법론으로 융합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융합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융합은 더하기도 아니고 하나로 합치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의 반대말도 아니다. 이는 crossing, 경계넘기다. 그녀는 횡단의 정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융합(횡단의 정치)과 공부라는 키워드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융합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특히 2장의 테마는 공부가 주제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 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 P98

저자는 공부가 중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1% 이하일 정도로 높지만 문해력은 다르다.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럼 지식을 쌓으면 문해력이 증가하느냐? 그건 아니다. 문해력은 가치관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지식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 "나는 고학력자고 많은 것을 아는데 (여성들이) 하는 이야기는 못 알아먹겠으니 너희들이 잘못인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면 문해력이 갖춰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공부를 해오면서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판단중지'였다. 멈추지 않으면 자기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나가니 얻는 것이 있다고 해도 적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질문이나 문제를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빨리 결론내려고 한다. 그런데 공부는 질문을 찾고, 품은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오래도록 모색한 끝에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알고는 있는데 막상 항상 놓치는 부분이다. 나의 공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침이고 이는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인 것 같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 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 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 P138

저자는 공부 방법으로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쓰기 도중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책을 읽고 리뷰를 쓰지 않으면 기억의 휘발성이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책은 읽고 나서 기억 속에서 잊힌다. 하지만 리뷰를 쓰고 쓰지 않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읽은 부분에 대해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배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쓰기로 화두를 던졌다면 그것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왜 세계관이 학과로 축소되어 게토(ghetto)화되었을까.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학과'로 불리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학과는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관점이자 사상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분과 학문에서 이미 융합되었고 학문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신분석, 여성주의, 미학, 문학, 미술, 역사학, 사회학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었지만, 여성주의나 생태주의, 평화주의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 P117~118

오늘날 학과의 구분만큼 무의미한 것이 있을까 싶다. 굳이 학과를 나누었으나 공부하는 내용은 겹치거나 해서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학문만 공부한다고 이해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상이나 가치관을 위해서는 여러 학문이 융합되어야 하고 상호 간 교차되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기초 한자 병기를 제안하면 비난하는 교사들이 많다. 한자는 한국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인데도, 한자 병기는 학생들의 학습량만 늘리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염려한다. 그러나 외국어 조기 교육의 효율성과 중요성은 당연시된다(잘못 알려진 교육학 이론이다).  -P126

한국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시스템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배울 때만 해도 필수 과목은 아니었지만 배울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다. 저자도 이야기하지만 단순히 한글만 된 단어는 음만 같고 뜻이 다른 것이 태반이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단순하게 "말"이라는 단어도 달리는 말인지 언어의 말인지 한글만 표현해서는 저 단어만으로는 알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간혹 답답한 경우가 발생할 때가 한자어를 표기하지 않는 경우이다. 적어도 책에서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표기해야 오독을 범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선택하는 능력과 안목은 융합적 사고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다. 안목은 그 사회의 수준과 개인의 노력, 환경의 총체다. 무엇이 중요하고 바람직하고 아름다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판단력이 없는 사람을 만나서 잘못 엮이면 내 인생도 재앙을 맞는다. 파트너 선택이 가장 흔한 예다. 자기 프레임을 모르는 사람이 오피니언의 리더, 고위 관료, 통치자가 되면 역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민생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 P233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계급'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빈자와 부자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 이것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타개하려는 노력 없이 한국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회의적인 생각만 든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의 문제를 확인하고 나아가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존의 지식과 사고 체계와 보편적 관념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은 갈등만을 양산할 뿐이다.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야 한다(trans~). 물론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 P191

융합은 프레임 이동의 정치다. - P233

'리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중국철학사 (하)  (0) 2022.09.02
[책]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0) 2022.08.30
[책]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0) 2022.08.23
[책]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0) 2022.08.23
[책] 시민의 한국사 2  (0)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