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 나는 그의 팬도 아니었지만 당시 장국영의 죽음은 국내에도 큰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르테르 효과'로 많은 팬들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나도 비슷한 시대를 함께 산 사람으로서 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한동안 멍한 공전의 상태가 계속되었었다.
느낌이 묘했다. 왜 그랬을까. 현실과 허구가 섞여 있어서 오히려 다 읽고 나니 꿈을 꾸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현실과 가상이 섞였지만 실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이 책은 소설이었다.
소설에 현실人 첸카이거와 아이리스 장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고 배경 인물에 장국영, 마오쩌둥, 미시마 유키오, 최승희,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이 나온다. 물론 나머지는 허구의 인물들이다.
극을 이끄는 중심 인물은 기자이고 베이징 특파원이다. 그는 극의 모든 인물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14살의 첸카이거는 마오쩌둥을 만나고 문화혁명을 겪고 그의 아버지는 국민당 가입 전력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 혁명을 꿈꾸었던 소년은 대약진 운동 이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 이런 첸카이거의 개인적 경험은 패왕별희가 탄생하는 데 배경이 되었고 영화는 대중이 원하는 것과 권력이 원하는 그림이 달라 생기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워이커씽은 첸카이거와 장국영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 워이커씽은 또 아이리스 장과 연결 고리가 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조사하며 많은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듣기도 한다.
그들은 문화혁명, 대약진 운동, 난징 대학살 같은 굵직한 사건을 배경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버무려 내놓는다.
현실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서로를 담고 치유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자주 본 두 권의 책이 있다. 『The Rape of Nanking』 과 『나의 홍위병 시절』이다.
『나의 홍위병 시절』은 첸카이거의 에세이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Rape of Nanking』 은 아이리스 장이 쓴 아시아 태평양 전쟁 역사로 난징 대학살을 파헤치며 영어로 쓴 최초의 논픽션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완벽한 독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사건을 깊숙이 건드리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소설이라서 좋은 점은 우리가 이전의 역사에서 바라던 추측성 결론을 대리 실현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문학은 스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므로 기본적인 감상과 인상적인 문장으로 이 정도로 일갈한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게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이었어. 그래서 난 눈을 뜨고 죽을 거야.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 P90
"나치 추종자들이 일본의 천황 이데올로기를 국가 형태와 국가 의식, 종교적 광신의 유일무이한 민족적 혼융이라고 하면서, 나치즘이 추구하는 것을 일본은 본능적 기질로 성취했다고 경탄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인에게 역사란 어쩌면...
일종의 그림자놀이일지도 모릅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48
"사춘기의 육체는 일생에서 절정의 시기이오. 육체의 절정기에 있는 소년들의 가없는 에너지를 마오는 꿰뚫어보았던 것이오. 발이 줄에 묶인 새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노천주점에 앉아 있는 나에게로 다가온 열네살 소년이 마오에게는 식량이었던 거요." - P95
생명체의 진화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과정이었어. 컴컴하고 차가운 바닷속보다 밝고 따뜻한 햇볕이 있고 산소가 풍부한 육지가 살기에 훨씬 좋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람이라는 생명체도 생겨난 거야. 그러니 우리의 고향은 바다지. 육지에 올라온 수많은 생명체들 가운데 유독 한 생명체만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 자신의 몸을 바꾸어나갔어. 가느다란 꼬리는 꼬리지느러미로, 앞다리는 가슴지느러미로 변하고, 뒷다리는 짧은 뼈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면서 바다에 살 수 있도록 생체 기능이 변화되어갔어. 그 생명체가 고래야. - P119
"줄 위에서 난징을 내려다보면 거무스레한 땅에 쌓인 시체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소.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기까지 보인다고 했소. 그걸 보고 있으면 자신의 얼굴이 파래지는데 꼭 죽은 얼굴 같았다고 했소." - P167
"유령은 언제나 한조각 꿈처럼 나타나. 그는 말 너머의 세계에 있음에도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려고 해. 하지만 그의 말은 말의 그림자일 뿐이야. 우린 알고 있어. 말의 그림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상처와 그리움이지. 때때로 그가 반딧불이처럼 느껴지기도 해." - P200
"꿈속에 있는 나는 내가 모르는 나였어. 뺨을 적시는 눈물은 내 눈물이 아니었던 거야. 꿈속의 내가 흘리는 눈물이었지. 꿈속의 나는 허공에 매달린 이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었어." - P214
꿈이 아무리 순결할지라도 조직화, 집단화되는 순간 그 순결은 갈기갈기 찢기고 마는 것이오. 인간이란 존재는 이토록 비극적이오. 역사란 비극적 존재가 그리는 집단적 삶의 궤적이오. 이 비극 앞에서 위로가 되는 몽상이 있소. 장자의 몽상이오. - P239
'리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김용균, 김용균들 (0) | 2022.07.26 |
---|---|
[책]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 (0) | 2022.07.26 |
[책] 어제 그거 봤어 (0) | 2022.07.18 |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0) | 2022.07.18 |
[책] 만주족의 역사 (0) | 2022.07.18 |